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임스 Oct 26. 2019

식사도 좋지만 페이 받고 싶어요

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식사도 좋지만 페이 받고 싶어요


창업 1년 차, 벌어지는 그리고 벌어질 모든 것이 신나고 기대되고 걱정되고 어려웠던 시기였다. 무엇보다 해야 될 일이 너무 많아서 좌충우돌하며 배워가면서 성과를 달성하고 조직을 만들어가는 때였다. 대학원과 직장에서 우선순위에 맞게 일을 처리하는 방법과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웠고 겪었지만, 창업이라는 실전에서는 항상 부족함과 갈증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더욱 좋은 인재를 우리 회사에 합류시키려고 노력했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아서 10명 정도의 사람들로 사무실이 꽉 차게 되었다. 


하지만 초기 창업기업은 고유의 제품, 서비스 그리고 기술을 빠르게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력은 제품을 개발하는 인력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영업, 마케팅, 홍보, 사업개발, 그리고 온갖 잡무는 나와 공동창업자 둘이 해나가면서 언제쯤 이 파트에 인력을 충원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벽까지 일하고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잠만 자고 아침에 사무실로 나왔다. 그런데 회사 이사가 본인의 대학 동아리에서 무급인턴이라도 창업기업에서 일해보고 싶은 대학생이 있다고 나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무급인턴이라는 개념을 잘 몰랐던 나는 일단 만나보자 했다. 학생들과 면담 이후 똘똘한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사천리로 협업을 제안하였다. 원격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하고 일주일에 하루만 회사에 나와서 회의 및 일을 해보자고 한 것이다. 


Photo by Danielle MacInnes on Unsplash


그렇게 두 명의 대학생 무급인턴이 합류하게 되었고, 우리가 하고 싶었던 대규모 캠페인부터 각종 마케팅 활동을 함께 진행할 수 있었다. 대학생 인턴일지라도 대학에서 기업 프로젝트도 해봤던 경험이 있었다. 내 시간을 쪼개서 조금씩 하던 그전에 비하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인턴들에게도 좋은 경험과 경력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하는 업무를 가능한 모두 추진 및 리딩 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무급인턴이니 페이는 지급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회의를 할 때 식사라도 맛있는 것을 사주자는 생각에 항상 괜찮은 식당을 데려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지 한 두 달이 지난 시점에 한 인턴이 조심스럽게 나에게 다가와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대표님 식사도 좋지만, 페이를 받고 싶습니다

순간 나는 당황했고, 무언가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인 마냥 부끄러웠다. 그와 동시에 억울한 감정이 느껴졌다. 분명 처음부터 무급인턴으로 일하고 싶다고 한 것은 그들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합리적인 업무의 양과 방법을 서로 충분히 논의하여 정했다. 그리고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되지만, 나름의 보상으로 그들이 원하는 업무를 추진하게 하기 위하여 우선순위 조정과 예산까지 할당하였다. 게다가 사소하지만 식사자리도 꽤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부터 유급 인턴이었다면, 채용하지 않았거나 인턴이 아닌 경력직 직원을 채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억울하면서도, 왠지 내가 언론에 나오는 나쁜 사장, 악덕 고용주가 된 것 같아서 민망한 감정까지 느낀 것이다. 만약 당신 같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했던 일부터 말하자면, 결국 무급인턴 두 명 중 한 명은 종료하였으며, 다른 한 명은 유급 인턴으로 전환시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신나게 일하고 싶어서 창업을 결심한 나에게 이런 생각을 하는 직원이 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무급인턴 두 명과 관련된 특별한 문제도 없었고, 유급 인턴으로 전환된 직원은 계약기간 종료 후 우리 회사 경력을 바탕으로 실리콘밸리 인턴까지 하였다. 그리고 몇 년 전 창업을 하여 지금은 혁신적인 회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무급인턴은 좋은 제도였는가?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성장이라는 목표만 보였던 초기 창업가인 내가 저지른 잘못된 실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운이 좋아서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고 자칫하면 성장을 더 늦추는 영향까지 줄 수 있는 위험한 제도이다


