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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Nov 28. 2020

나의 양악 재수술 일기(1)

13년 전 하악수술의 기억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좆됐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그러니까 내가 중2 언저리부터 슬슬 오른쪽 턱이 욱신거리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좀 더 지나니 입을 닫을 때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입을 닫을 때 '우득'소리가 나며 닫히곤 했다. 물론 신경이 눌리는 통증은 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엔 입을 조금 크게 벌리면 왼쪽 턱관절이 걸려 닫히지 않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상하게 여겨 한의원이며 정형외과며 다니며 물리치료나 침 치료를 받았다. 통증은 쉽게 호전되지 않았고, 입이 닫히지 않는 건 여전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니 오른쪽 볼이 불룩했고 치아 중심선도 맞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러던 중 어머니 가게에 양악수술을 받아서 턱이 좋아진 사람이 있다며 청담동의 모 구강악안면외과를 소개받아 찾아갔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없었고, 인터넷에 양악수술에 대한 정보도 그다지 많았던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양악수술을 하다 죽었다.'라는 괴담만이 무성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에 사람 죽이는 수술이 어딨나 싶겠냐만은 당시에는 그랬다.  그만큼 위험한 수술이라는 뜻이었겠지. 병원에서 X-ray며 얼굴 사진이며 찍어보니 왼쪽 턱이 더 길다며 교정 수술을 하면 해결이 된단다. 그렇게 내 고등학교 생활은 교정기와 함께 했고, 졸업과 함께 편악(하악) 수술을 감행했다.


  내가 미쳤지. 다행히 죽진 않았지만, 정말 죽고 싶은 나날이었다. 하루하루 숨을 수동으로 쉬는 기분이었다. 입은 철사로 위아래를 묶어놔서 말은커녕 먹을 수도 없었다. 액체만 먹으니 허기가 가시질 않았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가족들의 무수한 주관식 질문이었다. 내가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들 망각했는지 계속 열린 질문으로 말을 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잠긴 입으로 아우성을 치는 게 전부였다. 가족들은 무슨 말이냐며 되물었다. 말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좌절했고, 가족들이 야속했다. 차라리 말을 걸지 말지.


  2007년 유명 연예인이 잇따라 자살하는 일이 생기면서 '베르테르 효과'라는 것이 이슈가 되었다. 쉽게 말하면 자살은 전염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정말 죽고 싶었다. 시간만이 날 해방시켜줄 수 있었지만, 그 시간들이 너무 괴로웠다. 그 얄팍한 철사 하나가 날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분하고 무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 일주일인데 그걸 못 참고.


  다른 무엇보다 수술 당일 밤과 턱을 고정하는 기간이 가장 고문이었다. 13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에겐 생생하게 남아있다. 다시 한다면 돈을 받고도 하기 싫은 수술이었다. 수술 끝에 입도 잘 여닫히고 통증도 사라져서 새 삶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서서히 증상이 다시 시작돼 7년 뒤, 다시 입이 안 닫히게 되었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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