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이것은 권고사직이죠!
오해라는 것은 참 무섭다. 분명 내가 말하고자 한 의도와 내용은 그것이 아닌데 상대방은 다르게 받아들여서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일은 참 골치 아프다. 나는 데이터 관련된 기술 기반으로 창업했는데, 요즘 이 분야의 SNA(Social Network Analysis)라는 분석 기법을 기업과 기관에서 여론 모니터링 및 해석 용도로 많이 사용한다. 온라인 상의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대중이 생각하는 바를 파악하여 제품 기획이나 마케팅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아래와 같은 4개의 문장을 기계가 분석한다면 긍정으로 나올까? 부정으로 나올까?
A제품은 디자인이 상당히 뛰어나다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제품의 기능도 상당히 사용하기가 쉽다
또한 휴대용 기기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무게가 엄청나게 가벼워서 편리하다
하지만, 스펙에 비해 말도 안 되는 비싼 가격 때문에 이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4개의 문장 중에 3가지 의견, 즉 통계적으로 봤을 때는 75%가 긍정이기에 결론 역시 긍정적이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를 다 읽고 나면 이 사람이 뜻하는 바는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리뷰인 것이다. 이처럼 기계를 사용하더라도 고객의 니즈를 오해하지 않기가 너무나 어렵다. 기계도 이런 상황인데, 의도나 생각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오해할 여지가 훨씬 더 다양하다. 가족과 지인과의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풀면 되지만, 대표 입장에서 직원과의 오해는 조직의 분위기를 망치고 심하면 법적인 분쟁까지 갈 수 있는 골칫덩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직원의 퇴사 과정에서 나는 자진 퇴사라고 생각했는데, 서로 다르게 오해하여 “이것은 권고사직이죠!” 라며 나에게 공격적으로 다가와서 꽤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대표적으로 세명의 사람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기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던 상황이었다. 첫 번째 사람은 만 일 년을 근무하지 못했던 기획자였다. 회사의 신제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에서 좋은 성과를 내며 PM업무를 하다가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사용자 경험에 관한 공부를 막 마친 사람이었다. 이 직원은 좋은 학교 출신에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역시 스마트해서 나와 소속 팀장에게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 창업 초기기업의 제품 기획에 관한 일은, 큰 조직에서 일한 경험과 학문으로 바라봤던 것과는 간극이 존재했다.
그 직원은 업무 하는 동안 많은 실수를 했고 개선하려고 꾸준한 시도를 하였다. 나는 이 직원이 마치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 2년 차 징크스)가 아닐까 생각하고 기다렸다. 우리가 이 직원의 전 직장에서의 좋은 성과를 알고 있고 그와 비슷한 성과를 기대하고 있으니, 부담이 되어서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도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작은 조직에서 한 명 한 명이 자기 일을 다 못하게 되면 동료들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이 직원의 팀장 역시 대신 더 많은 일을 맡으면서 꽤 고생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직원은 자진 퇴사 의사를 밝혔고, 사유는 본인의 부족함이 팀과 회사에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마음이 떠난 직원을 다시 잡아보기에는 시간도 없었고, 게다가 좋은 성과도 보이고 있지 못했으니 알겠다고 하고 퇴사 프로세스를 진행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 직원의 희망 퇴사 일자를 검토하다 보니, 딱 입사한 지 만 일 년이 되는 날이 아닌가? 아무래도 퇴직금 이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아니 꽤 괘씸하지만 법적으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나는 일단 소속 팀장에게 그 직원의 인수인계를 위한 필요 기간을 물었고, 그 기간을 계산해보니 그때까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인수인계 필요 기간만 채우는 식으로 퇴사 날짜를 당기자고 의견을 전달하였다. 물론 그렇게 되면 그 직원은 퇴직금을 못 받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 인수인계 기간이 필요하다면, 퇴직금을 지급하게 되는 날짜가 되더라도 상관없이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퇴사를 원하고, 소속 팀장 판단으로는 인수인계에 별로 시간이 필요 없다는 데 굳이 자리를 지킬 필요가 있는가?
