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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Feb 10. 2022

바다의 발견

김영춘의 해양국가 이야기 (3)

두 개의 에세이 전문을 공개합니다. 먼저, 제1부 네 번째 글, <귀양살이의 바다>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합니다. 



200여 년 전에 씌여진 <자산어보>라는 책을 보고 경탄한 적이 있다. 이 책은 조선의 한 선비가 서해의 외딴 섬 흑산도에서 오랜 세월 유배생활을 하며 우리 바다의 각종 해산물들을 관찰하고 상세히 묘사한 보기 드문 박물기이다. 과거 조선시대에서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이 주로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담론을 다루는 데 쓰였다. 그런데 이 절해고도에서 유생의 문재文才가 비로소 실용적인 데 사용된 것이다. 자연과학의 발달이 서양의 기술문명을 융성시켰다. 그런 역사로부터 소외된 나머지 우리나라가 식민지의 굴욕과 분단,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겪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자산어보의 가치가 더욱 돋보인다. 이 흑산도는 조선 말엽 면암 최익현 선생이 유배를 와 서당에서 학동들을 가르친 곳이기도 하다. 


저자인 정약전은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이다.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목으로 바로 밑의 동생 정약종은 사형을 당했다. 자신은 서해 끝의 외딴 섬 흑산도로 유배형에 처해졌고, 동생 정약용은 강진에서 오랜 유배 생활을 했다. 정약전은 귀양살이 16년 만에 우이도에서 사망했다. 그곳은 그래도 흑산도보다는 육지에 더 가까운 섬이었다. 강진에 있는 동생 정약용이 유배가 풀렸을 때 자신을 만나러 올 것을 생각해서 큰 바다를 건너오게 할 수 없으니 좀 더 육지 쪽으로 거소를 옮겼다고 한다. 지도를 보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두 형제의 우애가 그렇게 각별했던 것 이다. 하지만 형제는 끝내 다시 만나지 못했다. 정약전이 죽은 지 2년 후인 1818년에야 정약용의 유배가 풀렸기 때문이었다. 2021년 이준익 감독은 정약전과 <자산어보>의 공저자 격인 어부 장창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흑백영화로 만들었다. 장창대의 이야기는 가공의 설정이 많이 가미되었다. 설경구가 정약전 역을 맡고 변요한이 정창대 역을 맡았다. 


나는 정약전의 바다, 그리고 그 바다를 멀리서 바라본 정약용의 바다, 그 귀양살이의 바다를 생각했다. 정약용이 귀양 생활을 했던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은 멀리 강진만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속에 있다. 정약용이 실학을 집대성하고 많은 저서를 후세에 남길 수 있었던 것이 이 오랜 바닷가 유배지 생활로 인한 일이었다. 개인의 불행이 세상에는 행운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의 한 사례인 셈이다. 


추사 김정희의 귀양살이도 그렇다. 그는 당파싸움의 희생양으로 흑산도보다 더 먼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제주 대정현에서 9년간 귀양살이를 하며 세한도 등 불후의 걸작을 남기고 추사체를 완성했다. 이도 역시 그를 세상 끝 제주도 남쪽으로 귀양 보낸 권력자들이 예상치 못했던 결과일 것이다. 지금 그 대정에 가면 추사 유배지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정난주 마리아의 묘가 있다. 천주교에서 가꾸어 놓은 작은 성지이다. 정난주는 정약용의 조카딸로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황사영의 아내이다. 그 자신도 관비의 신분으로 격하되어 제주도로 보내졌는데 돌을 갓 지난 아들과 함께였다. 그 어린아기마저 추자도에 유배형이 내려졌으므로 중간에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혼자 떠나는 뱃길이 얼마나 가슴 찢어지는 이별의 순간이었을까 차마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녀는 제주도에서 관비로 살아가다 1838년 병으로 사망했다. 


남해도 남해읍에는 유배문학관이 들어서 있다. 이 섬 역시 단골 유배지였던 것 같다. <구운몽>으로 유명한 김만중을 비롯, 고려와 조선시대를 합쳐 180여 명의 유배객이 다녀갔다니 말이다. 조선시대의 유배형 중에 절도안치絶島安置는 중죄인에게 내려진 벌이었는데 제주도, 흑산도 등이 그 대상이었다고 한다. 거제도, 진도 등도 많은 유배객이 다녀간 섬이었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당파싸움 등 터무니없는 일들로 장기 유배형이 남발되었는데 그 덕분에 우리의 정신문화 자산이 훨씬 더 풍부해졌으니 쓸쓸하고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2부에 수록된 <곽재구 시인의 포구 기행>이라는 글입니다. 작가가 해양수산부 장관을 하고 있던 시절에, 전혀 모르는 출판사에서 장관 앞으로 보내온 책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2018년 여름의 어느 날 세종시의 해수부장관실로 책 한 권이 우송되어 왔다. 곽재구의 <신포구기행>이었다. 지은이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지만 면식은 없는 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책을 보냈을까? 우선 제목이 내가 하는 일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 머리글부터 읽어 보았다. 그런데 일단 시작을 하니 책을 놓을 수가 없어 퇴근하면서 관사로 들고 가 며칠 동안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은 곽 시인이 젊은 시절부터 우리나라의 섬과 작은 포구들을 찾아다니며 마음의 여행을 했던 기록과 그때그때 썼던 시들을 함께 수록한 아름다운 책이었다. 나는 이 책에 깊은 마음의 감 동을 느껴 그가 2002년에 출간했던 전작 <포구기행>까지 사서 내처 읽었다. 


그러고는 <신포구기행> 100권을 구입해서 청와대 수석들과 내각 장관들, 국회 상임위원장들에게 선물로 우송했다. 나중에 정말 따뜻한 책을 잘 읽었다고 여러 사람들이 내게 감사를 표해 선물한 보람이 있었다. 이후에야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내게 책을 보내 준 담당자와 통화를 해 보니 책 내용이 해양수산부와 직접 연관이 있을 것 같아 자기 판단으로 장관실로 한 부 보냈다는 말이었다. 나는 보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의 선물 이야기도 전했다. 그로서는 한 권의 선물이 백 배로 커져 우리나라 정치, 정부 지도자 전부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즐거웠을 것이다. 


나는 대학 문학동아리 시절이던 1982년에 곽재구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작 <사평역에서>를 처음 접한 이후 따뜻한 서정이 넘치는 그의 시를 좋아했다. 그런데 출판사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곽재구 시인이 편지를 보내와서 새로운 인연이 시작됐다. 기회는 금방 다가왔다. 마침 여수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는데 곽 시인이 근방의 순천대 교수로 계셨기 때문에 연락을 드려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의 책에도 나오는 순천 와온, 화포마을의 해변길을 함께 걸어보면서 책 속의 이야기와 세상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도 출판사 담당 직원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장관실에 좋은 책을 보내 준 덕분에 곽재구 시인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그밖에도 바다에 관한 좋은 글들이, 한 번쯤 독자로 하여금 바다를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 참 많습니다. 해안가로, 바다로, 섬으로, 독자에게 여행을 권하는 글이 아니라, 한반도에 살아가는 우리네가 우리 바다를 가깝고도 멀리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글입니다.


격렬비열도


책은 곧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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