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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Dec 31. 2021

공리주의

책소개: 인류의 논설과 논술의 본보기

19세기 영국 런던. 1830년에서 1882년까지 발행된 프레이저스 매거진(Fraser’s Magazine)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문학평론, 지리 해설, 정치적인 기고문이 주로 수록된 아주 두꺼운 잡지였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월간조선>과 <창작과비평> 사이의 특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삽화도 사진도 없는 문자로 가득한 잡지였던 것 같다. 지면에 더 많은 기사를 채우기 위해 2단으로 구성됐다. 아래 사진은 이 매거진의 레이아웃이다. 요즘 시대에 이런 잡지를 누가 읽겠는가? 하지만 당시에는 사람들이 이걸 읽었다. 



이 잡지는 월간지였지만, 1년에 두 번씩 6개월치를 묶어서 다시 출간했는데, 전체가 위와 같은 지면으로 이루어졌다. 좌측 상단의 ‘776’이라는 쪽수를 보라. 당시 영국인들의 ‘텍스트 중독’을 상상해 볼 수 있다. 


1861년 JS 밀이 프레이저슨 매거진 10월, 11월, 12월호에 <프레이저스 매거진>에 ‘UTILITARIANISM’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다음과 같다.


논문이 아닌 잡지에 기고한 이 글은 그 후 2년 후에 정식 책으로 출간된다. 그것이 바로 <공리주의>다. 그다지 많지 않은 분량의 이 책은 밀을 일약 사상가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어째서? 인류의 모든 논설과 논술의 본보기를 이 책이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사회비평을 하고 칼럼을 기고하고 논설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당신의 생각을 이미 밀이 하고 있기 때문이며, 당신의 논리적 강점을 뒷받침하거나 혹은 논리적 약점을 밀이 이 책을 통해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험이나 논문에서 논술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우선 현대 사회의 '공리주의적 작동원리'가 이 책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정확하고 적확한 표현과 논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이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다. 생각의 깊이와 너비 면에서, 그리고 자기 주장을 펼쳐내는 논증의 세계 면에서, 밀의 <공리주의> 제5장 ‘정의편’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 독자들은 이 <공리주의>라는 책을 잘 모른다. 듣기는 들어도 읽지는 않는다.


자, 이 책을 소개해 보자. 

먼저 이 번역본의 목차.



흔히 공리주의는 ‘양적 공리주의’와 ‘질적 공리주의’로 구별되고, 전자는 밀의 정신적 스승인 제러미 벤담이 주창했으며, 후자는 밀이 주창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도덕론으로서 ‘공리주의’라는 말 자체가 밀이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이다(밀 본인의 주장). 그때까지 벤담의 이론은 ‘최대 행복의 원리’로 알려졌다. 


이러한 행복론은 벤담과 동시대에 바다 건너편에서 살았던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에 의해 전면적으로 비판되었다. 행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는 본능에 불과하므로 도덕의 원리가 될 수 없으며, 사람마다 다른 도덕 감정도 선한 행동을 이끄는 원천이 아니라고 칸트는 주장했다. 당시 유럽 대륙뿐 아니라 영국의 지성계에도 칸트가 미친 지적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러나 칸트철학이 사회 진보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철학이라고 확신한 밀은 칸트의 주장을 철저히 반박하면서, 한편으로는 영국 철학의 경험주의와 도덕감정론의 전통을 구해 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행복이야말로 도덕의 제1원리임을 설득해 내고자 했다. 그런 지적 기획의 산물이 바로 이 책이다. 만약 이 책에 누군가 부제를 붙인다면, ‘칸트철학 비판’이라고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밀의 <공리주의>는 섬세한 기획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저술된 책이다. 


제1장 ‘개요’에서 밀은 칸트주의와의 철학적 격돌을 인류사적인 논쟁 차원으로 격상시킨다. 에피쿠로스학파 대 스토아학파의 논쟁으로 철학적 대립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슬며시 소크라테스를 공리주의 철학자로 끌어들인다. 


제2장 ‘공리주의란 무엇인가’에서는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데 사용했던 소크라테스의 논법을 차용하면서 공리주의에 대한 다양한 비판 혹은 오해를 하나씩 소개하면서 반박한다. 그러면서 ‘공리(Utility)’란 결국 최대 행복의 원리임을 선언한다. 


제3장에서는 칸트철학에 의해 도덕법칙에서 추방된 감정을 다시 복권시키면서 ‘도덕감정론’을 옹호해 낸다. 


제4장 ‘공리의 원리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에서 행복 추구는 인간의 실제적으로 지니는 목적임을 설파하면서 이런 사실이야말로 공리가 도덕의 원리임을 증명하는 것임을 논증한다. 그러면서 스토아학파의 덕이론을 비판한다. 


제5장 ‘정의편’에서 밀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면서 정의와 공리의 관계를 설명한다. 책이 출간된 시점에서 15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사회에서도 적용될 만한 다양하고 풍성한 사례가 제5장에서 빛을 발한다. 밀은 정의 개념에서 ‘편의적인 것’을 분리해 낸다. 또한 정의의 개념에는 저마다 다른 다양한 생각들이 관여되어 있음을 밝히면서 정의도 결국 공리의 개념을 따른다고 주장한다. 또한 정의에 내재되어 있는 강력한 정의감도 결국 도덕감정의 일종임을 논증한다.


밀의 <공리주의>는 분량이 적고 각 장에 서술된 내용 자체도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복잡한 책이며 독서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다루는 논점이 많고 칸트철학에 대한 선행 이해가 필요한 데다가 저자의 숨은 기획의도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편집후기와 편집자 해설’은 공리주의의 진수를 맛보고자 하는 독자에게 길잡이 역할을 한다.



책은 2022년 1월 15일, 곧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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