다시금 우리, 같지만 다름

구멍난 잎 — 나 더하기 펭귄 씨는 하나

by 주나함

여름을 지나가며 우리는 계획에 없던 전환점을 맞이했다.

펭귄 씨에게 거의 이름만 아는, 친하지 않은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기 공고가 나왔는데, 한 번 지원해보라”는 내용이었다.


공고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형교회에서 나온 것이었다. 전도사를 뽑는 것은 근 5년 만이라고 했다. 엄마가 투병생활을 했을 때 그 교회의 목사님을 자주 들었고, 지금까지도 유튜브로 틀어놓으며 좋아하던 터라 나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펭귄 씨는 자기소개서를 준비했다. 질문들을 보니 조건이나 능력보다는 그 사람 자체—어떤 사람인지—를 들여다보려는 의도가 느껴져 마음에 들었다. 그는 처음으로 자기소개서를 써본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뭉뚱그리거나, 어떤 경험은 드러내지 않은 채 답을 채워 넣었다. 어떤 질문에는 자신에게 아프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굳이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설득했다. 자기소개서에 최대한 자신을 온전히 담아보자고.

글을 수정하고 정돈하며, 마무리할 때까지 함께했다.


휘황찬란한 글을 쓰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그를, 그의 성품과 열심으로 빚어진 능력과 책임감 있는 모습을 글 속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한 줄 한 줄 읽으며, 나는 그를 더 귀히 여기게 되었다.




공고가 나온 지 사흘 만에 이백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고 들었다. 그 수많은 지원자 가운데 펭귄 씨는 1차 자기소개서를 통과했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제일 첫 번째 순서로 면접을 보고 나온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면접을 마치고 나오며 “자기소개서에 오탈자가 없다고, 정말 잘 썼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점심을 먹던 중 펭귄 씨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면접을 본 교회에서였다. 면접 과정은 만족스러웠지만, 교단이 달라 바로 확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잠깐 어려움이 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그는 마침내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너무 기뻤다. 하지만 초반에는 두려움도 있었다. 이제 펭귄 씨는 사역을, 나는 나대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날마다 올라올 감정과 생각들이 두려웠다. 서로가 미숙했던 연애 초반, 답답하고 속상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생산적으로 하루를 개척해가자고, 나 또한 나를 다시 형성해가자고.


올바르고 정직하게 나를 바라보고 싶었다.

자존감은 타인으로 인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었다.(남편이 될 사람일지라도)

나의 형질이 있기 전부터 나를 아셨고, 나를 만드신 분. 하나님을 믿고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 알 때, 그리고 나 또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존감은 분명하게 세워진다고 믿었다.




그동안 나는 ‘나로서’ 고민하게 되는 일이 있었다.

존재의 쓸모, 그리고 인간의 본분과 몫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문제는 어떤 사건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현재 직업이 없기에, 즉 ’돈‘을 버는 생산적인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고민이었다. 다시 말해 그 위치에 있지 않는 이상 스스로를 책망하는 상황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이기도 했고, 동시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예견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나를 바로 보게 되었고, 이전의 생각들이 모두 깨지는 경험을 했다.


나는 나를 온전히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하는 일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일’이 운동이나 독서처럼 어떤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그 활동들이 물질적인 결과, 즉 돈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나는 그 기준으로 내 쓸모를 판단했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돈을 못 버는 인간,

무엇을 해도 결과는 오직 돈으로 평가되는 존재.




그런 잣대를 내 안에 세워두었고, 그 잣대에 미치지 못하니 나는 나를 정죄했던 것이다.

세상의 인정을 기준 삼은 잣대가 아닌, 나만의 잣대가 필요했다.

나부터 나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했다.


다시금 새롭게 깨닫고 알게 되자 마음이 너무나 자유로워졌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치를 돈이 아닌 생명에 두자 답은 놀랄 만큼 분명했다.

그렇게 나는 내 사명—영혼을 달래고 사람을 살리는 글쓰기—를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어떤 책을 쓸지 계획하고, 원고를 차근차근 만들어갔다. 너무나 즐거웠다.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기분이 느껴졌다. 시간은 금세 지나갔고, 내일이 기다려졌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나의 다른 가치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롭게 채워진 것들이었다. 특히 운전이 그랬다. 운전면허증은 이미 땄지만 실제로 운전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펭귄 씨가 사역을 잠깐 쉬는 동안 운전 연수를 해주어, 덕분에 실력이 늘었다.




우리는 다시금 우리였다.


펭귄 씨는 새로운 곳에서 사역을 시작했고, 나는 어느 때처럼 홀로 글을 쓰며 앞으로의 일을 준비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온 우리였지만 우리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펭귄 씨는 시스템이 갖춰진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일뿐 아니라 관계적으로도 충만히 채워졌다. 나 또한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글쓰는 즐거움을 다시 누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펭귄 씨가 나를 보러 다녔지만,

이제는 내가 그를 만나러 차로 다녔다.


우리의 변화는 다름이 아닌, 서로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이자 삶의 지경을 넓히는 다리가 되어 있었다.

이전 18화구멍난 잎 — 나 더하기 펭귄 씨는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