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 이모, 동생, 지윤이, 혜림이, 창규. 그리고 오빠...."
갓 나온 빵을 진열대에 정리하는 점원에게 시선을 둔 채, 내 엄지 손가락을 만지며 너는 말했다.
"살면서 지금까지 만나 온 모든 사람들이 전생부터 이어져 온 관계라면, 나는 영영 인연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글쎄.... 인연이라...."
인연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어 보며 생각했다.
"의미를 다하면 사라지는 인연도 있지 않을까?"
"사라지는 인연?"
너는 내 검지 손가락을 만지며 물었다.
"전생에 이루지 못한 바람을 이번 생에 이루는 거야. 가령,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다음에는 부모가 아닌 자식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빌기도 하잖아. 해드린 게 아무것도 없으니, 다음 생에 자식으로서 큰 사랑을 드리겠다는 마음인 거지."
"의미를 다 한다.... 그럼 전생에 내가 우리 엄마의 엄마였을 수도 있겠네?"
"음.... 아빠였을지도?"
너는 내 손등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까?"
"왕비와 호위무사?"
"오빠가 왕비야?"
"그래서 내가 너를 한 번도 못 이기는 거구나... 이제야 깨달았네."
너는 보조개가 살짝 파이도록 웃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카페 창 너머로 보이는 가로수를 보며 말했다.
"...그런 의미라면 이번 생이 우리의 첫 인연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의미?"
"의미가 다하면 사라지는 인연 말이야."
"그래?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냥.... 우리가 전생에서 이어져 온 인연이라면 어떤 관계로든 한 번은 만났다는 얘기잖아. 그리고 그때 이루지 못한 바람이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난 거고."
나는 유자차를 한 모금 마시고 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전생에 뭘 이루지 못해서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걸까?"
"글쎄? 맺어질 수 없는 관계였을까? 불륜? 신분의 차이?"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응. 얘기해 봐."
"우리가 이번 생에도 이어지지 못한다면, 다음 생에 의미를 다 하지 못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되겠지?"
"인연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만나게 되지 않을까?"
너는 고개를 조금씩 끄덕이며, '그래. 그렇겠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소파 등받이에 몸을 한껏 기댄 채, 내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네 눈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때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