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건 『급류』
우리는 누군가를 만난다. 그 만남이 필연 같기도 하고, 우연 같기도 하다. 친구의 소개로 만나든, SNS에서 스치듯 연결되든, 포차나 클럽에서 술기운에 웃다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지든. 어쨌든 각자 나란한 평행선을 긋던 인생은 어느 순간 포개지는 접점을 하나 갖게 된다.
대부분의 만남은 사소하다. 하지만 어떤 만남은, 이상하게도 사건처럼 다가온다. 특히 큰 사건은 늘 필연처럼 느껴진다. 이를테면 내가 물에 빠졌고,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었다면. 그 사람이 나와 같은 또래라면. 그가 내 생명의 은인이라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감정은 과연 사랑일까, 아니면 벗어날 수 없는 속박일까.
이 글은 소설 『급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감상과 사유를 풀어갑니다. 작품의 중요한 장면이 일부 언급되니, 스포일러에 민감한 분들은 읽기에 참고해주세요.
정대건의 소설 『급류』는 바로 그 질문을 정면으로 꺼내 놓는다. 이 소설은 열일곱 살 도담과 해솔의 이야기다. 도담이 물에 빠진 해솔을 구하면서 두 사람은 만난다. 그 만남 이후, 둘은 서로에게 비밀 없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세상에 완전히 안전한 관계란 없다.
어른들의 관계가 무너지면서, 도담과 해솔의 세계도 함께 무너진다. 도담의 아버지와 해솔의 어머니가 불륜 관계에 빠지고, 급류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한다. 그 순간부터 도담과 해솔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장 멀리 떨어져야 할 사람이 된다.
그런데 이 소설의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도담과 해솔은 헤어진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 또 헤어진다. 그리고 또 만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후벼파고, 그럼에도 다시 만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이 패턴은 끝나지 않는다.
나는 이 반복을 읽으며 물리학의 '양자얽힘'이 생각났다. 서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나의 상태로 묶여 있는 입자들처럼, 도담과 해솔은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서로를 향해 끌려간다. 만나지 않으려 해도 만나게 되고, 끊으려 해도 끊어지지 않는다. 이건 더 이상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얽혀버린 상태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자꾸 멈춰 섰다. 이런 인연이 과연 현실에 있을까? 현실에서 누군가와 이렇게까지 반복적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날 수 있을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소설이라는 장치가 허락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 주변에도 있지 않은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한 관계가 다시 시작되는 순간. 다시는 보지 않기로 했던 사람을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 그리고 그 우연이 한두 번이 아닐 때, 우리는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운명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아프고, 악연이라고 자르기엔 너무 깊다.
사실 우리의 일상도 그렇다. 헤어진 연인, 멀어진 친구,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한 사람.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그 사람이 내게 남긴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우연히 그 사람이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함께 갔던 카페 앞을 지나가면 발걸음이 느려진다.
한 번 만난 사람은 나에게 책임을 남긴다. 그 책임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다.
『급류』에서 도담은 사랑을 "빠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문장처럼, 사랑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우리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 도담의 아버지는 해솔에게 이렇게 말한다.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급류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더 깊이 내려가는 것이다. 겉으로만 빠져나오려 하면 물살에 휩쓸려 버린다.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바닥을 짚고 다시 올라와야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지나온 관계들을 떠올렸다. 누군가를 만나고,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때로는 다시 만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남은 상처들. 우리는 늘 '완벽한 이별'이나 '아름다운 재회'를 꿈꾼다. 하지만 실제 관계는 그렇게 정돈되지 않는다.
가끔 생각한다. 끝내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끝내지 못하는 관계들에 대해. 아이들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경제적 상황 때문에. 그런 이유들을 앞세우며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게 정말 외부 조건 때문인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그 조건들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끝낼 용기가 없거나, 아직 완전히 놓지 못했거나,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렵거나. 진짜 이유는 더 깊은 곳에 있는데, 우리는 그걸 타인의 이름으로 덮어두는 건 아닐까.
어떤 사람은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고, 어떤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렇게 우리는 끝났다고 말하면서도 끝내지 못한 관계를, 시작했다고 말하면서도 시작하지 못한 감정을, 마음속 어딘가에 남겨둔 채 살아간다. 그게 옳은 건지 그른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렇게 남겨진 것들이, 때로는 우리를 무겁게 만든다는 것쯤은 안다.
『급류』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 소설은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모든 상처가 치유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도담과 해솔은 서로를 아프게 하고, 또 아파하고, 그럼에도 계속 끌려간다. 그게 현실적이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말로 사랑한 사람은, 완전히 떠나보낼 수 없으니까.
우리는 누군가를 만난다. 그 만남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우리는 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겪는다. 때로는 함께 웃고, 때로는 함께 운다. 그리고 어느 날 헤어진다. 하지만 헤어진다고 해서 그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내 안에 남는다. 상처로, 기억으로, 때로는 여전히 뛰는 심장 소리로.
급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익사하지 않는 법을, 천천히 배울 수는 있다. 『급류』는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기보다, 관계가 우리 몸에 새기는 흔적의 기록이다. 아프고, 아리고, 그래서 쉽게 마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