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의 코끼리

멜리사와 조이스가 진실을 본 방법

by Jay

영화 '줄스'와 소설책 ‘일곱 번째는 내가 아니다’.


이번 살롱의 미션은 두 작품의 공통점을 얘기하기다. 뭐랄까 마치 연필과 개미핥기처럼 다른 두 녀석의 공통점에 대해서 쓰라니.. 거기에 이미 두 형님이 고립이라는 키워드로 훌륭한 글을 투척하는 바람에 그냥 숙제를 제낄까 싶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두 작품에서 시종일관 나온 행동이 있지 않겠는가.

바로 "관찰"이다. 여기에 대해서 글을 써볼까 한다.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뉴질랜드의 도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찰들은 매일 같이 범인을 마주하면서도 감히 그가 범인일 거라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 어리숙하고 덜 떨어진 청소부 조(Joe)니까.


반면, 멜리사는 조와 칵테일을 마시며 몇 시간 대화해 보니 이 사람이 지금 도시를 떨게 하는 연쇄살인마라는 걸 쉽게 간파한다. 일반 사람보다 지능이 다소 낮은 걸로 묘사되는 샐리도 조의 이상한 점을 어렵지 않게 눈치챈다. 비록 범인이라고 매칭 짓는 건 형사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말이다.

소설에서 ‘관찰’은 능력 그 자체라기보다 관심의 방향이었다. 사람을 용의자로만 바라보는 경찰과, 눈앞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 멜리사, 샐리의 관찰은 애초에 목적이 달랐다. 그 차이가 진실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을 갈랐다.



영화는 어떠한가. 의회에서 같은 얘기만 반복하는 고지식한 영감 밀턴의 뒷마당에 우주선이 불시착했고 외계인이 찾아온다. 비록 말은 하지 못하고 작고 연약하고 사과를 좋아하는 귀여운(?) 존재이지만, 이를 집에 들인다는 건 매우 큰 변화다. 게다가 정부는 콕 집어 이 녀석을 찾고 있다. 최초에 밀턴은 줄스(나중에 붙인 이름)를 딱히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911에 신고도 하고, 의회에서도 얘기하고, 마트 직원에게도 얘기한다. 심지어 집에 찾아온 딸조차도 줄스의 존재를 몰랐다. 하지만, 샌디와 조이스는 달랐다. 금세 줄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셋은 줄스를 중심으로 유대감과 우정을 쌓는다.


특히 조이스는 줄스가 그린 장난 같은 그림이 분명한 메시지였음을 금방 캐치한다. 그림의 패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의미를 연결해 내는 능력이 남다른 것이다.




두 이야기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가장 먼저 본 인물들은 모두 관찰자였다. 관심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호감, 외로움, 질투, 혹은 경찰에 대한 패티시(!!)가 관찰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끈질기고 디테일한 관심 덕분에 전문가보다 앞서 깨달았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전문가들의 눈을 가린 건 '설마 저 바보가 범인이겠어?', '외계인이면 쉽게 눈에 띄겠지' 같은 편견이었고, 멜리사나 조이스의 눈을 뜨게 한 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집요한 호기심이었다. 이 '편견 없는 관찰'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현실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A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B가 fact인 경우가 무엇일까?’ 혹은 ‘으레 그래왔으니 나도 당연히 받아들인 것 중에 틀린 건 없을까?’


역사를 바꾼 혁신가들은 모두 남들이 보지 못한 'B'를 관찰해 낸 사람들이다. 백 년 전, 사람들은 석유를 밤을 밝히는 등유의 원료로만 여겼고 휘발유는 골칫덩이 부산물 취급했다. 하지만 록펠러는 자동차 시대의 도래를 관찰했고, 남들이 버리던 그 부산물을 위해 전국에 주유소 인프라를 깔았다. 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의 싸움도 그랬다. 블록버스터가 '연체료 수익'이라는 기존 상식에 갇혀 있을 때, 넷플릭스는 인간의 욕망을 관찰했다. 사람들은 매장에 가는 수고보다, 소파에 누워 편하게 즐기는 '편리함'을 선택할 것이라는 통찰이었다.

사회적 통념을 뒤집는 거창한 혁신도, 그 시작점에는 결국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관찰이 있었던 셈이다.


방 안에 커다란 코끼리가 있어도 눈치채지 못하는 슈뢰더 형사가 되고 싶지 않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당연한 것을 의심하고 눈앞의 대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눈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살인마를 피하거나, 혹은 우주에서 온 귀여운 친구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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