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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Nov 17. 2020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뚱땅뚱땅 즐거운 취미생활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일렉기타를 치던 친구가 갑자기 제안해서였다. 악기는 밴드 악기 중에 선택해야 했다. 왼손잡이인 나는 일반 기타를 치기엔 너무 어색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왼손잡이용 기타를 사자니 가격이 만만치 않단다. 그래서 드럼을 원하던 다른 친구가 양보해줘서 드럼을 선택하였다.


  전부터 악기를 하나쯤 배우고 싶긴 했다. 초등학생 때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피아노를 배웠으나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선 George Michael의 Careless Whisper를 듣고 색소폰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아 색소폰을 배우려고 했으나, 악기의 가격은 물론이고 학원 수강료도 다른 악기에 비해 더 비쌌다. 지금처럼 배울 수 있는 인프라가 풍부했던 것도 아니고. 색소폰에 대한 나의 열정은 자본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래서 드럼을 택했다. Ez2DJ, 비트매니아, 캔뮤직, 오투잼 등 어렸을 때부터 리듬게임을 즐겨하던 나로서는 리듬이나 박자에 대한 흥미가 있었다. 어설프지만 드럼매니아라는 게임으로 드럼스틱을 쥐어본 적도 있다. 현악기, 관악기보단 타악기가 땅땅 치는 맛에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이참에 제대로 배워 무기력한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여 일렉기타 두 명, 베이스 기타 한 명, 드럼 한 명이 되었다. 처음 합주실에 모여 뭣도 모르고 뚱땅뚱땅 쳐대니 마냥 신나기만 했다. 그래도 그간 게임했던 게 허사는 아니었는지 기본적인 박자는 곧잘 치곤 했다. 그렇게 첫 모임이 끝나고 합주할 곡을 정했다.


1. Blur - Song2

2. Muse - Time is running out

3. Radiohead - Creep

4. Maroon 5 - This love


  입문자가 치기엔 버거운 곡들이 좀 섞였다. 제안한 친구가 너무 쉬운 곡을 치면 지루해서인지 나를 과대평가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이 네 명중 나와 일렉기타를 맡은 원숭이 군은 악기가 처음이다.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우당탕탕 화려한 연주가 섞여있는 부분을 보니 머리가 하얘졌다. 게다가 다른 친구들은 악기를 사면 집에서 무한정 연습을 할 수가 있지만 드럼은 그게 아니었다. 집에 전자드럼을 놓을 공간도 없을뿐더러, 가족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전자드럼은 포기해야 했다.


  자세도 뭣도 모르고 무작정 유튜브 영상만 보고 치려고 하니 버벅대는 부분은 계속 버벅댄다. 스틱은 지들끼리 서로 부딪힌다. 집에서 베개나 두들기고 있어야 하니 이게 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합주실이나 드럼연습실을 알아보니 월 30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었다. 10년 전 색소폰 강습료 월 20만 원보다 더 비쌌다. 악기 하나 배우려는 게 이렇게 사치스러운 일이었나. 심리 상담료에 합주실 이용료에 월 고정비만 60만 원이 깨질 위기였다. 취미도 돈이 있어야 하는구나.


  똑같이 비싸다면 전문가 레슨이 있는 학원이 낫지 않겠나 싶었다. 예약도 없이 역 주변에서 보았던 실용음악학원 문을 두드렸다. 예전에 다녔던 PT샵 옆 고요한 실용음악학원이었다. 늘 조용해서 운영을 하는지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귓가로 쏟아지는 악기 소리들. 다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열심히 살고 있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몰랐는데 오픈한 지 8년이나 된 학원이었다. 심지어 수강료도 16만 원으로 오픈한 이래로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단다. 16만 원으로 레슨에 매일 연습까지 가능하다니. 냉큼 질러버렸다.


  수업은 다음 주부터 이루어지기에 그 사이에 드럼이라도 만져보자고 미리 연습실을 예약했다. 마구잡이로 치는 모습을 선생님이 보시면 어떻게 보실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인다는 건 역시나 긴장되면서도 신나는 일이다. 연습만이 나에게 여유를 안겨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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