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첫 헌혈
새해 첫 헌혈을 하면서 이제 내 생애의 헌혈 횟수가 90회를 넘어섰다.
무릇 의미 있는 일은 그게 무엇이건 '단 한 번'만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를 가질 수 있기에 누적되는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평소 소신이다. 하지만, 숫자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그 의미 있다는 일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할 때이다. 그래서 횟수를 헤아리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의 헌혈 횟수가 올해 중으로 100회를 넘기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100회를 넘기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스스로 자문을 해본다. 그래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냥 한 번이라도 더 의미 있는 일을 보태는 것이지. 크게 의미는 없지만 한 번이라도 더 보태고 싶다는 마음만 내 머릿속에 저장해 둔다. 숫자는 스스로의 목표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비교를 하는 순간에는 악이 된다.
올해의 첫 헌혈을 하는 오늘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지난밤에 영하 13도를 기록했고 헌혈의 집으로 향하는 오전 시간에도 여전히 기온은 영하 8도를 기록하고 있다. 경주에는 수년간 오지 않았던 눈도 내렸다. 하, 날이 이렇게 차가워서 혈액이 제대로 나올까, 날이 추우면 혈관이 피부 속으로 숨어 버린다던데...
이번에도 간호사 선생님은 내 팔뚝에서 혈관을 찾느라 애를 쓴다. 그나마 헌혈의 집 간호사들이시니 혈관을 잘 찾는 편이리라. 어찌 되었든 약간의 씨름 끝에 혈관을 찾고 마침내 주삿바늘이 피부에 꽂히는 순간이 되면 그제야 안도감을 느낀다. 바늘이 피부를 찌르는 순간에 느끼는 약간의 고통도 이젠 만성이 되어 무감해졌다. 가끔 주삿바늘이 헌혈을 하는 내내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통증이 있거나 혹은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대부분은 불편감을 느껴도 그냥 넘어간다.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들은 주삿바늘이 불편할 때나, 통증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말을 하라고 하지만, 나는 웬만한 불편함은 그냥 넘긴다.
오늘은 사은품이 2배라고 한다. 그래서 영화 관람권 두 매를 챙겼다. 헌혈기부권으로 정할까 하다가 나 스스로 헌혈을 장려하는 의미에서 무언가 헌혈과 연결되는 의미를 가져 보기로 했다. 덕분에 억지로라도 영화관애서 영화를 보는 기회를 더 갖는다. 이건 헌혈 덕분이다.
아, 이번에는 오랜만에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남길 간식으로, 호두가 박힌 큼직한 버터링쿠키를 만들어서 챙겨갔다. 혈관도 시원찮고, 헌혈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는 나 때문에 혹시나 불편하지는 않을까, 늘 마음에 걸린다. 가끔 직접 만드는 수제 간식들을 챙겨가려 하지만 번번이 까먹는다.
경주에 헌혈의 집이 문을 연지도 2년이 지났다. 그동안 거의 2주에 한 번은 들렀으니 요즘은 모임 회원들 다음으로 가장 자주 보는 이들이 헌혈의 집 간호사 선생님들이다. 주기적인 헌혈을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 챙겨두고 있어서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회사에서 퇴직한 이후로 주기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