무급인턴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진 제도이며, Guardian에 따르면 , 2016년 미국에서 150만 개의 인턴쉽 중 약 절반이 무급 인턴쉽이라고 한다. 그리고 FORTUNE에서는 무급 인턴쉽이 학생들에게 귀중한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조직에 대한 비용과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수단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기회인지 착취인지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무급인턴은 합법도 불법도 아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법으로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법이 포지티브 규제(허용되는 것만 나열하고 그 외 사항은 불법) 방식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무급인턴은 상당한 위험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대표이사에게 무급인턴제도가 좋지 않은 이유는 3가지이다. 첫 번째는 예외가 생긴다는 것인데, 초기 창업기업은 조직에 대한 프로세스를 만드는 과정이다. 구멍가게 주인처럼 아무 때나 마음대로 회사를 휘젓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직원 복지와 보상에 대한 프로세스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급여를 받지 않고 있으며, 고용된 직원도 아닌데 우리의 일과 핵심 업무를 담당하는 존재가 생기는 것은 프로세스에 예외를 만들게 되고 대표와 직원들에게 혼란만 줄 뿐이다. 예를 들어, 명절 상여금을 지급할 때 무급인턴에게는 지급할 것인가? 말 것인가? 지급하게 되면 그 학생들은 무급인턴에서 유급 인턴이 되는 것인가? 그리고 지급하지 않으면 열심히 우리 회사를 위해 일한 구성원에 대한 보상에서 그들은 왜 빠져야 하는가? 등의 의문점이 대표는 물론 다른 직원들도 생각할 것이다. 직원 복지와 보상은 기업 문화를 만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몇 백만 원의 인건비를 아끼려고 이것을 흔드는 것은 이라고 생각한다. 


Photo by Fiona Smallwood on Unsplash


두 번째로는 창업가의 시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인데, 해야 할 일은 태산이고 우선순위 기반으로 항상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급인턴을 채용하게 되면, 대표이사는 인턴의 보상을 위해 적어도 몇 분이라도 소비하게 된다. 아무리 매정한 사람이라도 열정적으로 우리 회사 성장을 위해 일하는 인턴이 무급이라면, 다른 측면에서라도 보상해주려고 그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것은 비싼 식사가 될 수 도 있고, 영화 티켓이 될 수도 있으며, 아직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 인턴에게 회사의 중요 프로젝트를 리딩 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세 번째는 두 번째와도 연결되어 있는데, 일을 마음대로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노무사를 통해 무급인턴이 불법인지를 검토해봤다. 일을 시켰을 때 무급인턴이 거부할 수 있으면 합법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물론 직원은 대표의 노예가 아니다. 일을 지시할 때는 가능한 명분을 제시해야 하고, 그 일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법적 용어로 대표이사는 “사용자", 직원은 “근로자"라고 한다. 즉 직원을 사용하는 사람이 대표이사인데, 합리적인 목적과 방법으로도 직원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대표는 회사를 이끌어 갈 수 없다


그런데 무급인턴은 가능한 본인이 원하는 일, 선호하는 일을 주로 맡겨 달라고 요구할 것이고 나머지 일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직원보다 하려는 의지도 약할 것이다. 그러니 대표이사는 무급인턴에게 일을 시키기 어려워진다. 수많은 8:2의 법칙이 있지만, 내 경험으로 느낀 직원의 업무도 8:2의 법칙을 따른다. 그 직원이 이 회사에 지원했을 때 생각한 업무 또는 핵심 역량으로 키워가고 싶은 업무가 80%, 그리고 그 범주에 들지는 않지만 회사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 20%로 지켜질 때 직원은 일에 대한 만족도가 유지된다. 이 비율이 깨지게 되면 결국 인재를 놓치게 된다. 하지만 무급인턴은 그 20% 조차도 일부 혹은 전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또는 대표이사 본인이 그 20%를 무급인턴에게 시키지 않으려 미리 조심하고 생각하는 데에 시간을 쓸 것이다. 이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Photo by Isaiah Rustad on Unsplash


