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루 시자의 백색 건축과 멈칫의 철학
며칠 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늘 다니던 길, 늘 마시던 커피, 늘 앉는 자리. 그 익숙함의 궤적 속에서 문득 판단이 멈추는 순간이 있었다.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풍경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감각.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한 '불안(Angst)'처럼, 세계를 지탱하던 익숙한 지반이 잠시 흔들리며 사물의 민낯이 드러나는 찰나였다.
존재가 흔들리는 이 순간은 곧, 세계가 새롭게 지각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관념의 지배가 느슨해진 틈을 타 신체의 감각이 세계를 다시 읽어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불안이 메를로퐁티의 지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지점에서, 내 머릿속을 스친 이름은 포르투갈의 거장 알바루 시자(Álvaro Siza)였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Álvaro Siza Vieira, 1933–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현대 건축가로, 1992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그는 지역의 지형, 빛, 기억을 존중하는 태도로 국제적 모더니즘을 재해석해 왔으며, 백색 콘크리트와 절제된 형태를 통해 ‘침묵의 건축’, ‘지각의 건축’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건축은 언제나 이런 순간에 떠오른다. 분명 익숙한 형태처럼 보이지만, 막상 언어로 정의하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유동성.
좋다거나 나쁘다는 판단 이전에, 조금 더 머물며 응시하게 만드는 힘. 그의 건축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웅변하기보다, 판단을 잠시 유예하고 공간 속에 현존(Presence)하게 만든다.
알바루 시자의 건축을 상징하는 '백색'은 단순히 미니멀리즘의 미학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색채의 부재가 아니라, 장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받아내기 위한 가장 겸허한 상태다.
그의 백색 벽면은 빛의 입자와 공기의 밀도,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변하는 그림자의 궤적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일종의 '현상학적 피부'다.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인간의 몸이 세계와 맞닿아 있는 상태를 '살(chair)'이라고 표현했다. 시자의 백색 건축은 바로 그 살의 역할을 한다.
백색은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주변의 풍경과 하늘의 표정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것이 시자가 한국에 남긴 '백색의 사유'가 지닌 첫 번째 본질이다.
오늘날의 도시 건축은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혹은 폭력적이다. 동선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명확하게 규정되고, 공간은 사용자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해석을 제시하며 기능을 강요한다.
알바루 시자는 이 흐름에서 기꺼이 한 발 물러선다. 그의 건축은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를 '멈칫'하게 만든다.
국내에 자리한 알바루 시자의 파주 출판도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Mimesis Art Museum, 2014)은, 우리가 이야기해 온 ‘지각의 건축’을 눈앞에서 확인하게 만든다. 멀리서 보면 과장되지 않은 백색의 덩어리다. 주변을 압도하지도, 스스로를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의 확신은 서서히 흔들린다. 직선이라 믿었던 벽은 신체의 움직임을 따라 미세하게 휘어 있고, 단단해 보이던 콘크리트 덩어리는 빛의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빠르게 정보를 출력하고 소비하는 지식 생산의 현장인 파주에서, 시자는 '멈춤'의 건축을 놓았다. 이 공간은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듯 걷게 만들고, 우리는 시각적 정보보다 먼저 몸의 반응으로 건축을 경험하게 된다.
굽이치는 벽을 따라 걷는 발바닥의 감각, 천장의 개구부에서 쏟아지는 빛이 피부에 닿는 촉감. 여기서 공간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지각의 과정 그 자체가 된다.
시자의 건축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변형(Transformation)’이다. 그가 말하는 변형이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오만한 발명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던 건축의 유형(Type)과 장소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그것들을 현재의 조건 속에서 다른 감각의 리듬으로 재조율하는 행위에 가깝다.
