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첫 시작
부모의 이혼 + 양친 어느 쪽도 책임져주지 못하는 환경 + 아버지가 누나에게 내 교육보험을 털어 누나 등록금을 대었다는 같잖은 족쇄가 시작이었지만, 36살 2월까지도 같이 살았으니 그런 조건들 다 감안하고서도 때가 지나도록 오래 얹혀살았다. 살다 보니 매형이 생겼고, 군대 상병 휴가를 나오니 갓난쟁이 조카가 나왔고, 유치원 초등학교 올해는 중학생이 됐다. 매형은 살갑지는 않았지만 진득하고 참아주는 성격이라 부담을 준 적은 없었고 조카는 똑같은 성격의 나와 누나사이에서 적당한 메신저가 되어주었지만, 본의는 아니더라도 서로의 골은 깊어졌다. 서로 일주일간 나누는 말은 몇 마디가 채 안 됐다.
생활비를 대면서도 받는 쪽도 주는 쪽도 불만인 쌓이는,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쉬는 날이면 근처 커피숍 소파 자리가 내 방 보다도 편해진 지 오래.
생각하면 2~3년 전쯤에는 나왔어야 했는데, 모든 불편함과 심리상태를 아는 절친의 한 마디가
이번에는 머리에 오래 박혔다.
'서른여섯인데, 올해는 차를 사던가 집을 나오던가 둘 중 하나 하자. 그래도 괜찮을 거 같아.'
독립을 미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직장생활 5년이 넘었음에도 여유롭지 않았던 통장잔고,
그리고 나에 대한 불확실함. 잘해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불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깡통전세에 패악에 가까울 정도의 집주인과 세입자의 얘기들.
그런 것들이 항상 독립과 현재의 유지를 저울에 올렸을 때 나를 안주하게 만들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저울이 급작스레 한쪽으로 기울었다.
결혼이 불확실한 지금 언젠가는 결국 내 삶을 살기 위해 나와야 하고, 환경에 맞는 전셋집을 찾는 어려움,
세입자의 설움, 집안일과 내 삶을 관리해야 하는 일 모두 결국 지금 하지 않으면 미루게 될 뿐이라고.
어차피 비루하게 시작될 처음이면 마흔에 돈 몇 천을 더 쥐고 마주하는 것보다 서른여섯 지금 마주하고
적응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나을 거라고.
일주일 만에 엄마와 누나에게 통보를 시작했다.
나가겠노라고.
낙관론보다 비관적인 조망에 가까웠던 독립 시작의 1월의 추운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