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영화 리뷰

by Jay


퀴즈.


2004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이 누구일까?


정답은 영화를 처음 찍어본 14살짜리 일본 남자아이다. 경쟁 상대 중 하나가 무려 올드보이의 최민식이었고, 심사위원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런 말을 했다.

많은 영화를 봤지만 잊혀지지 않는 건 야기라 유야의 얼굴이다.


정작 야기라 유야는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발표 순간에는 자고 있었다는데 어린 순수함에 헛웃음이 나온다. 고레에다 감독은 어린 배우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 해당 장면을 찍을 때마다 특정 상황을 가정해 즉흥적인 반응으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끌어낸다. 아무리 그래도 그걸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이라니 얼마나 디렉팅이 정교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아키라 독사진.jpg



#1

“아이 아빠는 외국에서 일하고 있어요. 남자아이 하나라 집을 깨끗하게 쓸 거예요.”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면서 엄마는 아랫집에 사는 집주인에게 말한다.


“베란다 밖으로 나가면 안 되고, 대문 밖은 절대 나가선 안돼.” “그래, 빨래 담당인 교코는 베란다까지는 허락해 줄게.”

캐리어에 몰래 숨겨 온 어린 동생들에게 엄마가 신신당부한다.



#2

‘아키라,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

라고 쓰인 98,000엔이 든 돈봉투를 두고 사라진 엄마.



#3

“엄마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다 버리고 사라진 니 아빠가 심하지, 그리고 엄마는 행복해지면 안되니?

‘크리스마스엔 돌아올거야’

다시 돌아온 엄마는 이렇게 또 사라진다.



#4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되었다.

‘아키라, 교코, 시게루, 유키 사랑한다. 엄마가.’

아키라는 편의점 알바생이 써 준 세뱃돈 봉투를 동생들에게 나눠준다. 교코는 알아챈다. 작년 세뱃돈 봉투와 글씨체가 다르다는 걸.



#5

“게임 새로 샀어, 우리집에 놀러와”

“학원 때문에 요새 바빠서..”

“누구야?”

“쟤네 집은 이상한 냄새나”

교복을 입고 중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을 찾아간 아키라. 다시 쓸쓸히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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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도 모른다(誰も知らない, Nobody Knows, 2004, 일본)’는 이렇게 철저히 아이들의 시선과 목소리만으로 붕괴되어 가는 일상을 비춘다. 1988년 도쿄에서 일어났던 스가모 아동 방치사건을 소재로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절대 가볍지 않은 소재임에도 감정을 보여주는 씬이나 배경음악은 철저히 배제한다. 대신 의도적인 클로즈업, 빛과 그림자, 좁은 공간을 활용해 답답함과 자유로움의 대비를 영리하게 보여준다. 작품이 다큐멘터리 같다고 느껴지는데 이건 고발 영화가 아니라 성장 영화라고 인터뷰한 감독의 의도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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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들이 많다. 하나하나 참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아키라가 난생처음 야구 경기에 참여하면서 안타를 치는 것, 막내 동생의 생일이라고 손 꼭 잡고 시내를 걷는다던지, 무더운 여름에 놀이터에서 4남매가 물놀이를 한다던지 말이다. 오히려 너무 아름답고 순수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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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매정한 엄마가 자기 자식 넷을 버리고 도망칠 수 있는지,

아랫집, 옆집, 공무원들은 누가 봐도 수상한 집을 그대로 내팽겨뒀는지,

아빠라는 전남친들은 어찌 저리 무책임 할 수 있는지,


누구나 느낄 법한 당연한 의문에 대해 감독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되묻는 것 같다. 정작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무슨 감정인지, 뭐가 필요한지 고민해본 사람은 있냐고, 아무도 모른다고 우리에게 묻는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다시 듣길 바라며 OST를 첨부한다. 웬만하면 눈물을 참기 힘들 거라고 미리 경고한다. 참고로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세뱃돈을 대신 써주던 편의점 알바생이다.


https://youtu.be/6ZYPlnmhMTU?si=YUOYKsy2Riw1lv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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