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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3. 2018

편지6_역사에대해

역사란 무엇인가

K에게: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고 거론하며 토론합니다. 그때의 역사는 지난날의 '자랑스러움'을 발굴하고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움'을 잊지 않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처럼 큰 아픔과 상처가 있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본질은 자학이요 자책이 아닐까요? 반성은 단지 이를 순화한 단어이고요. 이것이 역사에 대한 저의 소신입니다. 역사를 통해 '자랑스러움'을 확인하려는 욕망은 전체주의 역사관에 가깝습니다. '부끄러움'을 잊지 않기 위한 관점이야말로 말하자면 평화주의 역사관에 가깝고요. 우리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역사관에 동조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학사관을 후대에 가르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공동체의 장밋빛 비전을 위해 침략과 패배와 잔인성을 은폐하고자 하는 생각을 동의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런데 마찬가지의 잣대가 우리에게도 적용되지 않겠습니까? 조선의 무지와 굴종과 병폐가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 역사에 대해 한편으로는 침묵하고 외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인가를 발굴해서 자랑스럽게 침소봉대하는 태도는 자학사관을 후대에 가르칠 수 없다는 생각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민족의 자랑스러움'을 위해서 허위를 말하고 사실을 과장하면서 '민족의 부끄러움'을 지적하는 견해를 허용할 수 없다는 생각은 위선자들의 사상이 아니겠습니까. 그와 달리 역사의 다양한 부끄러움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술하려는 생각이 후대를 위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자학의 역사관, 자책의 역사관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부끄러움을 밝히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생각이 오히려 위험하고 창피합니다. '우리의 역사는 후졌다'라고 말했다고 한들 그게 뭔 대수겠습니까. 나는 오히려 그렇게 솔직히 진술한 다음에 생긴 빈자리에 우리 세대 혹은 다음 세대의 꿈과 희망과 나아갈 길에 대해 씨앗을 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13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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