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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14. 2022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싶을 때

엥케이리디온 | 책을 기획하게 된 의도

편집자로서 아래 책을 기획하게 된 의도를 전합니다.



지중해를 호수로 삼았던 고대 로마제국 시대, 당시 사람들은 무엇을 고민했으며 어떤 책을 읽었을까? 그리고 그때의 책이 과연 이 시대의 독자들을 자극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면서 이 책이 기획됐습니다.


전성기 로마제국은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었습니다. 변방에서는 여전히 여러 정복 전쟁이 이어졌고 최고 권력을 놓고 쟁탈전이 벌어지긴 했어도 이 영화로운 제국을 당장 위협하는 세력은 없었습니다. 냉전이 끝난 세계 질서 속에서 지긋한 독재를 무너뜨린 후 민주주의 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정치적 안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당시 사회상을 소개하면서 물질적인 풍요로움에서 비롯된 쾌락과 향락 문화가 결국 로마를 망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만, 성공한 자본주의가 펼쳐내는 오늘날의 풍요로움은 로마시대에 못지 않겠지요. 그런데 고대 로마는 서쪽만 놓고 봐도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국을 유지했습니다. 향락 문화만으로 로마제국을 평가한다면 진즉에 망했을 터이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은 제국을 보전한 다른 정신적인 무기가 있었음을 능히 짐작케 합니다.


향락이 아닌 금욕을 강조하며, 쾌락이 아닌 평정심을 설파했던 스토아철학이 그런 무기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 책이 기획됐습니다. ‘황제의 명상록’과 ‘재상의 편지’로도 스토아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의 훈계보다는 노예이자 불구였던 에픽테토스의 조언이 시대를 뛰어넘는 진심이 묻어나리라 생각했습니다. 성공한 자본가들이 보기에 우리들 대부분은 노예이자 불구잖아요? 이런 생각 끝에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이 세상에 나오게 됐어요.


지금껏 여러 번역본이 출간됐습니다. 저마다 특색이 있을 것이며, 번역마다 역사를 남깁니다. 그러나 이소노미아만의 번역본을 더하고 싶었습니다. 이곳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한국인에게, 로마의 지혜가 전해지기를 희망했습니다. 


<엥케이리디온>은 에픽테토스 가르침의 요약본입니다. 그것도 손에 쥐고 다니면서 어디에서든 읽을 수 있도록 편찬된 핸드북이었습니다. 그런 사물의 본성에 맞는 번역본을 펴내고 싶었습니다. 학자를 위한 번역을 넘어, 연구를 위한 사료가 아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싶을 때’, 사람들의 정신을 진정으로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번역이라면 알맞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그런 희망과 노력의 성과입니다.




책에는 두 편집자의 편집 후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전문을 공개합니다.


마담쿠: 에픽테토스… 낯선 저자의 책이에요. <엥케이리디온>이라는 제목도 생경해요. 인문학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독자가 아니라면 이분을 잘 모르실 것 같고, 책 이름은 더더욱 모를 것 같아요. 솔직히 이 책을 기획하기 전까지 저도 몰랐습니다. 조사해 보니 굉장히 특이하신 분이었어요. 서기 1세기와 2세기를 살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지만, 또 로마 귀족의 노예였어요. 로마에서 철학을 배우고 가르쳤으니 로마 시대 철학자라고 평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목발을 짚고 생활한 절름발이 철학자로 알려졌더군요. 인터넷에서는 이런 이미지였어요.


우리가 어째서 고대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책을 기획했는지 독자들이 궁금해하시겠지요?


코디정: 네. 우리는 고대 헬레니즘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 시대를 풍미했던 스토아 철학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이 기획의 첫 번째가 바로 스토아 학파의 대가인 에픽테토스입니다. 그리고 세네카와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저서가 이어질 것이고요. 그러면 어째서 지금 이 시대에 스토아 철학자들이냐, 하는 질문이 나오겠지요. 그다음 질문이 어째서 에픽테토스냐가 될 거고요. 우리가 익히 아는 서양철학의 고전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저술입니다. 플라톤 이전 그리스 철학자들의 단편들이 좀 있고요. 저는 ‘시대’를 주목해 보고 싶었어요. 확실히 고대 그리스에서는 우리 인류의 지적인 흥분이 샘솟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패자가 등장하지 않는 불안정한 상황이었어요. 이 시절 인류의 스승들은 한편으로는 이상적인 국가에 관한 논쟁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의 참된 본질을 논했습니다. 이런 면모는 비슷한 시절 공자와 노자 등의 제자백가가 등장한 춘추시대의 중국에서도 발견됩니다. 그런데 강력한 제왕이 천하를 통일하자 신기하게도 고전의 시대가 막을 내립니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자 더이상 새로운 플라톤이, 새로운 공자가 등장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진나라가 분열된 시대의 종지부를 찍었고, 서양에서는 알렉산드로스 제국, 이어서 강력한 로마시대가 등장했습니다. 


