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가 고전을 구원하는 방식
400년 전, 한 여인이 강물에 몸을 던졌다.
그녀의 이름은 오필리아. 2025년, 그 이름이 다시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8주 동안 1위를 했던 케데헌 헌트릭스의 〈Golden〉을 밀어내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곡 〈The Fate of Ophelia〉
컨트리 기타를 치던 시골 소녀가 이제는 팝의 역사를 다시 쓰는 아티스트가 되어, 수백 년 된 비극의 여인을 다시 불러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오필리아는 더 이상 익사하지 않는다.
https://youtu.be/-KuNA2iYg9w?si=m-ke12_Ce0q7TwQH
오필리아(Ophelia).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이름. 그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속 인물이다. 덴마크 왕자 햄릿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끝내 파국으로 치달았다.
아버지는 햄릿의 적에게 이용당해 죽고, 연인은 그녀를 미친 여자 취급하며 밀어냈다. "수녀원으로 가라." 햄릿의 차갑고 잔인한 거절. 아무도 그녀의 슬픔을 듣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그녀의 마지막을 이렇게 남긴다. 오필리아는 꽃다발을 들고 강가를 걷다가 나뭇가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지고, 몸이 미끄러져 물속으로 떨어진다. "그녀는 마치 노래하듯 잠겨갔다."
그 장면은 단순한 익사가 아니었다. 사랑과 순수, 그리고 세상의 냉혹함에 짓눌린 존재의 소멸이었다. 오필리아의 이름은 이후 수세기 동안 '광기 어린 순수', '사랑의 희생양', '침묵한 여성'의 상징이 되었다.
그녀의 죽음은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세계의 구조적 비극이었다.
2025년, 테일러 스위프트는 그 이름을 다시 불렀다.
〈The Fate of Ophelia〉는 낮은 신시사이저의 파동으로 시작된다. 차갑고 깊은 물속을 유영하는 듯한 사운드. 그 위로 첫 가사가 흘러나온다.
“If you’d never come for me, I might’ve drowned in the melancholy. 당신이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슬픔 속에 잠겨버렸을지도 몰라."
이 도입부는 16세기 오필리아의 절망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한다. 하지만 곡은 비극에 머물지 않는다.
프리코러스에서 드럼이 고동치며 분위기가 급변한다.
"Late one night, you dug me out of my grave / And saved my heart from the fate of Ophelia. 깊은 밤, 당신은 내 무덤에서 나를 꺼내어 / 오필리아의 운명으로부터 내 마음을 구해냈다."
리듬은 물살처럼 터지고, 신시사이저는 빛의 파편처럼 퍼져나간다. 이 순간, 오필리아의 '익사'는 '되살아남'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브릿지에서 테일러는 이렇게 노래한다.
"All that time, I sat alone in my tower. You were just honing your powers.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탑 속에 홀로 앉아 있었고 / 당신은 그저 자신의 힘을 단련하고 있었지."
오필리아가 고립된 탑에서 무너졌다면, 테일러의 '당신'은 그 시간을 힘을 기르는 과정으로 바꾼다.
침묵은 준비가 되고, 익사는 부활이 된다.
노래 속 '당신(You)'은 연인을 넘어,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 내면의 힘이다. 비극의 여인이 주체적 생존자로 바뀌는, 강렬한 서사적 반전이 여기서 완성된다.
뮤직비디오 속 테일러는 존 에버렛 밀레이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물속 장면을 재현하지만, 이내 강렬한 빛 속에서 물을 박차고 일어선다. 그 장면은 오필리아의 비극을 완전히 뒤집는다. 익사가 아니라 부활의 선언으로..
테일러 스위프트는 데뷔 이후 끊임없이 자신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왔다.
"It's me, hi, I'm the problem, it's me."
그녀는 세상의 시선 속에서 스스로를 비추며 그 거울을 깨뜨리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왔다.
이 곡에서 그녀는 오필리아의 '탑'을 다시 쓴다. 셰익스피어의 오필리아에게 탑은 고립의 장소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방, 아무도 듣지 않는 목소리.
하지만 테일러는 그곳을 재생의 방으로 바꾼다. 혼자 앉아 있던 시간은 무너짐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었다.
"'Tis locked inside my memory, And only you possess the key. 그것은 내 기억 속에 잠겨 있지만, 그 열쇠를 쥔 이는 오직 당신뿐이야."
그녀의 '당신'은 더 이상 타인이 아니다. 이제 '나 자신'이 그 열쇠를 쥔다. 사랑과 고통, 실패와 성장의 기억을 모두 품은 채 그녀는 새로운 세계로 떠오른다.
〈The Fate of Ophelia〉가 빌보드 1위를 기록했다는 건 단순한 음악적 성취가 아니다. 그것은 여성 서사의 진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오필리아는 사랑에 짓눌려 죽었다. 테일러의 오필리아는 그 사랑을 노래로 바꿔 되살아났다.
16세기, 오필리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없었다. 세상은 그녀를 '광기 어린 순수'로 기억했고, 그녀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2025년, 테일러 스위프트는 고전의 슬픔을 팝의 리듬으로 구원하며, 침묵당한 이름을 다시 살아 있는 목소리로 되살려냈다.
비극은 더 이상 여성의 숙명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다시 쓰는 서사가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오필리아는 노래하듯 잠겨갔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오필리아는 노래하며 물 위로 걸어 나온다.
그녀의 목소리가 닿는 곳마다 침묵은 사라지고, 비극은 다시 서사가 된다.
당신의 오필리아는 누구인가? 침묵당한 이름을 다시 불러낼 차례다.
[작가의 말]
이 곡을 연인 헌정곡으로 듣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자기 구원’의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노래는 창작자를 떠나, 각자의 구원으로 흘러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