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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5. 2018

지식2_예술과디자인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

멋지게 디자인된 제품을 보면 우리는 흔히 예술에 비유합니다. “이건 예술이야!”라며 감탄하기도 하지요. 예술작품이든 디자인 작품이든 사람들로 하여금 심미감을 물씬 느끼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사람을 홀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고 또 서로 교통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예술과 디자인은 완전히 다릅니다.


행위의 주체가 다릅니다. 예술은 예술가가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합니다. 그는 세계를 창조하며 완벽하게 통제합니다. 예술가는 창조주로서의 아우라를 갖습니다. 창조의 씨앗은 그 안의 세계에서 비롯됩니다. 자기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와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세계를 ‘창조’합니다. 창조는 안에서 얻는 것이며 바깥세상의 것은 그에게 비본질적입니다. 

Auguste Rodin의 1882년 경 (https://goo.gl/FhBf5K)



*

디자인의 주체는 디자이너입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희망을 보여줄 뿐이지 자기 안의 세계를 창조하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는 세계를 ‘해석’합니다. 바깥세계의 것은 디자이너에게 본질적인 것이며 그녀 안에 있는 독창적인 정신세계가 오히려 비본질적입니다. 그러므로 디자이너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세계의 요구를 경청합니다. 디자이너의 아우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디자인은 복제를 의도하기 때문이며 또 복제됩니다. 뛰어난 예술가나 매력적인 디자이너 모두 탁월한 기예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될 겝니다. 하지만 이처럼 분명히 다릅니다.

 Adler Safety Bicyle. 1889년



예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예술품 하나하나가 고유한 작품이며 하나의 세계입니다. 디자인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규정되는 목적에 이르도록 하는 수단입니다. 수단은 고유한 스타일이 없습니다. 어제의 스타일은 오늘 다른 것으로 교체됩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어제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술가는 리서치하지 않으며, 타인이 결정한 한계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가 세상의 일을 참조할 때에는 차용하거나 복제하려는 의도를 갖지 않으며 재창조의 눈으로 세상을 관조합니다. 귀가 얇은 사람은 예술가가 아닙니다. 디자이너는 리서치를 하며 타인이 결정한 한계에 묶입니다. 결박과 해방은 한 몸입니다. 그녀는 자기의 디자인 작업에 적극적으로 차용하거나 부분적으로 복제하는 의도를 지니며 세상을 관찰합니다. 경청하지 않는 사람은 디자이너가 아닙니다.


예술가는 협업하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그는 자기 색채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어쩔 수 없이 고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 세계에 희망을 제안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세계관을 드러낼 뿐입니다. 예술가가 자기 색채를 드러내지 않고 협업에 충실하다면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작업하는 것입니다. 그게 나쁘다고 볼 수는 없겠죠. 그럴 수도 있습니다. 디자이너는 협업하기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녀는 자기 색채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는 자기 세계관을 보이는 게 아니라 더 나은 희망을 제시함으로써 존재합니다. 자기 색채를 고집하면서 협업에 난색을 표한다면 그녀는 디자이너로서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작업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술가는 디자이너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디자이너가 예술가처럼 행위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양쪽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가 예술가로서 디자인하지 않고, 디자이너가 디자이너로서 예술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지적소유권 분야에서 일을 합니다. 제 분야에 속한 이야기도 해 보지요. 예술가의 권리는 기본적으로 그 작품에 대한 ‘저작권’입니다. 구매나 경매를 통해 소유권이 넘어가더라도 저작권, 즉 복제할 권리는 예술가의 것입니다. 상업성은 예술의 본질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도 인간이고 생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저명한 예술가가 아니라면 작품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가 어렵습니다. 복제품이 많이 팔린다면 예술가에게도 좋겠죠. 예술가는 자기 작품이 무엇이며 그것의 창작일과 명칭 정도만 잘 기억하고 있으면 됩니다. 작품이 세상에 나온 날 저작권도 함께 발생하지요. 그런 기억이 곧 자기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대부분 예술가는 그 정도의 일은 합니다. 복제품을 만들었을 때 그 수익(저작료)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계약을 제외하면 계약서 쓸 일도 별로 없습니다. 예술가 홍길동의 작품 이미지를 인쇄한 우산을 임꺽정이 만들어서 판매할 수 있겠죠. 예술품의 상업적 복제의 예입니다.


디자이너의 권리는 디자인 작업 자체가 상업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권리가 나옵니다. 공업적으로 생산하여 물건과 분리될 수 없는 디자인이 있다고 가정하지요. 대개 3 D 산업디자인입니다. 그것을 법적으로 보호하려면 디자인특허(디자인등록)를 신청해야 합니다. 디자이너는 새로운 기능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디어는 발명으로 간주하여 특허를 신청합니다. 솜씨 좋은 디자이너의 디자인은 만약 물건과 분리되어서도 의미를 갖게 된다면(예컨대 문양이 그러합니다), 그런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표현은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는 때때로 새로운 언어를 생각해 내기도 합니다. 상표권은 이때 거의 유일한 보호수단입니다.


이렇듯, 예술과 디자인은 크게 다릅니다. 모든 예술작품이 빼어나며 모든 디자인 작품이 탁월한 것은 아닙니다. 예술가의 세계관은 인정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작품은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예술과 훌륭한 디자인에는 모두 탁월함이 있습니다. 세상만사 다 그렇죠.


(2014년 겨울 무렵에 쓴 글. 2015년 웹을 통해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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