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넥스트 도어

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by 일칠삼공
룸 넥스트도어2.png 출처 : 나무위키


어쩌면 죽음만큼 무서운 것은 외로움일지 모른다.


문석은 영화관을 나오며 생각했다. 죽음은 오롯이 혼자가 되는 일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하는 삶을 살기에, 오롯한 외로움을 모른다. 그렇다면 죽음과 외로움은 같은 말일까. 나를 제외한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홀로 오로지 존재한다면, 죽음과 외로움은 같은 말일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땅거미 내려앉은 어두운 밤공기가 문석을 맞이했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곤, 목도리를 고쳐 맸다. 생각만큼 춥진 않았다. 마땅한 저녁 약속도 없었기에, 집 근처까지 걷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에게 헤어짐을 통보받은 날로부터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지난날의 몇 차례 연애 속에서 문석은 주로 헤어짐을 통보받는 쪽에 위치했다. 다만 모든 통보는 다른 계절과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말, 다른 표정, 다른 마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모든 통보는 늘 새로웠다.


문석은 걷는 내내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곱씹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른 영화의 대사를 조용히 되뇌었다.


"그들의 최후의 종말처럼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내린다."


북적이는 상권가를 지나쳐, 좁은 골목에 위치한 한적한 카페까지 걸었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노트북을 꺼내 워드프로세서를 켰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재즈를 들었다. 그리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골목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쩌면 헤어짐은 죽음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한 문장을 적고 다시 골목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엉덩이를 흔들며 골목을 지나갔다. 이내 문장을 덧붙였다.


어제 그녀가 죽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세상에서 그녀가 죽었다. 그녀는 SNS를 하지 않는다. 카카오톡도 쓰지 않는다. 그녀의 지인과 나의 지인 사이에는 일말의 접점도 없다. 그녀는 내게 11자리 숫자로만 남아있다. 어쩌면 헤어짐은 죽음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문장을 고민하고, 몇 글자 고치는 사이 커피 잔이 비었다. 문석은 그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을 생각했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이어지는 인연도 있다.


문석은 방금 떠오른 생각을 문장으로 다듬었다.


"그렇지만 네가 남기고 간 좋은 것들이 내 안에 있어. 나를 더 좋게 만들고 있어. 겨울이면 따듯한 차를 마시는 습관과 과일을 챙겨 먹는 일, 밥을 차려먹는 즐거움, 플라스틱 용기를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헹군 뒤에 분리수거하는 일이 그래."


문석은 문장을 가만히 들여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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