그는 이미 그곳에 있던 지형의 결, 빛의 궤적, 사람들의 기억을 세심하게 읽어낸다. 변형은 파괴가 아니라 경청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정점은 산타 마리아 교회(Igreja de Santa Maria de Marco de Canaveses, 1996)에서 목격된다. 시자는 교회라는 고전적 유형을 유지하되, 척박한 화강암 지형과 급격한 경사를 거스르지 않고 공간을 단면으로 분화했다.
상부의 본당과 하부의 채플은 위계적으로 단절되지 않으며, 대지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특히 내부의 빛은 극적인 연출을 거부한다. 제단 쪽이 아닌, 신도들의 눈높이에 맞춘 낮은 수평창을 통해 스며드는 빛은 기도의 시선을 저 먼 지평선으로 확장한다.
숭고함은 화려한 상징의 과잉이 아니라, 백색 벽면 위로 고요하게 퍼지는 빛의 깊이, 즉 절제된 변형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결국 건축이 장소에 순응하는 것을 넘어, 장소가 가진 잠재력을 건축이라는 필터를 통해 새로운 감각적 실체로 변형시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변형의 미학은 포르투의 세랄베스 현대미술관(Museu de Arte Contemporânea de Serralves, 1999)에서 정점에 이른다. 시자는 전시 효율과 화이트 큐브가 지배하는 현대 미술관이라는 프로그램에, 정원과 중정의 논리를 끌어들였다.
자율적인 예술 감상이 요구되는 미술관에 외부 풍경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이 선택은, 내부와 외부, 자연과 인공, 관람과 산책의 경계를 동시에 느슨하게 만드는 변형이었다.
전시실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정원의 빛과 풍경은 관람자의 속도를 늦추고, 이동은 단순한 동선이 아니라 사유를 동반한 걷기가 된다.
관람자는 작품을 소비하는 시선에 머물지 않고, 창 너머의 나무와 빛, 계절의 변화를 함께 인식하며 공간 안에 머무는 존재로 전환된다.
절제된 콘크리트와 백색 벽면은 자연광을 받아 끊임없이 다른 표정을 드러내고, 건축은 전시를 담는 용기를 넘어 ‘머무는 리듬’을 생산한다.
시자는 기능적 명확성 대신 지각의 풍요로움을 우선함으로써, 이 미술관을 하나의 사유의 집으로 변형시켰다.
변형의 궁극은 무엇인가? 그것은 건축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시자는 대지를 정복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건축을 배경으로 물린다.
그의 작품들에서 보이듯, 건축은 언제나 그 자리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풍경 속에 조용히 스며든다. 그의 건축은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약간 비껴 있고, 완전히 닫히지 않은 채 열려 있다. 그 비워진 여백 속에서 사용자는 비로소 사유할 공간을 얻는다.
시자의 건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머무를 시간’이다. 시자가 한국에 남긴 것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장소를 대하는 겸허한 태도, 그리고 판단을 유예해도 된다는 안도감이다.
익숙한 일상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날, 다시 그의 공간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장소를 변형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변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일상에도 그런 '멈칫'의 순간이 있는가? 시자의 백색 건축은 조용히 묻는다. 조금 더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고,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알바로 시자가 남긴 한국의 건축물은 다음과 같다.
1.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파주,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53) — 2009년 완공된 파주출판도시의 현대미술관. 시자의 대표적 국내작으로 자연광과 조형의 절제를 보여준다.
2. 안양 파빌리온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 180) —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일환의 파빌리온으로,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흐리는 공간이다.
3. 아모레퍼시픽 연구·디자인 센터 ‘미지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용구대로 1920) — 2010년 완공된 R&D 캠퍼스로, 중정 중심 절제된 구성이 특징이다. (방문 제한적)
https://www.apgroup.com/int/ko/our-culture/amorepacific-architecture/mizium/mizium.html
4. 사야 파크 (경상북도, 숲속 파빌리온·전망대·채플) — 2018년 완성된 복합 경관 공간으로, 자연 속에서의 사유적 체험을 강조한다. (예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