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임스 Oct 24. 2019

대표님 식사 안 하세요?

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대표님 식사 안 하세요?

나에게 점심식사란 업무의 연속이었다. 평일 중 2~3일은 고객사 또는 파트너와 점심 약속이 있어서 점심식사가 아닌 점심 미팅이었다. 정말 점심 미팅이라는 단어처럼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식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해결해야 할 이슈를 조금 더 편한 자리에서 이야기한다는 명목 하에 설득하거나 나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때론 갑갑했으며, 때론 뿌듯하기도 하였다. 완벽한 제안서와 프레젠테이션보다 서로 젓가락 부딪쳐가며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 약속이 없는 날에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근처 자리에 앉아있는 직원이 물어본다. “대표님 식사 안 하세요?”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점심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대략 12시 반 정도이다. 그럼 나는 대게 약속이 있다 말하면서 식사하고 오라고 답을 한다. 우리 회사는 명목상으로 12시 반부터 1시간 정도 점심시간을 정해 놨지만, 서로 조금 유동적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사람마다 식사 시간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정말 30분 만에 식사만 하고 바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충분히 쉬고 와서 다시 업무를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1시 정도 즈음에는 모두 사무실에서 나가고 고요한 정막만이 흐른다.


대게 아침 9시 반 정도가 되면 전화와 메일이 쏟아진다. 전쟁 같은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서 직원들이 모두 나간 1시가 되면 나는 큰 소리로 전화를 하거나(우리 회사는 매우 조용한 분위기다), 잠시 크게 노래를 틀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오후에 어떤 일정이 있는지, 미팅이 있다면 어떤 것을 논의해야 할지 잠시 정리해본다. 대표이사의 일은 항상 우선순위의 싸움이다. 그래서 이렇게 중간에 정리를 해주지 않으면 일이 실타래처럼 꼬이기도 한다. 그 생각이 정리가 되면 나 자신에게 배가 고픈지 식사를 해야 하는지 물어본다.


이와 같이, 점심식사는 나에게 업무의 연속이자 오후의 일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대표들은 어떤지 궁금해서 점심식사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다. 어떤 대표는 타이밍이라고 표현했다. 타이밍이 맞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대표의 퇴근은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일이 마무리되는 시간이기에, 식사는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다른 대표는 점심식사란 본인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지표라고 하였다. 역시 일에 치여서 사람을 만나느라고 점심을 건너뛰는 일이 잦다 보니 꼬박꼬박 점심식사를 챙겨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회사가 안정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사업이 조금 더 안정기에 들어 선 대표에게 물어보니,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표현하였다. 역시 일의 연속이다. 점심시간을 사업 확장 도구로, 또는 내부 인력에 관한 관리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와 주변 대표들의 생각을 되새겨보니 참 신기하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매슬로의 욕구 이론에서는 하위 욕구가 만족되지 않으면 그다음 단계 욕구가 동기 부여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경험들을 보면 모두 최상위 욕구 때문에 가장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1단계 욕구를 건너뛰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창업기업 대표는 자아실현을 위해 기본적인 욕구도 무시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1단계 최하위 욕구에서도 그 중요성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회사가 생존하지 못하면 먹고 마시고 입을 수도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점심식사의 배고픔 따위는 더 원초적인 욕구에 밀리게 된 것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인 동물이다. 나 역시 그렇기에 창업 초기에는 신체적인 배고픔을 덜 느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회사의 생존까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이것은 대표와 창업자의 몫이다) 직원들에게 점심식사란 어떤 의미일까? 역시 주변 직장 다니는 지인에게 물어봤다. 크게 두 가지 답변으로 분류가 되었다. 첫 번째는 업무 중간에 맞는 달콤한 쉬는 시간이며, 먹는 즐거움을 주는 시간이자 직장 생활의 유일한 낙이라는 것이다. 모든 직장인이 창업기업 대표처럼 다이내믹하고 엔트로피가 높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고 정형화된 일을 하는 업무가 훨씬 많다. 그러니 점심시간은 그 단조로움을 잠시 깰 수 있는 휴식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직원 복지를 위해 그렇게 구내식당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다. 


지인들의 두 번째 반응은 대략 의무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늘은 식당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반사적으로 궁금하기도 하지만, 배가 안 고파도 먹어야 할 것 같고 업무를 벗어나기 위해서 라도 나가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게다가 리더급의 일방적인 메뉴 결정과 같이 식사하기 싫은 사람과 시간을 억지로 보내야 하는 피곤한 시간이라는 의견도 다수 나왔다.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적으로 싫고 피하고 싶은 사람은 있다. 그런데 그 사람과 업무시간에도 보는데, 점심식사까지 같이 해야 한다면 정말 지옥 같을 것이다. 체하지 않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나 같으면 도망갔을 것 같다.


