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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Feb 10. 2022

바다의 발견

김영춘의 해양 국가 이야기 (4) 

영춘의 <바다의 발견> 2부에는 <어촌뉴딜300사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이게 은근 재미있어서 책에 수록된 글을 여기에 공개합니다.


<어촌뉴딜300사업>은 우리나라 연안과 도서 지역의 작은 항포구 300개의 선착장과 편의시설 등을 확대,정비해 주는 사업이다. 이 일은 전적으로 내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해서 진행되었다. 한국의 항포구 중에서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국가어항이 113개소이다. 어촌뉴딜사업은 이런 국가어항을 제외하고, 광역지자체가 관리하는 지방어항 290개소, 기초지자체가 관리하는 어촌정주어항 627개소와 거기에도 끼지 못하는 소규모 항포구들(1270개소, 2020년 기준)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다. 


내 문제의식은 ‘선진국의 해안 소도시 항구나 어항에 비해 우리나라의 지방 항포구들은 왜 그리 낡고 초라한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사적 여행이든, 공적 출장이든 외국에 가게 되면 가급적 그 도시의 뒷골목이나 시골지역을 가보길 즐겼다. 그런 중 들렀던 해외의 항포구들은 규모가 작더라도, 혹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어선뿐만 아니라 작은 요트, 보트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어 활력이 느껴졌고 참 보기도 좋았다. 반면 우리나라 연안과 도서지역의 작은 항포구들은 거의 대부분 선진국의 그것들에 비해 너무 낙후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 마을의 어선조차 정박할 계류시설이 없어 대충 긴 줄로 묶어 놓고 승선할 때 줄을 잡아당겨 배에 오르는 곳도 많다. 그러니 외부에서 오는 배들이 그 어촌에 정박, 체류하는 일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가뜩이나 자리가 없으니 어민들이 외부 배를 못대게 하기 십상이다. 


언젠가 인천 영종도의 왕산마리나를 시찰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강 하구가 휴전선으로 막혀 있는 서울로서는 외해와 바로 연결되는 가장 가까운 요트 마리나marina이다. 그곳에서 어느 요트 선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제주도를 향해 왕산을 출항한 요트가 제대로 항해의 맛을 느끼려면 연안을 벗어나 외해를 달려야 하는데, 흑산도쯤 가기 전에는 정박할 항포구가 없어 애를 먹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충청남도 연안에 접근해도 그럴듯한 요트 마리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촌 포구에서는 문전박대 신세다. 하는 수 없이 격렬비열도 부근 바다에 닻을 내리고 쉬는 경우도 있다면서 등산으로 치면 ‘비박’을 하는 셈이라고 한탄하는 것이었다. 


이런 실정에서 어떻게 해양관광이나 수산가공업 같은 어촌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며 인구가 감소하지 않도록 지역 정주 여건이 마련될 수 있겠는가? 2017년 말 시점에 나는 이런 지방 항포구들을 관할권이 있는 지자체들의 책임 하에 제대로 개선, 정비하자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는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해수부 담당 공무원들은 어촌을 낀 대다수 지자체들의 재정 여건상 아마도 30~4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이런 낙후된 지방 항포구들을 현대화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니 해수부의 간부들은 그 성사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 일색이었다. 골자는 이러 했다. 지방자치단체 관리 시설에 대해 중앙정부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며, 설령 해수부가 안을 내더라도 최종적으로 예산권을 쥔 기획재정부가 동의해 줄 리 만무하다는 것이었다. 간부들이 난색을 표하고 그 논리가 틀린 것도 아니어서 실무 작업을 진척시킬 추진력이 생기질 아니하니 나 역시 난감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후 물꼬는 뜻밖의 곳에서 우연히 터졌다.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 초대로 해수부 고위 간부들이 몇몇 수석비서관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식사 도중에 내가 2008년에 나온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 이야기를 꺼냈다.


 

케이블 TV에서도 곧잘 재방영을 하여 본 사람들이 꽤나 많은 영화였다. 그리스의 작은 섬에 사는 옛 연인의 초대를 받고 찾아간 세 남자와 모녀를 둘러싼 줄거리다. 나는 그들에게 영화 스토리를 말한 게 아니라 그 섬에 도착하는 장면부터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섬의 선착장과 부잔교 이야기를 했다. 그리스는 작은 섬에도 저런 시설을 갖춰 놓고 육지에서 찾아가는 배들이 불편 없이 정박하게 하는데, 그래서 섬 관광이 활성화되는데, 우리는 그런 모습을 그저 부럽게 바라만 본다고 말이다. 정부가 나서서 이런 사업을 해 보자고 아이디어를 내도 공무원들이 중앙·지방정부의 영역 문제를 들어 어렵다고 하니 답답하다는 심정도 피력했다. 이런 논리를 펴면서 진지함을 더했다. 


“어촌뉴딜300사업 구상은 이런 것입니다. 1개소당 30억 정도의 예산을 들여 작은 생활밀착형 SOC 300 개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고속도로, 고속철도, 국도, 다리 등 대형 인프라를 많이 건설했고, 그건 이제 선진국을 능가할 만큼의 수준입니다. 이제 생활밀착형 SOC를 추진할 때입니다. 이런 작은 인프라 건설은 실제 지역주민들의 일상적 삶의 짊을 높일 것이고, 거기 투입되는 재정도 대형건설사가 아닌 지역중소기업들에게 돌아가 지역에 선순환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일석삼조의 사업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정책실장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로부터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호응과 공감의 발언이 이어졌다. 심지어 왜 진작에 말을 안했냐는 힐난도 있었다. 9월 정부 예산안 제출 전에 말했으면 계획에 사전 반영할 수 있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장관이라도 부하 직원들도 설득시키지 못하면서 무조건 위에서 밀어붙일 수는 없다는 게 내 마음이었다. 또 그래서는 억지춘향식으로 일은 진행되겠지만 담당 공무원들의 공감과 확신 속에 추진하는 일과는 성과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하여튼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해수부 간부들도 이 사업이 영 터무니없는 망상이 아니라 성사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느낀 출발점이 되었다. 


(후략)



책은 곧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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