그렇다면, 무급인턴을 쓰지 말고 무조건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가? 특히 회사가 고속으로 성장할 때는 단기간에 엄청난 인력을 모두 채용해서 내재화해야 하는가? 사실 인원이 단기간에 많이 늘어나면 역시나 상상할 수 없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일단 고정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회사 자금 소진 속도가 증가할 것이다. 대게 인건비 외의 원재료 값이 거의 들지 않는 IT 비즈니스에서는 “인건비 X 1.5”를 매월 사용하는 예산으로 생각하면 좋다. 물론 마케팅, 홍보 예산 등은 제외한 것이다. 그러면 연봉 4800만 원 직원 한 명을 채용할 때 매월 600만 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이고, 영업이익률이 30% 넘으면 알짜 기업으로 보는 통념을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2천만 원의 월 매출이 추가로 “꾸준하게" 발생되어야 연봉 4800만 원 직원을 안전하게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직원 1명이 늘어났을 때의 고정비 압박은 상당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인원이 갑자기 늘어나면 수십 명 밖에 안 되는 인원의 회사에서도 파벌이 생기고 라인이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 수가 갑자기 늘어나면 대표는 외로운 섬이 돼버린다. 10명 규모의 회사가 갑자기 30명이 되면 어떻게 될까? 10명은 대표이사가 직원 한 명 한 명 케어가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30명이라면 한 사람당 10분씩만 쉬는 시간 없이 이야기해도 5시간이다. 오후 시간이 통으로 사라진다. 그러니 팀 단위로 조직을 나누고 더 인원이 늘어나면 본부 단위를 신설하고, 대표는 팀과 본부 리더 하고만 주로 커뮤니케이션하게 된다. 


그런데 대표이사는 스텝 또는 스텝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장 먼저 앞장서서 일을 만드는 사람이고 이를 보조해줄 사람이 필수적이며, 시간을 조금 더 중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조직에서는 리더에게 비서 혹은 어시스턴트를 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조직이 그룹핑이 돼버리면, 조직은 실무 조직들과 대표이사로만 구성돼버린다. 팀이나 본부의 리더들도 대표이사를 서포트하던 관점에서 본인의 팀원들을 더 신경 쓰게 되고, 그들과 일하는 것을 더 즐기게 되는 것이다. 


Photo by Zunnoon Ahmed on Unsplash


그러니 대표이사는 조직의 외형적인 성장과 함께 외로움을 필수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대표는 외로운 자리고 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긴 하다. 다만, 이런 부작용도 존재한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싶다. 사실 회사가 성과를 내고 성장해서 인원을 급격히 늘려야 한다는 것은 행복한 고민이다. 아무리 열심히 무엇을 해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대표이사는 회사가 로켓이 된 것처럼 느낄 것이고 상당한 성취감을 느끼는 단계이다. 하지만 성장통이 존재하는 것처럼 회사의 규모, 즉 직원의 수가 늘어나는 것에는 분명한 위험성이 수반된다. 직원의 수는 한번 늘리면 절대 쉽게 축소할 수 없기 때문이고, 세상에 합법적 해고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 해고를 우리 법에서 찾아보면 이와 같다. 


[근로기준법 제23조 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懲罰)(이하 "부당해고 등"이라 한다)을 하지 못한다. ② 사용자는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의 요양을 위하여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 또는 산전(産前)ㆍ산후(産後)의 여성이 이 법에 따라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하지 못한다. 다만, 사용자가 제84조에 따라 일시보상을 하였을 경우 또는 사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정당한 이유 없이" 부분인데, 이를 증빙하기는 상당히 어려우며, 우리나라 법은 사용자보다는 근로자의 측면을 많이 배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당신의 조직이 성장으로 인한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면 신규 직원 채용도 있지만 3가지 옵션도 함께 고려해보면 좋을 것이다. 첫째로는 계약직 또는 프리랜서를 사용하는 것이다. 정기적이고 일상적인 업무를 프리랜서를 통해서 처리하고 새로 추진하는 일을 내부 직원이 맡아보는 것이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계약직 또는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정말 괜찮은 인재라면 회사로 합류 제안을 해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아예 전문 업체에게 용역을 주어서 아웃 소싱하는 것인데, 해당 업무에 관해서는 우리보다 경험이 더 많은 업체를 찾아서 맡긴다면 업무가 더 효율적일 수도 있고, 좋은 파트너 관계가 될 수 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대학 연구실 또는 학회와 오픈 이노베이션 형태로 협업해보는 것이다. 생각보다 당신의 회사에서 새롭게 하려는 일을 예전부터 꾸준히 연구해왔던 대학의 교수님 및 연구실은 존재한다. 그리고 연구 영역이 아니라 액션이 필요한 것이라면 대학에 있는 전략, 마케팅 학회에 컨택하여 예산을 지원해주면서 공동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도 좋은 성과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도 인턴급의 직원을 꼭 회사 내부에 채용하고 싶다면, 무급보다는 최저임금 수준이라도 유급 인턴 제도를 운영해보기를 추천한다. 당장의 1~2백만 원 아끼려다가 더 많은 시간과 리소스를 빼앗길 수 있다.



이전 09화 대표님 식사 안 하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