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요근래 국내 SF 소설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
'김초엽' 작가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 작품은 총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SF 소설이다.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며칠에 걸쳐 읽어도 흐름이 끊기지 않아서 좋았다.
우선, 7개의 에피소드에 관한 간편 요약과 소감
1.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지구 밖 마을'의 이야기.
지구 밖 마을만이 지닌 특별한 성인식이 있는데,
바로 성년이 된 아이들이 지구로 순례를 떠나는 것.
그리고 그 여정을 떠나는 사람들은 '순례자들'로 불려왔다.
항상 지구로 순례를 떠난 청년들 중 일부는 귀환하지 않는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
:
지구에서 비로소 자신들이 자라온 행성이 사실은
차별과 배제가 낳은 세상이었음을 알게됐을 순례자들.
그럼에도 지구에 남는 것을 선택한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리고 차별과 억압은 시대를 불문하고
불가피한 현상인걸까?
2. 스펙트럼
홀로 40년간 우주에 고립됐던 생물학자 희진의 이야기!
그녀는 우주에서 조난을 당해 도움의 손길을 찾던 중.
한 외계행성에 착륙해 외계 생명체와 마주한다.
비록 생김새도, 생활방식도, 언어도 모두 달랐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차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
서로 다른 두 생명체가 만나 교감하는 과정을 담은 에피소드.
조건없이 희진을 챙겨주며, 지켜주는 외계 생명체와,
그런 외계생명체의 언어를 점차 이해하기 시작하는
희진의 모습이 많은 것을 느끼게한다.
원초적인 상태로 시작해서 순수한 우정을 쌓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언어는 통하지만 소통의 부재가 팽배하는
오늘날과는 대조되어 더 와닿는 에피소드였다.
3. 공생가설
자신이 외계행성에서 왔음을 주장하는 '류드밀라'.
사람들은 보육원에서 자란 그녀가
외로움으로 인해 그런 생각을 하게됐을거라며 동정하지만,
그녀가 그린 행성 그림들은 상상이라기엔 생동감이 넘치며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그녀의 그림들은 왜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킬까?
:
나의 최애 에피소드ㅠㅠ
인간의 성장을 과학과 접목시켜
너무 아름답게 풀어낸 이야기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
사람들은 왜 류드밀라의 세계에 열광하고 환호했을까?
"우리에게 그들이 머물렀기 때문이겠죠"
4.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주행성 간 이동이 가능해진 시대, 우주정류장에서
한 여성이 슬렌포니아라는 제 3행성에 가기 위해
혼자 기다리고 있다.
이 여성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까?
:
가장 많은 여운을 남겼던 에피소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게 아닌가"
이 구절로 간략하게 요약해보고자 한다
5. 감정의 물성
행복, 침착, 공포, 우울 등의 감정을 비누 제품을 통해
구매하고,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물성'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현상이 지속됨에 따라 다양한 사회문제와
특이한 현상들이 대두되기 시작하는데..
:
감정을 구매할 수 있다는 소재 자체가
매력적이었던 에피소드.
특히 사람들이 우울, 분노, 공포 등의
부정적 감정들도 구매하는 현상을 그려낸게 기억에 남았다.
부정적인 감정들도 온전히 느끼고 경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 왜 '슬픔이' 캐릭터가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는지가 떠올랐다.
아마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6. 관내분실
고인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를 저장하는 도서관.
3년전에 세상을 떠난 지민의 엄마도 이곳에 저장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의 마인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
지민은 우울증을 앓고있는 엄마로부터
받아온 상처와 결핍으로 인해
엄마를 원망하고, 연락을 끊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지민은 엄마의 분실된 인덱스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아이를 가짐과 동시에 자신을 잃고,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가며
서서히 사회와 단절되는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 에피소드
7. 나의 우주영웅에 관해
가윤은 우주 너머의 세계에 최초로 도달하는
특수 미션을 수행할 우주비행사 후보에 선정된다.
가윤은 소식을 접한 뒤 가장먼저 이모 재경을 떠올린다.
몇년전에 자신과 같은 임무에 선발됐던 이모 재경은
임무를 위해 혹독한 훈련과정을 모두 이겨냈지만,
임무 당일 우주선 캡슐의 폭발로 시신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가윤은 그런 이모 재경을 동경해왔고,
우주영웅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가윤은 최종 선발을 위한 검진 과정에서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재경의 비밀에 대해
전해듣게 되는데..
:
미래에도 여전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마치 다가올 현실처럼 와닿았던 에피소드.
중년 여성, 동양인, 미혼모라는 이유로 더욱 세기의 주목을 받고
편견어린 시선을 견뎌내야했던 여성 우주비행사 재경,
그리고 그녀가 한 선택을 응원할 수 밖에 없었다.
완독을 하고 가장 먼저 느낀 점은,
'마치 한국판 블랙미러의 한 시즌을 감상한 것 같다' 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달라진 미래의 모습을 그려낸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
한때 꽂혀서 정주행했던 작품이다.
몰론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피소드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생각할 여지를 잔뜩 남기는
디스토피아물의 느낌이 더 강하다.
오늘날의 윤리적, 사회적 문제들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으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또다른 윤리적 공백들이 발생하며
생기는 딜레마들도 존재한다.
보통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더욱 나은 방향으로 영위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외적으로는 편리함을 갖췄다 하더라도
이면으로는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문제들이 만연하고,
누군가를 배제하고 소외하는게 당연시된다면
과연 과학기술은
인간을 위하는 것이라고 표명할 수 있을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인아영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려
포스팅을 마무리짓고자 한다.
과학기술 자체가 더 좋은 세상을 담보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과학기술 발전의 귀결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를 따져 묻는
이분법적인 질문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복잡하게 연루되어 있는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과정 자체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