마담쿠: 동서양 역사 이야기가 함께 나오니 흥미롭네요. 강력한 제국이 등장하니 철학이 변모했다? 어떻게 변모했을까요?


코디정: 서양철학에 국한해서 말해 보지요. 이때 서양철학의 주류가 스토아 학파였습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앞선 철학자들의 전통에 따르면서도 이전 철학자들과는 상이한 전통을 내세웠어요. ‘사회적인 관심’을 강하게 피력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인생’에 철학적인 관심을 뒀습니다. 그들은 우주 만물과 삼라만상의 이치, 그리고 이상적인 국가에 대해 논쟁을 이어가기보다는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그러면 다시 오늘날의 시대로 돌아오겠습니다. 21세기는 알렉산드로스 시절과 로마 시대처럼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습니다. 20세기를 풍미했던 사상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여전히 국지적인 분쟁과 대립이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민주주의 체제는 안전합니다. 물론 경제적이든 환경적이든 사회적인 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관심사로 남아있겠지요. 하지만 이 시대의 인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사회적인 관심사보다 더 우선적으로 놓는다는 점에서 고대 스토아 학파의 시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까지 이르자 그 시절 스승들이 어떤 의견을 냈는지 궁금해졌고, 또 그분들의 조언과 가르침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생겼어요. 그래서 스토아 철학의 번역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마담쿠: 독자를 위해 제가 두 가지 질문을 드려볼게요. 첫 번째, 그렇다면 스토아 학파는 이 세계를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철학자들 특유의 논설은 하지 않는 건가요?


코디정: 부족하지만 제가 공부한 수준으로만 답하겠습니다.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에게는 어떤 합의점이 있는 것 같아요.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섭리는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며, 그런 섭리는 신이 창조한 세계의 법칙이라는 합의입니다. 사실 이런 합의는 스토아 학파 이전의 그리스 철학과 잘 연결되는 생각이며, 또한 이후 기독교 세계관과도 조화를 이루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양 정신세계사에서 고대와 중세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마담쿠: 언뜻 듣기로는 동양적인 사상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하기야 동양이든 서양이든 같은 인류이니까 공통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두 번째 질문, 어째서 에픽테토스인가요? 스토아 철학자에는 로마 시대의 황제도 있고 재상도 있잖습니까.


코디정: 낮은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같은 메시지를 담은 책이라도, 성공한 사람의 성공담을 담은 책으로 기획될 수도 있지만, 비참한 역경을 딛고 살아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기획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기획 의도로 노예 출신이자 불구의 몸으로 인생을 살아간 에픽테토스 할아버지를 선택하게 됐습니다(웃음).


마담쿠: 그런데 이 책의 원제인 ‘엥케이리디온’은 고대 그리스어로 ‘소책자’ 또는 ‘핸드북’이라는 뜻입니다. 막상 읽어 보면 ‘명상 에세이’ 같은 느낌이에요. 혹은 로마 시대의 자기계발서? 저자가 말씀하시는 대로 살아가면 정신적으로 행복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과연 이 책의 가르침대로 살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만…. 그래서 우리가 이 책의 21세기 버전 제목으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싶을 때>라는 자기계발서 식 표현을 덧붙였습니다. 인생에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온갖 애를 씁니다만, 그게 잘 안된단 말이지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인생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이 책의 첫 번째 문장, “세상에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과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에서 마치 감전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말이지요. 나의 평온은 거기에서부터 흔들렸구나 하면서요.


코디정: (웃음) 그러게요. 저도 이 책은 아주 훌륭한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해요. 로마 철학자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입니다. 그것도 최전성기 로마제국에서 살았던 분의 잠언이에요.


마담쿠: 번역가이신 신혜연 선생이 우리말로 정말 멋지게 번역해 주셨습니다. 늘 최고의 번역을 해내시는 문장가라고 생각해요. 끝으로 신혜연 번역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항상 최고였어요. 이 책을 읽는 이 시대 독자에게 축복입니다.


코디정: 네. 좋은 번역을 내놓기 위해서 독서도 많이 하시고 연구도 많이 하시는 분이에요. 출판사 편집자 입장에서는 아주 든든해요. 부디 이 책이 많이 읽혀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로마 시대의 평정심이 전파되기를 희망합니다. 그 희망이 ‘신혜연 번역’ 덕분이었다고 사람들이 평가해 준다면 그 번역을 편집한 편집자로서도 명예로운 일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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