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SF 소설에 꽂힌 시기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 '제노사이드' 리뷰
일본 작가인 다카노 가즈아키의 장편소설
<제노사이드>에서는
다양한 배경이 등장하는데
백악관에 머물며 지시를 내리는 미국 대통령 '번즈',
임무를 정확히 고지받지 못했지만 인류를 위함이라는
명령 하에 훈련을 받고있는 특수부대원 '예거'
아버지로부터 의문의 유언을 전달받고
그 실마리를 풀고자 하는 한 일본 대학원생 '겐토'
이렇게 세 인물을 주축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류를 위협할 수도 있는
무언가'를 쫓고 있다.
알고보니 인류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존재는 바로,
현인류보다 진화한 생물인
신인류 '누스'라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누스는 외형적으로는 다소 다른 모습을 띄고 있긴 하나,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의 고지능을 지닌 생명체였다.
누스의 존재가 현인류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여
그를 제거하려는 미국 대통령 번즈와,
번즈의 명령에 따라 누스 제거 임무에 투입된 '예거'
하지만 누스에게 접근할수록
베일에 싸여있던 비밀들이 하나둘 드러나며
계획은 점점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제노사이드의 사전적 의미는
'국민, 인종, 민족, 종교 따위의 차이로 집단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행위'를 뜻한다.
제목이 함축하고 있듯, 작품 내에서는
지속적으로 제노사이드의 참상들이 드러난다.
작가는 본문에서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끼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본래 인간은 이성과 인간성을 지니고 있기에
타 생명체들과 구분된다.
인간은 질서를 만들고, 도덕과 윤리를 터득하며
옳고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 특성이 역설적으로 서로를 향한 화살이 되어
오늘날처럼 폭력과 혐오가 난무한다면
진정한 인간성은 무엇인지 되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인간성이란 양날의 검과 같아서,
그것을 휘두르는 자의 선택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
미국 대통령 번즈는 국익을 위해 비도덕적인 고문과
전쟁을 일삼으며 10만명의 이라크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동안
일본 대학원생 겐토는 아무런 대가 없이
과학자라는 사명감만으로 10만명의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신약개발에 몰두한다.
우리는 둘중 누구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누스'는 작가가 전지적 존재로 설정한 캐릭터일 것 같다.
순수하면서도 모든 것을 궤뚫고 있는 듯한 눈으로
인간의 잔혹함과 어리석음을 상기시켜줄 수 있는 존재.
어쩌면 등장인물들이 아키리의 눈빛을 보고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들도 이러한 이유에서였을거다.
생존을 위한 예거와의 기나긴 여정 속에서 누스 '아키리'는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목도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건없는 희생과 온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양면적인 인간성을 목격한 아키리는,
과연 후대의 누스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까?
신인류는 현인류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답습할까,
아니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인간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전승해야할까?
'앞으로 인류 역사가 영원히 이어지다보면,
평화에 대한 갈망은 언젠가 제자리에 머물 것이다.
언제나 세상 어딘가에서 인간끼리 이루어지는
투쟁을 끌어안은채, 인류사는 계속 축적되어 가리라'
전반적인 후기를 요약하자면
책의 분량은 방대하긴 하나 한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어 몰입도가 최상인데다가
실마리가 차츰차츰 풀리는 구조라 후반부까지도
추진력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스토리의 힘이 좋았다.
특히 누스의 비밀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정말,
예상을 뛰어넘는 작가의 설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작품을 위해 작가가 약학, 화학, 지리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이 된다는 점에서
정말 걸작인 듯 하다!
SF 영화로 만들면 흥미진진한 작품이 될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작품내에서 겐토와 함께 신약개발에
강력한 조력자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 '정훈'이
한국인이라는 설정 자체만으로도 반가웠는데,
그에 대한 인물적인 묘사 역시 너무 긍정적이라
기억에 남았다.
심지어 관동대지진 및 난징대학살 등,
일제 하에 이루어졌던 제노사이드의 역사까지
객관적인 시각으로 가감없이 풀어낸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실제로 이 책이 출판됐을 당시
일본 우익들에게 적지않은 비난도 받았다고 한다.
알고보니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는 인터뷰를 통해
"여러 제노사이드를 작품에서 그리면서
일본인의 과거에만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과의 관계를 제대로 그려야만 했다.”
라는 말을 남긴 바가 있다,
작가가 정훈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인 독자들에게 건네는 손길이
비록 국가적 차원은 아니었더라도, 큰 울림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