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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y 12. 2022

매일 한 문장 1

딸과 함께 매일 한 문장씩 1

중학생 딸과, 딱 한 문장으로, 함께 한 노트에, 일기를 쓰기로 했다. 먼저 딸이 썼다. <엄마 아빠가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바뀌면 됨> 오늘 국어 선생님 말씀이었다고 근사하지 않냐는 눈치를 줌. 그 아래에 나는 썼다. <옥상에서 꽃향기가 났다.> 딸이, “그런 거였어?”라고 반응한다. 다음을 기대한다. 사흘 동안 내가 쓴 한 문장을 여기에 써 본다. 딸의 문장은 딸의 것이므로 생략;;;


옥상에서 꽃향기가 났다(2022-05-09)


회사는 호텔건물 3 오피스동에 위치한다. 나름 큰 레지던스 호텔이어서 옥상에는 제법 넓은 정원이 꾸며져 있다. 그곳에도 나무가 있고, 가 살고, 곤충도 있다.  관리되고 있는 도시 정원이다. 나는 자주 옥상에 올라간다. 옥상에 앉아 햇볕을 쬐기도 하고 걷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꽃향기가 났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다. 잠시라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머는 사태를 해결한다(2022-05-10)


딸이 다급하게 전화. 자기 인생사에 매우 중대한 일이 발생했다고. 내일 어린이대공원으로 현장체험학습 가는데(학교에서 단체로 놀러 감. 코로나 때문에 2년간 참았으니 얼마나 기쁠까), A, B, C, D(딸), 네 명이 함께 만나 지하철 타고 룰루랄라 가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생님이 D에게, 급우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E와 함께 가주면 어떻겠냐고... 말해서 즐거운 계획에 폭탄이 배달되었다. 왜냐하면 A가 E를 싫어하기 때문에... A는 E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아빠,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해? 나 미치겠어.


<A야, 너가 기분 나쁜 거 완전 이해. 이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니까. 니 감정 나한테도 중요하지! 그래도 내가 선생님한테 개기지 못하니까 어쩔 수가 없잖아? ㅠㅠ 내가 내일 E를 밀착 마크할 테니까, 너는 좀 떨어져 있어. 어쨌든 내일 웃으면서 재미있게 놀자~>라고 메시지를 보내라고 하니까,


딸은 매우 행복해 하면서, 아빠가 있어서 넘 좋아, 전화를 끊음. 1분 후에 다시 전화 옴.


아빠, A가 자기는 절대 E와 가기 싫다고 그냥 혼자 가겠대. 어떻게 하지?


 <인내심 향상 현장 체험이라고 생각해 A야>라고 다시 꼬신 다음에, 그래도 실패하면 <인내심 향상 현장 체험이라는 절호의 기회에 니가 아깝게 참가하지 못했으니까 내가 위로 삼아 맛있는 거 쏠게>라고 메시지를 보내. 그다음 내일 카톡 이모티콘 선물해줘. 응, 알았써 하면서 다시 전화 끊음. 이런 일화를 담아, "유머는 사태를 해결한다."라는 문장을 썼다.


세번째 날의 문장은 이렇다.


인왕산 둘레길에서 아카시아 꽃향기를 스쳐가는 사람들(2022-05-11)


지난 십 년 동안 서울 곳곳의 산에는 둘레길이 잘 정비되었다. 집 근처 인왕산 둘레길도 참 좋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둘레길을 걸으며 위로를 얻는다. 어떤 이는 마음의 위로를, 또 어떤 이는 건강의 위로를 얻겠지. 오월은 역시 아카시아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인왕산에 자욱하다. 아카시아 꽃향기를 맡으면 참 기분이 좋다. 산속으로 들어가 아카시아 꽃을 먹던 유년시절이 생각난다.


불과 사흘밖에 되지 않았지만 딸과 함께, 한 노트에, 하루에 한 문장씩 적는 게 참 좋다. 원래는 단편소설을 읽고 서평을 쓴 다음, 그걸 아빠와 함께 고쳐 나가는 문장수업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딸도 바쁘고 나도 바쁘니 실행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묘안을 짜낸 것이 하루에 한 문장씩 쓰는 것이다. 고치지 않는다. 그냥 쓰기만 한다.  


아빠가 먼저 정성을 다해 문장을 써야지. 그러면 위아래로 나란히 쓰인 아빠의 문장을 보면서 딸도 정성을 다하리라 기대해 본다.


1년 정도 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결과가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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