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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pace and Time

일상에서 발견한 미끄러짐

집이란 무엇인가

by Jwook

운동을 마치고 땀으로 젖은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연다. 에어컨 바람이 훅 밀려오고, 익숙하면서도 약간은 눅눅한 공기의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그 순간마다 '나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그런데 요즘 그 감정의 온도가 조금 다르다. 집이 단순히 몸을 쉬게 하는 안전가옥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또 하나의 세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어, 수많은 의미


운동 중에 종종 유튜브 채널 '자취남'을 본다. 영상의 마지막에는 늘 이런 질문이 등장한다.

"룸메님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누군가는 "온전한 쉼터요"라며 웃고, 누군가는 "내 규칙을 적용한 나만의 공간이요"라며 단단한 눈빛을 보인다. 같은 단어, 같은 질문이지만, 사람마다 그 안에 담긴 결은 전혀 다르다.


어떤 이는 벽을 비워 여백으로 숨 쉬고, 어떤 이는 물건을 채워 안정감을 얻는다. 누군가는 친구를 초대하며 관계의 장을 열고, 또 누군가는 철저히 혼자만의 방을 지킨다. '집'은 하나의 단어지만, 그 의미는 매일 다르게 흘러가는 개인의 문장이다.


이 미끄러짐은 집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단어가 지금, 고정된 의미에서 벗어나 각자의 궤도를 그리고 있다.


중심이 사라진 시대의 언어들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본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가족은 혈연으로 묶인 단단한 울타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반려동물이 가족이 되고, 같은 집에 사는 비혈연 구성원이 가족이 되며, 온라인에서 매일 대화하는 익명의 누군가가 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사라졌지만, 대신 수많은 주변이 생겼다.


'성공'도 마찬가지다. 예전의 성공은 명확했다.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 넓은 집.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게 성공은 각자의 좌표다. 누군가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 또 누군가에게는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 어떤 이에게는 '퇴근 후 온전히 쉴 수 있는 것'이 성공이다. 같은 단어지만, 그 안의 무게와 방향은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일'의 의미도 미끄러졌다. 기성세대에게 일은 생존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아를 실험하는 과정이 되었다. 누군가는 디지털 노마드로 세계를 떠돌고, 누군가는 프리랜서로 여러 정체성을 오가며, 또 다른 이는 회사의 경계 안팎을 유연하게 넘나든다. 일은 더 이상 '삶의 전부'가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옵션'이 되었다.

같은 ‘집’이지만, 각자의 시간 속에서 조금씩 다른 의미로 미끄러진다.

왜 의미는 미끄러지는가


이 모든 미끄러짐의 배경에는 세상의 중심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이 있다. 한때 '정상적인 삶'이라는 단일한 서사가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집을 사고, 자녀를 키우는. 그러나 경제 위기, 기술 혁명, 가치관의 다원화를 거치며 그 서사는 균열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서사를 써야 하는 시대에 산다. SNS는 타인의 삶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정답은 없다'는 메시지도 전한다. 정의하려는 순간 흩어지고, 붙잡으려 하면 빠져나간다. 마치 젖은 손 위의 비누처럼.


그러나 이 미끄러짐은 혼란이 아니라 생명력의 징후다. 고정되지 않음은 불안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새로이 의미를 발견한다. 단어는 부드러워졌고, 삶은 다채로워졌다.


집, 그리고 함께 자라온 시간들


오늘도 운동을 마치고 집 문을 연다. 익숙한 공기 냄새가 다시 나를 감싼다. 예전처럼 안도하지만, 그 안도는 이제 다층적이다.


집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 안의 공기는 달라졌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된 두 자녀의 방문은 이제 조용히 닫혀 있다. 그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 낮은 대화 소리가 예전의 분주함 대신 묘한 거리감과 따뜻함을 동시에 남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집은 '돌봄의 공간'이었다. 밤마다 동화책을 읽어주던 거실, 함께 밥을 먹던 식탁, 울음소리가 퍼지던 복도. 그때 집은 안전과 보호의 의미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의 의미는 미끄러졌다. 이제 집은 각자의 영역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자기 방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나는 거실에서 하루를 정리한다.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산다. 집은 더 이상 하나의 중심을 공유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궤도가 평화롭게 교차하는 곳이 되었다.


이 변화 속에서 나는 깨닫는다. 집이란 고정된 의미를 가진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자라는 유기체라는 것을.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나의 생각과 관계도 함께 미끄러지고, 집은 그 모든 궤적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집이란, 나를 정지시키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흐르며 끊임없이 의미를 갱신하는 살아있는 장소라고.

미끄러지기에 살아있고, 변하기에 여전히 나의 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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