그 이후 이 직원은 나에게 면담요청을 하고, “이것은 권고사직이죠!” 라며 공격적으로 다가왔고, 더 나아가 이것은 해고라고도 주장하였다. 다시 생각해봐도 참 당황스럽다. 본인이 퇴사를 말했고, 기간은 조율하면 되는 것인데 한 달 치의 퇴직금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변호사, 노무사의 조언을 받아봤지만 일이 커지는 것이 번거로워서 그 직원의 의견을 일부 들어주는 형태로 결론 냈던 것이 기억난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항상 모든 직원의 입사 일년이 되는 시점이 다가오면 내가 직접 또는 소속 팀장에게 해당 직원의 업무 만족도를 파악시키곤 한다.
두 번째 직원 사례는 사실 아직까지도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회사의 제품 중 하나가 더 이상의 개발이 필요 없게 되었다. 마침 해당 제품 개발자 일부가 퇴사한 시점이기도 하였다. 남아 있는 메인 개발자에게 나는 회사에서 생각하는 앞으로의 제품 방향은 내부 개발보다는 외부에 맡길 예정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다른 제품 개발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만약 이것이 싫다면 퇴사를 해도 이해한다고 설명하였다. 그 직원은 일주일 정도 고민 후, 퇴사 의사를 밝혔고 나는 넉넉한 기간을 줄 테니 이직을 위한 준비와 면접도 편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경영지원 직원이 그 직원 사직서의 퇴사 사유를 나에게 보여주면서 “권고사직"이라고 되어 있는데 맞는지를 확인 요청하였다. 나는 이 역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서 면담을 하면서 설명해보려 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시 먹고 권고사직으로 그냥 처리하라고 지시하였다. 내가 처음 면담할 때 한 이야기들에 대한 오해가 분명 있었을 테고 그래서 그 직원은 내가 권고사직을 요구한 것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 이 처럼 항상 대표와 직원, 사용자와 근로자는 그 시선과 관점이 다르다.
오래전 창업 초기에 내가 읽었던 ‘사장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에는 공장에서 나사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고, 직원은 원가 50원의 손해를 생각하지만 사장은 나사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제품 하나의 가격 몇천만 원의 손해를 생각한다고 나와있다. 누가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관점이 다르니 오해는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오해가 우리 조직에 큰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미래를 생각했을 때 나가는 사람에게 대우해주는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 사례는 조금 복잡하다. 지금도 이 경험은 떠올리기도 싫다. 나도 사람인지라 그 사람만 생각하면 참 구차하고 답답하고 짜증 난다. 누군가 나를 생각할 때 이렇다면 얼마나 슬플까? 이 사건의 주인공은 두 달 남짓 일하다가 퇴사하였다. 한참 정신없는 회사 사무실 이전할 때 입사하였고 나랑 제일 밀접하게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경영지원 담당이었다. 경영지원 쪽 기존 직원의 일이 너무 많은데 한 명을 더 채용하는 것까지는 필요 없다고 하여서, 하루 4시간만 일하는 파트타임 계약직 직원을 채용한 것이다. 입사 후 2주가 지난 시점에 그 직원은 면담 요청을 하였다. 그 직원은 아무래도 일이 많아서 근무시간이 자꾸 오버된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래서 그럼 나는 추가 근무수당을 지급한다고 했으나, 직원은 100% 급여 인상을 요청하면서 그 조건으로 추가 근무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받아들였다.
다시 또 2주가 지났다. 그 직원은 또 면담요청을 하여서 그래도 너무 일이 많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일부 업무를 다른 직원들에게 이관시키기로 하였는데, 이어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회사에 너무 없어서 회사 내 사람 관리가 안 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나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그 시기에 자진퇴사자가 한 두 명 있었는데, 이러한 원인도 나에게 있다고 말하였다. 물론, 내 탓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절, 실력 없는 사람 또는 뛰어나지만 비전이 서로 맞지 않는 사람을 끌고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자진 퇴사하게 놔둔 것인데, 나의 리더십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사실 유심히 보니 퇴사자로 인한 업무 그리고 사람들이 본인한테 이것저것 쉴 새 없이 요청하는 건들이 싫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위 다른 직원들이 해당 직원이 너무 공격적이라는 말을 나에게 하기 시작했다.
