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버지니아 울프, 나쓰메 소세키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내가 돈이 없어 책을 못 사던 그 당시는 벽돌을 종이로 싸서 책이라 해도 팔리던 시절이었다. 책장사 하기 참 좋은 시절이었겠지. 하지만 고작 몇 십 년 전의 일임에도 어쩐지 호랑이가 인왕산에 싸돌아다니던 시절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책에 금칠을 해도 주목받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솔직히 책보다 재미있는 게 많고, 책보다 더 유용한 정보와 지식을 주는 게 적지 않다. 영상의 시대에 텍스트라니, 좀 시대에 뒤떨어지기는 한 것 같지?
그럼에도 나는 꿈이 있었다. 편집자로서. 과거형으로 말하니까 괜히 쓸쓸하네. 나는 ‘출판업자’에는 관심이 적었다. 책으로 돈 벌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본래 상인보다는 장인 쪽에 가까운 성정 때문에 나는 좀 다른 꿈을 꿨던 것 같다.
나는 죽기 직전까지 꿈꾸다 순진하게 죽을 것이다.
출판시장에는 저자(번역자)가 있고 편집자가 있으며 독자가 있다. 나는 ‘편집자의 시대’를 열어보고 싶었다. 편집자가 졸지 않고 자기 역할을 다할 때 얼마나 저자가 빛이 나는지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면 불황기에도 독자들이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순진하게도!) 어쨌든 지난 5년 간 내 꿈을 증명하기 위해 참으로 노력했다. 무급으로 미친듯이 일하는 게, 그것도 5년이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과다 손실을 인내하면서 나는 내 꿈을 위해 여기까지 왔다.
최근 내가 편집한 조정 시인의 <그라시재라>가 내 꿈 활동의 결과이다. 이 시집에 대한 찬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저자가 빛난다. 그러면 나는 행복해진다. 이것이 내가 가는 편집의 길이다. 오늘은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시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오는 데 넌 뭘 했냐고? 내가 뭘 해, 시인이 다했지. 그러나 나는 편집자로서 이 한 권의 책을 어떻게 빛낼 것인지, 도무지 사소한 밀리미터 단위에서 멀리 떨어져야 보이는 윤곽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말끔하지 않다. 나는 책을 파는 재주가 없다. 5년 동안 줄곧 원하는 목표에 한참 미치지 못했으니, 검증은 끝난 거겠지?
- 뭘 우울하게 그래? 아이디어를 내서 더 참신하게 노력해 봐.
응, 근데 내가 그걸 잘하지 못한단 말이지. 장사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으면 변리사 본업에 더 충실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못하는 걸 채굴하기보다는 내가 잘하는 것을 하고 싶어요. 내가 지금 나이가 몇 살인데? 하여튼 좀 복잡한 심정이긴 하다. 이 시대는 편집자의 시대가 아니라, 마케팅의 시대였던 것인데....
내가 편집한 책들을 돌이켜 본다... 하나하나 다 기억이 난다. 내가 어떻게 애썼는지. 내가 무엇을 지불했으며 무엇을 얻었는지.
2018년 9월에 임마누엘 칸트의 <굿윌, 도덕형이상학의 기초>와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집 <WHY>를 편집하면서 편집자로 데뷔했다. ㅋㅋㅋ 첫 편집책이 교보문고의 오늘의 책으로 선정됐을 정도. 그러나 1쇄를 다 팔지 못했다. 칸트의 책을 편집하면서, 철학 책을 편집하는 원칙을 세웠다. 편집자가 이해하지 못한 문장을 독자에게 제시할 수 없다는 거. 덕분에 편집자 머리가 좋아졌지. 번역원고를 수십 번도 넘게 읽었다. 원문과 함께ㅋ.
난해하고 복잡한 문장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편집하면서는, ‘번역투’는 편집자를 타락시키는 유혹, 그 유혹에 맞서야 한다는 원칙을 정립했다. 원문이 빛나는 문학이었다면 우리말로 번역된 문학도 빛이 나는 문학이어야 한다. 물론 어렵지. 그래서 편집이 고단한 것이다. 어쨌든 찬사를 받았다. 이 두 권의 작업 이후 내가 편집한 모든 책들의 기본 원칙은 자연스러운 문장이다.
그다음 2019년 3월에 마크 트웨인의 자서전을 기본 텍스트로 해서 단편집을 펴냈다. <최면술사> 읽는 내내 키득거리게 만드는 유쾌한 책. 지루할 틈이 없다는 독자의 평을 받았다. 이 책을 읽으면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핀의 모험 같은 소년 문학의 소설가가 아닌 명실공히 19세기말 미국을 대표하는 빛나는 마크 트웨인을 체험한다. 군더더기 없이 웃긴 문장을 독자에게 선물하느라 애썼던 것 같다. 번역가가 애썼고, 나는 그걸 보충하느라 애썼다.
그해 4월에는 김석희 선생이 번역한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집 <소나티네>였다. 번역가에게도 독자에게도 그리고 편집자에게도 선물과 같은 책. 섭씨 0도에서 물은 고체와 액체의 경계를 형성한다. 100도씨가 돼서야 물은 기체가 된다. 임계점이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이것과 저것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이 <소나티네>가 그런 책이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상당히 비슷한 언어이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의 깊이가 있다. 다른 일본어 번역은 쉽게 쉽게 가기 때문에 그 깊이를 간과한다. 나는 미묘한 차이의 깊이를 빛내기 위해 그래서 그 빛이 번역가에게 이어지도록 노력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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