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를 빙자한 내가 하고픈 이야기
‘네가 정치에 무관심해도 정치는 너에게 관심을 갖는다’ 요즘처럼 이 말이 어울리는 순간은 없었다. 지금까지 특정 정책이나 사회현상에는 의견이 있었지만, 더 넓은 범주로서의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것 말고도 중요하고, 시급하고, 혹은 더 좋아하는 관심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당, 어느 리더가 된다 한들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 한국, 미국, 유럽 가릴 것 없이 극단적인 정치 이념 갈등과 이로 인한 가짜뉴스, 선동 등의 사회 이슈를 보면서 더 이상 정치에 무지해서도, 무관심해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정 이념은 어디서부터 피어나는 걸까. 가정환경, 주변 지인, 친구, 지역, 혹은 DNA에 이미 보수와 진보가 새겨져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서점을 거닐다 이 책을 만났다.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아마 제목에 끌렸다고 봐야겠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욕할 때 하더라도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물음을 던지는 정치교양서. 법조인이자 국회의원 출신인 저자와 정치학을 전공한 저자의 동생이 함께 쓴 책이다. 프랑스혁명부터 시작해 보수와 진보는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 가난, 복지, 평등, 능력주의, LGBTQ, 낙태 등의 민감한 사회이슈에 양쪽은 어떤 입장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준다.
단, 책은 이해하자고 얘기할 뿐 방법을 알려주진 않는다.
‘가난’이라는 문제에 보수와 진보 모두 사회가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대전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보수는 성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복지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누구나 어렵던 시절에서 이제는 충분히 먹고살만해진 대한민국의 ‘절대적 성장’이 빈곤을 해결할 것이라 믿는다. 반면 진보는 여전히 연탄을 피우는 노년층, 20살이 되자마자 빚을 안고 시작하는 청년층,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받는 소상공인에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자유, 개인을 중시하기 때문에 성과주의, 개인주의, 사유재산권을 선호하고, 진보는 평등,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분배주의, 집단주의, 공유 등을 선호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보수와 진보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이 아니다. 선택과 선호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보수 혹은 우파는 반공주의, 재벌 중심의 독과점 시장경제, 권위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로 치부하고, 반대로 진보 혹은 좌파는 통일지상주의, 성장에 관심 없는 복지, 규제 위주의 노동우선주의에 빠진 사람들로 바라보게 되었을까?
나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팩트에 기반한 사고’를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예를 들어 ‘증세, 감세’를 주제로 논의한다고 하면 최소한 이 정도는 서로 알아야 한다.
- 증세 혹은 감세의 목적, 지속가능성
- 세금 부담 혹은 혜택의 주체
- OECD별 세금 구성, 세율, GDP 구성
- 대한민국 예산의 구성 (이 부분이 중요하니 조금 더 써보겠다.)
: 대한민국 총수입 1년 600조 원. 이 중에서 국세로 400조 원, 기금(국민연금) 수익 200조 원
국세는 소득세 120조, 법인세 100조, 부가가치세 80조, 상속증여세 15조, 기타 국세 75조로 구성
: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제외하면 의미 있게 컨트롤 가능한 세금은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 소득세의 경우,
- 연봉 1억, 상위 10%의 소득자가 전체 소득의 40%를 번다. 소득세는 80%를 부담한다.
- 상위 1%의 소득자가 전체 소득의 10%를 번다. 소득세의 40%를 부담한다.
- 전체 소득자의 40%는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 법인세의 경우,
- 상위 1%의 기업이 전체 기업 이익의 80-90%를 차지하고 법인세는 85%를 부담한다.
: 상속증여세의 경우,
- 세수 비중 한국 4%, 일본 1.5%, 미국 0.5%, 독일 1%, 영국 0.7%, 프랑스 1.3%
물론 같은 팩트라도 어떻게 해석하는지, 어떤 추가 자료를 뒷받침하는지는 각자의 의견이 충분히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합리적인 data를 기반으로 사고할 줄 알고, 스스로 data를 검증한다면 적어도 감정적인 싸움으로 번지거나 거짓 선동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약자를 수탈해서 탐욕스러운 이미지를 내세우며 증세를 주장하는 자들, 이미 절대적인 소득을 가진 강자를 위해 감세를 외치는 자들 모두에게 쉽게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무릇 사회란 이래야 한다는 아름다운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세상은 당위로 움직이지 않는다. 냉혹한 현실을 마주할 줄 알아야 좌우를 막론하고 입만 산 그들에게 희생당하지 않는다.
누군가 요즘의 글로벌 국제정치의 변화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더라.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고. 말만 번지르르하고 겉과 속이 다른 이들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비록 야만적일지라도 진실을 마주하는 사람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