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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y 18. 2022

매일 한 문장 3

딸과 함께 매일 한 문장씩

한 노트에, 딸과 함께, 매일 한 문장을 쓰고 있다. 딸은 딸의 문장을 쓰고 나는 나의 문장을 쓴다. 사흘 동안 쓴 내 문장은 이렇다.


2022-05-15 일요일

7. 오래된 도서관에는 틀림없이 귀신이 살고 있다.


일요일에 딸과 함께 종로 정독도서관에 간다. 정독도서관은 오래된 도서관이다. 이 건물은 옛날 경기고등학교 건물이었다. 1938년에 건축되었다 하고, 육이오 전쟁 당시에는 미군 통신부대가 사용했다 하며, 1956년에 다시 고등학교로 반환되었다가, 경기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사한 뒤 1977년 이후부터 도서관이 되었다고 한다. 


이 도서관에 올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실내가 매우 서늘하다. 봄에도 춥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필요없을 정도의 냉기가 있다. 얼마 전에는 긴팔 셔츠만으로 견딜 수 없어서 근처에 있는 회사에 가서 사무실에 있는 점퍼 두 개를 가져와 단단히 껴입어야 했다. 아마도 귀신이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오십 년 전 혹은 육십 년 전 어느 한 많은 소년이 어디 후미진 곳에서 변을 당해 이곳 어딘가에서 배회하고 있는 게 아닐까. 원혼 덕분에 여름에는 이득을 보기는 보지만 봄과 가을에 불이익이 생기므로, 누군가 신내림을 받은 분이 나서서 넋풀이굿이라도 해줬으면 하네. 나는 크리스천이니까 패쓰.




2022-05-16 월요일

8. 절망 속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그 사람


클라이언트와 점심 식사. 클라이언트가 내게 의뢰한 일들이 잘 풀렸다. 이분은 국제 컨퍼런스 행사장에서 낭비되는 플라스틱 명찰을 개선한 아이디어에 대해 특허를 두 건 신청했는데 최근 모두 특허를 취득했다. 클라이언트는 내 덕분이라며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래 나는 성공하면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해 보고, 실패하면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누군가의 희망에 동참해서 결과가 좋으면 좋지. 희망은 연약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희망에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클라이언트는 국제회의 전문가이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행사 자체가 2년 동안 없었다. 인내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점심을 함께하면서 이분의 인생 얘기를 들었다. 십 년 전, 깊은 절망 속에서 빠져 있었을 때 자기를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빛으로 인도한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인생도 달라졌을 거라고도 했다. 그 고마운 분이 지금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작은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절망 속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이는 어떤 손일까. 





2022-05-17 화요일

9. 나도 벌레가 무서운데 왜 항상 나를?


나는 벌레가 싫다. 바퀴벌레, 돈벌레, 노린재가 무섭다. 몸이 쭈뼛쭈뼛해진다.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린다. 키가 있다 만한 놈이 그 조그마한 벌레를 무서워하다니 바보 아니냐며 누군가 내게 핀잔을 줘도 나는 괜찮다. 무서운 걸 어쩌냔 말이다. 그런데 우리집에서는 내가 벌레 담당이다. 집에 벌레가 나타나기라도 모두 큰소리로 나를 부른다. 특히 우리집 여자들이. 마님이, 다 큰 딸이. 당신들이 무섭다면 나도 무섭다. 나같이 벌벌 떠는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당신들도 의연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좀 알아서 해결해 주셨으면 한다.


오늘도 큰소리로 나를 부른다. 화장실에서 바퀴벌레가 나타났다고. 바퀴벌레라는 단어에 절로 오싹해진다. 그러나 또 어쩔 수 없이 나는 ‘현장’으로 간다. 이런 역할 분담이 정말 싫다고 생각하면서 느리게 움직인다. 그사이 벌레가 현장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이 녀석은 내 마음도 모른 채 바보멍청이처럼 꿈쩍도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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