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렵지도 너무 쉽지도 않았던 독립
퇴근 버스 안에서 혼술과 음식 리뷰를 하는 스트리머 영상을 보고 있었다. 혼술용 해물탕 팩을 야무지게 끓여서 빨간색 소주를 들이켜는 그 모습, 잘 안 마시는 소맥이 슬쩍 간절해졌다.
집 앞 마트 마트에 들러 물과 맥주 / 소주를 담고, 근처 농수산 마트에서 세일하는 꼬막을 사서 집에 들어왔다. 쌓인 설거지와 분리수거를 정리해놓고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늘 시작하면 일이 많아지는 게 음식이다 보니, 머릿속에서는 뚝딱이 었는데 손대다 보니 일이 많아진다. 인터넷에 20분이면 된다는 해감 법에 따라 소금을 넣고 식초를 두세 스푼 따라서 빛이 들지 않게 비닐로 가려 놓으니 아홉 시, 다시 바지락 거리며 몇 번을 헹구고 솥에 앉혀 불 조절해가며 거품을 걷어내고 윗물만 절반 정도 그릇에 따라 남기고 꼬막은 체에 밭쳐서 불순물은 씻어내고 나머지 국물을 버리고 나니 아홉 시 반. 냄비를 다시 씻어 맑은 국물을 붓고 마늘 크게 한 스푼 소금 약간, 액젓 두 스푼, 손질해 얼려놨던 청양고추 파를 털어 넣어 폭 끓이다 마지막 꼬막을 넣어 한번 훅 끓여내니 열 시가 다 됐다. 일곱 시 반 퇴근버스에서 뚝딱 결심한 저녁 혼술 만찬이 한밤중에야 시작되었다.
냉동실에 넣었던 소주는 적당히 차가워졌고, 찬 맥주와 4:6으로 섞어 한 모금 들이킨 후에 고추냉이 묻힌 꼬막 몇 점을 입에 넣었다. TV에는 나 혼자 산다가 틀어져있었고 순하고 허 당해 보이는 남궁민 싱글라이프를 보면서 영상물은 보고 잘 웃지 않는 내 입에 오랜만에 실소가 터졌다.
별거 아닌 작은 자취방에서 오랜만에 여유롭고 느긋한 느낌이 들었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 피곤함, 오버페이 된 카드 뭐 이런 거는 중요치 않다고 느껴지는 저녁.
편해질 것, 좋을 것을 기대하고 시작한 독립이 아니었다.
다만 어차피 초라해지고 어차피 해야 될 것이라면 더 미루지 말자고 시작한 혼자의 삶.
독립 1년 전부터 꽤 오래 방을 찾아봤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겨울 중개사무소 돌아다니고, 원룸부터 오피스텔까지. 방 나오는 철이 이때가 성수기고 개강이 다가오는 3월 근처에는 끝물이라는 중개사무소들의
얘기에 때로는 조급해지고 대출금과 가용한 통장잔고를 보면서 초라함을 느끼기도 했다.
급작스럽게 지금의 방을 보고 계약서 쓸 때, 대출심사를 받을 때, 잔금을 이체할 때, 전입신고 정리를 할 때
그리고 수저부터 침대까지 방을 채워 넣을 때. 해야 될 많은 것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왔고, 밀려와 쌓인 것들은 한 번에 정리되지 않았고 꽤 오랫동안 고민하고 현실에 쌓여있었다. 이사가 끝난 시점에도 안정되고 편안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하나가 해결되면 하나가 생겨나고,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 무언가가 일어나 생기는 걸 보면 남들이 얘기하는 들뜨듯 좋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적응하기 힘든 월요일 퇴근 후 부산스러운 식사 준비 후 소맥 두어 잔,
그리고 찾아온 오랜만의 안정. 110일, 이제야 이사와 독립이 마음속에서 잠시 쉼표를 찍는다.
여덟 평의 무게. 그리고 이후로 조금씩 넓어질수록 무게는 커지겠지만.
그리고 눈 감는 날까지 월세와 전세금, 그리고 따르는 대출과 / 공과금 /가스비와 결로 / 구멍 난 방충망과
같은 기타의 많은 무게가 내 어깨에 얹히겠지만.
놓지 않고, 한 번에 다 치우려고 욕심부리지 말고 가다 보면
아마 다 현실에 손 놓지 않을 정도의 무게가 닥쳐와서 괴롭히다 해결되고 잊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