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무게

by Jay


두근 두근 두근. 누구나 규칙적인 심장 소리에 귀 기울여 본 경험이 있을 텐데,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불규칙적인 심장 박동에 놀라본 적도 있는지?



2021년 8월쯤으로 기억한다. 회사에서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 집에도 일찍 보내주고 안정을 취하라고 했는데 몸이 근질거려서 달리기를 했더랬다. 백신 탓인지 러닝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날부터 일주일간 꼬박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려서 밤에 통 잠을 못 잤다. 한 달인가 지나서 2차 백신을 맞고 나서도 똑같았다. 심신안정제를 처방받아 겨우 잠에 들긴 했지만. 인간에게 숙면이란 참으로 소중하고 중요한 것임을 그때 깨달았다.


문제는 그때부터 순간적으로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종종 들었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카페인 때문일 거야’, ‘잠이 부족해서 그래’, ‘스트레스 때문이야’. 특히 술을 꽤 마시고 잠이 든 날은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가량 소파에서 심장을 달래며 잠이 들곤 했다.


원인도 모르겠고 증상도 대중 없이 나타나니까 병원을 갈 생각을 미처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업무 중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불쾌한 느낌이 대낮에 수십 차례 느껴졌다. ‘만약 이러다가 심장이 멈추면 어떡하지?’ 불안감이 엄습해 오면서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하고, 괜히 숨이 가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쓰러지더라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일이 터지면 누가 날 도와주겠지 싶어 화장실도 잘 가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공포스러운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근데 공포란 무엇일까? 신경생물학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야생동물, 상대 부족 등 특정 대상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아드레날린은 분비해서 즉각적인 행동 태세를 갖추는 생존을 위해 진화한 신경 체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물리적인 대상을 향한 공포라기보다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함에 가깝다.


나에게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가장 큰 두려움은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나의 갑작스런 죽음’.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에게 작별인사 할 시간도 없는 비명횡사. 다시 정확하게 표현하면 죽음 그 자체 보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그게 가장 두렵다. 정작 당사자는 찰나의 고통 이후 사라지겠지만 상실을 받아들이고 소화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끔찍하게도 긴 터널의 시간이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언젠가 한 번 겪는 일이라지만 이왕이면 아내에게, (언젠가 태어날) 아이에게 그 무거운 경험을 일찍 던져주고 싶지는 않다. 생각해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도 억울한데 여리고 따뜻한 내 사람들에게 몹쓸 짓까지 하는 건 정말 최악 아닌가. 어쩌면 이 가사 한 줄로 대신할 수 있겠다.


네가 없는 나보다 내가 없는 네가 더 두려워
(브라운아이드소울 - 정말 사랑했을까 中)


하지만 무릇 두려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통제할 수 없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영화 시작 5분 만에 눈물 흘린다는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업"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엘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 칼의 세계는 무너진다. 쉽사리 떠나보내지 못하고 집 안의 모든 물건에 그녀의 흔적을 붙잡고 살아간다. 우연찮은 계기로 엘리와 평생 약속한 파라다이스 폭포로의 모험을 엘리 없이 떠난다.


모험의 동기야 어찌 되었든 칼은 모험을 통해 엘리를 놓아준다. 본인의 기억 속에 갇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하되 남은 삶의 인생을 찾아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비록 심장을 걸고 맹세한 파라다이스 폭포 모험은 함께 하지 못 했지만 엘리에게 진짜 모험은 칼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순간이었던 것을 깨닫는다.


엘리가 칼에게 준 건 끝없는 슬픔이 아니라, 슬픔을 견디며 나아갈 힘이었다. 나도 언젠가 내 사람들에게 그런 힘을 남겨주고 싶다. 상상하기 싫지만 만에 하나 갑작스러운 이별이 찾아오더라도, 내가 남긴 기억과 태도가 그들을 지켜줄 수 있기를 바란다. 상실에 대한 공포는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빛이다.


스티브잡스가 이런 말을 했었다.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삶의 중요한 선택을 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다.’ 지금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가 어떻게 되는지 고민될 때 꺼내보는 말이다.




참고로 사무실에서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그날 이후 심장 정밀 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부정맥. 원인 불명.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문제 되는 수준은 아니다. 단, 꾸준히 자가 관찰할 것. 가능하면 심혈관에 좋은 식습관, 운동, 생활패턴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기분 탓인지 많이 호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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