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아쉽게도 1.2점 차이로 2등입니다. 다음에는 좀 더 분발해서 꼭 수주할 수 있도록 애써봅시다.'
석우는 한숨을 쉬며 회사 메신저 창을 닫았다. 벌써 세 번째 2등이다. 올림픽이었다면 은메달이라고 받았겠지만, 광고의 세계는 냉정하다. 1등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2등과 꼴등은 같은 말이다. 2등의 명예는 매출세금계산서에 기록되지 않는다.
팀원들의 눈에서 희망의 열의를 발견한 날로부터 얼마나 멀어진 걸까. 요즘의 회사는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떨어지는 일에 깨나 익숙한 듯 덤덤이 점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석우 본인도 할 말은 없다. 그 또한 점수를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편에 속해 있으니까.
그렇기에 이번에 배정받은 신입사원 교육 업무가 내키지 않았다. 의지와 열의로 가득 찬 눈을 마주할 자신도 없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신입사원의 열의를 삽시간에 녹여버릴까 두려웠다. 아무리 꽝꽝 얼은 빙하도 사막 한가운데 두면 순식간에 녹기 마련이니까.
"세 번이나 2등이라고요? 아쉽다.... 그런데 왜 계속 2등 한 거예요?"
"한 번은 대진운이 나빴고, 한 번은 이유를 모르겠고, 마지막 한 번은 우리의 준비가 부족했고?"
"아.... 확실히 현장은 분위기가 다르네요. 이번에는 따올 수 있을까요?"
"글쎼.... 그래도 다들 작정하고 준비했으니까 이번에는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저는 사실 2등이어도 괜찮아요.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큰 도움은 못 되겠지만 자료 써치라도 더 찾을게요. 이번에 한 번 해봤으니까,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석우는 생각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녹지 않는 빙하가 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석우는 이번 제안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부서장 몇몇이 중심이 되어 아이디어를 전개하고,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총괄 책임이 '이 정도면 괜찮네'라며 방향성을 매듭지으면 제안서의 방향이 결정된다. 지난 제안서 회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패턴의 반복.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이 심사위원의 고개도 끄덕이게 만들지는 석우 본인도 알 수 없었다.
"팀장님, 주말에 집 근처 카페에서 제안서 업무를 해도 식비 지원이 될까요?"
"뭐?"
"아니.... 다음 제안 때는 아이디어도 열심히 내고 싶은데 주중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요. 좋아서 하는 일이니 대체 휴무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점심 식대 정도는 지원이 가능할까 해서요."
"...음. 아무래도 그런 사례가 없었다 보니, 보고는 필요할 것 같네. 회사 업무를 했다는 증빙만 잘한다면 별 문제없을 것 같으니 본부장님께 잘 얘기해 볼게."
"네! 감사합니다! 히히."
석우는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 끼인 채 13년 전을 떠올렸다. 대표를 포함하여 7명이 전부였던 작은 회사. 카피라이터와 광고기획자의 일을 겸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나날들. 광고주 접대를 위해 새벽 3시까지 술자리를 지키고, 제안서 작성을 위해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출근했던 열의로 가득한 시절들.
본인이 담당한 업무가 사회의 톱니바퀴 중 하나로 기능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하염없이 충만했던 순간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지친 얼굴의 직장인들이 열차 안으로 밀어닥쳤다.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은 어떻게든 열차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등으로 사람들을 강하게 밀치며 몸을 욱여넣었다.
석우는 밀치고 밀어내는 사이에서 강한 압박을 느끼며 생각했다.
'13년에 걸쳐 1.2점만큼이나 멀어졌구나. 13년에 걸쳐 1.2점만큼이나 멀어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