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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구름 기린 Jul 15. 2019

낙관도 비관도 아닌 그 중간

언젠가 더 외로워질 그때를 위해

일어나서 밖에서 커피 한잔 해야지를 머릿속에서 외치다 오후 다섯 시까지 침대 밖을 벗어나지 못한 일요일.

매형한테 전화가 왔다. 아버지 근처 오셔서 밥 먹으러 나가는 길인데 어디냐며.

갑자기 연락한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준비도 안 돼있고 한 시간은 걸릴 식당 위치에 슬쩍 짜증스러워

'그냥 드시라'며 말을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여러 가지 사연들로 아버지 전화를 잘 받지 않은지 6-7년쯤. 미워한다기보다 그냥 무심함 반과 피곤한 느낌 반으로 남 같은 관계가 된. 운동과 집 정리를 끝내고 두어 시간쯤 지나고 나갈 것을 그랬나 후회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아버지 본인의 만든 결과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오늘도 적당히 합리화를 진행했다.

(긴 사유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일기에서 하기로)


아마 엄마가 없다면, 핏줄이란 이유로 지금 내게 살갑게 나를 받아줄 관계는 없을 거다.

혈연관계를 돌아봐도 중학생 조카에게 그냥 장난 많은 가끔 용돈 쥐어주는 존재, 20년 넘게 같이 살며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할 누나에겐 뭐 이제 나가서 속 시원한 무엇. 그리고 그 가운데서 중재해주는 매형에게는 뭐..

무슨 의미가 있는 존재겠을까. 같은 주소를 가지고 오래 살았지만 드라이 한 시선으로 볼 때 그들의 가정에 오래 끼어있었던 남 같은 존재였을 뿐.


한때는 나도 내 가족이 가지고 싶었다. 잘 되어도, 일이 안 풀리고 고단해도 생각나고 돌아가고 싶은 그.

하지만 아직 오래 나는 사랑을 찾지도 못했고 누군가와 가정을 꾸릴 결심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내게 매일 안부를 묻고 치대며 복닥거릴 가족이란 존재는 지금 없다. 

한때는 그 사실에 분노하고 슬퍼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그게 아직 벗어나지 못한 / 어쩌면 앞으로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를 운명일 거라고 생각하며 순응해가고 있다.


새로운 관계들이 생겨나지 않은지 오래된, 그리고 기존의 관계들도 굳이 많은 걸 참으면서 유지하기보다

적당한 사유가 생기면 고민 없이 피곤해지기 전에 단절해버리고 그냥 나 자신에 집중하기로 한 지 꽤 오래.

결과로 찾아온 건 편하지만 내일 아침 내가 눈을 뜨지 않더라도 내 존재의 흔적이 큰 저항 없이 잘 잊힐 삶이라는 것.


언젠가 드라마틱하게 누군가와 인생을 같이 가게 될 수도 있지만, 

낮에 유튜브에서 본 쪽방촌의 나이 드신 분들의 고독한 삶이 내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지금.


그냥 흐르되, 어느 쪽이 다가와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금의 고독에 악에 받쳐 저주를 퍼붓거나 언젠가는 행운이 찾아오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 없이

가끔 생에 대학 불만에 입에서 '시-발'이 입 밖으로 뛰쳐나와도 

웬일인지 고독이 잠잠하고 평안한 시간이 길어져도 일희일비 없이 담담하게 순응하기. 


언젠가는 누가 정말 찾지 않는 고목처럼 남겨졌을 그때.

담담히 멈추는 그 날까지 혼자 잘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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