소셜 분석을 이용해서 “점심식사"의 연관 단어들을 보면(점심식사 언급할 때 사람들이 함께 많이 사용하는 단어), 음식 이름도 많지만 회사 리더급의 직급(ex 이사, 실장, 부장)이 상당수 보인다. 즉 직원 입장에서 점심식사란 직장상사가 주도하는 의무적인 시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근로 계약서를 보면 점심식사 시간은 휴게시간으로 정의하고 근무시간에 포함하지 않는다. 즉, 업무시간은 아닌 시간, 급여를 받는 것과 관련 없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직장인, 직원에게 점심식사란 업무의 연장인 것이다. 이렇게 보니 대표에게나 직원에게나 점심식사는 업무의 연장이 되고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사무실에 있을 때 점심시간이 되면, “대표님 식사 안 하세요? “라고 챙겨 주는 직원이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직원에게도 점심식사는 편하게 쉬고 싶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의무적인 시간이 될 때도 있을 텐데, 형식적일지라도 대표에게 물어보는 것을 고마워해야 한다. 특히나 창업기업과 스타트업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없다. 철저히 개인주의적이며, 관리자는 관리업무를 하는 파트너라고 많이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나 역시 그렇게 변화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지,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를 원한 것이 아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는 집에서 찾으면 된다.


그럼 다른 대표들은 어떻게 점심식사를 해결하는지 궁금하였다. 창업기업 대표들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일하다 시간이 남으면 점심식사를 하곤 했는데, 대기업은 조금 달랐다. 지인이 대기업 CEO 직속팀에 있어서 자세히 들어봤는데, 직속팀에서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대표이사의 점심식사 스케줄을 정하는 것이다. 임원들과 한 두 번, 직속 팀장들과 한번, 그리고 전체 팀들과 계속 돌아가면서 한 번씩 식사를 하는 것이다. 역시 대표이사의 주요 업무인 인력 관리를 하면서 점심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또 다르게 보면 작은 조직보다 더 다가가기 힘든 대기업 대표는 이렇게 안 하면 식사를 매번 혼자 해야 할 테니 나름의 배려인 것이다. 어느 조직이건 대표는 참 외로운 자리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의 경우도 외부 손님과 주 2~3일 식사를 하고, 남은 날은 팀장들과 식사를 하거나 때론 건너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30명 정도의 사람들과 일대일로 식사 한번 안 해본다는 것이 조금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사 인원을 대상으로 돌아가면서 일대일로 점심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대략 일 년에 1~2번 모든 사람들과 일대일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된다. 업무의 어려움부터, 그 직원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최근 근황과 취미부터 시작하여, 회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회사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다른 의견은 없는지 등을 들을 수 있는 값진 시간이 되었다. 게다가 전사 인원과 일대일 식사를 한다는 시도 하나만으로도, "바쁘지만 최대한 조직 내부에도 신경 쓰려하는 대표"라는 인식을 직원들에게 조금이나마 전달되는 듯하였다. 물론, 역시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몰랐지만 말이다.


당신도 창업 기업 대표라면, 마치 동아리처럼 직원들과 항상 붙어서 매번 식사를 같이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한 번은 스타트업들의 익명 게시판 같은 서비스에 들어가 봤는데 어떤 회사의 직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표 새끼 매 점심시간마다 따라다녀서 체할 것 같아"라는 말을 봤다. 그 이후로는 정신건강을 위해서 그 서비스에는 두 번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정말 너무 심하고 옹졸하고 역겨웠다. 그리고 그 대표가 불쌍했으며, 혹시 우리 직원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잠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직원의 점심시간과 대표의 점심시간은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고, 아주 극히 일부는 이해 간다.


그러니 너무 인원이 늘어나기 전에 이렇게 식사 해보면 어떠할까?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처럼 “누구와의 점심식사"라고 이름도 지어서 재밌게 다가가는 것이다. 대표의 속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먼저 행동하고 보여주면 직원들도 마음을 조금 열고 조직에 더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대표님 식사 안 하세요? “라고 챙겨주는 직원을 기억하자. 자신의 꿀 같은 휴식시간을 포기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기억하고 나 역시 따듯하게 답변하면서 배려하자. 그런 작은 배려가 당신에게 또 다른 따뜻함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