나는 물론 화도 났지만, 최대한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본인의 다른 삶을 즐기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창업 조직의 스타일에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난감했을 수도 있다. 차라리 처음부터 풀타임이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업무 리소스 파악을 잘못한 탓에 생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 직원에게 차라리 연봉 협상을 다시 하여서 풀타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제안하였고, 이 것이 싫다면 이렇게 계속 나한테 불만을 토로하지 말고 계약을 종료하는 것은 어떠냐고 하였다.
며칠을 고민하더니, 결국 그 직원은 퇴사를 결정하였고 우리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는 듯하였다. 하지만 퇴사한 지 이 주가 지나고 또 연락이 오는 것이 아닌가? 이 사람은 계약직이었고 본인이 퇴사를 선택하여서 우리는 ‘자진퇴사'로 퇴사 사유를 신고하였는데, 그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었다. ‘권고사직'으로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그래야 본인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처리하지 않으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까지 하였다. 나는 이 사건 역시 직원의 요구대로 처리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무사에게 정식 의뢰를 하여서 사건을 맡겼고 노무사도 이 사례를 참 황당해하던 것이 생각난다. 결론은 법적으로 문제없이 자진퇴사 처리가 되었다.
물론 나가는 사람은 최대한 후하게 대우해줘야 내가 그리고 우리 회사가 편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종종 너무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외부 고객사 또는 파트너사에게 하는 말이 있다. “XX님 제가 여기서 이렇게 착하게 다 받아들이면, 저희 회사 직원들이 피눈물 흘립니다" 조금 과장된 말이지만 사실이다. 불합리한 요구 또는 생떼를 부리는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회사의 예산이나 자원을 사용하면 결국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돌아갈 것이 줄어든다. 게다가 ‘권고사직'을 남발하게 되면, 국가에서 중소기업에게 지원해주는 고용이나 인건비 관련 소중한 기회들에 참여 자격이 사라진다. 그러니 신중해야 한다.
퇴사는 항상 민감한 이슈이다. 사실 이 3가지 사례 말고도 황당한 크고 작은 건은 수 없이 많다. 팀장과 싸운 팀원이 갑자기 잠적하고 중요 자료가 담긴 노트북에 비밀번호를 설정해놓은 적도 있다. 그리고 어린 직원 한 명은 역시 갑자기 연락이 안 되고 회사를 나오지 않더니, 그 부모에게 연락이 와서 회사를 그만 나가겠다고 통보를 한 적도 있다. 어떤 산학협력 인턴 직원은 학교에다가 회사에서 성추행 건이 있어서 그만 나가겠다고 하고 잠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회사를 그만 다니고 싶어서 거짓말한 것으로 들통이 난 적도 있었다.
그러니 대표라면, 직원 퇴사에 관한 모든 것을 절대로 기분에 따라서 결정하고 행동하지 말자. 향후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생각하면, 노무사 의뢰 비용은 합리적이다. 그러니 노무사에게 상담을 받고 그 가이드대로 내부에서 처리하거나, 중요 사안이라면 반드시 노무사에게 수임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창업 초기부터 취업규칙을 반드시 만들고, 인사 관련 모든 것은 이메일로도 기록을 남겨야 한다. 초기에 전반적인 노무 컨설팅을 받는 것도 추천한다. 그러면 앞으로 만들 규칙과 제도 역시 합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마케팅이나 홍보를 위해 큰 예산을 사용하는데, 내부 운영을 위해서도 당연히 예산을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신경을 쓴다면 당신이 원하는 똑똑하고 유쾌한 사람들과 즐겁게 일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만든 조직이 괴물이 되어서 나에게 다가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