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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Oct 26. 2022

'종합'이란 무엇인가

순수이성비판의 철학용어에 관해서

synthesis


학자들은 ‘종합’으로 번역한다. 


‘종합’은 여러 가지를 한데 모아서 합한다는 뜻을 갖는 단어이다. 여러 가지를 합한다는 의미로는 ‘복합’, ‘합성’, ‘결합’, ‘취합’, ‘조합’, ‘통합’ 등의 단어가 있다. 이들 한국어 단어는 모두 synthesis의 번역어로 손색이 없으나, 철학 분야에서는 예외 없이 ‘종합’으로 번역되어 왔다. 


그러나 ‘종합’이라는 단어는, 그것이 언어생활에서 실제로 사용될 때에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상당히 모호한 흔적을 남긴다는 점을 학자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 단어는 ‘종합진찰’, ‘종합개발’, ‘종합평가’, ‘종합성적’처럼 종국적인 뜻을 가지기 때문에 의미 위상이 높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그 단어가 갖는 의미와 내용에 대한 의문을 유발한다. 


어떻게 종합되었느냐
종합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냐


‘종합평가’의 경우 어떤 식으로 평가되었는지,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그 세세한 내용이 무엇인지, ‘종합검진’의 경우 어떤 검진 항목이 들어있는지 등이 그러하다. 즉, ‘종합’은 자명한 단어가 아니라, 궁금증을 내포하는 불명확한 의미의 단어이다. 


그런데 synthesis는 이것과 저것을 연결하는 정도의 의미로써 칸트가 매우 자명하게 사용하는 용어이고, <순수이성비판>에서 약 350회 이상 등장한다. Synthesis를 ‘종합’으로 번역한 결과, 한국 독자들은 이 단어가 사용될 때마다, 수백 번 이상, 그 맥락에 의문을 품게 되는 부작용이 생기고 말았으니, 철학을 쓸데없이 모호하고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인 단어가 되고 말았다. 


<순수이성비판>은 인간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인간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논리학을 만난다. 논리학은 인간 생각의 형식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이며, 결국 <순수이성비판>은 논리학 기법으로 저술되어 있다. 논리학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들이 첫 번째 만나는 장벽이 그런 낯선 논리학 용어인 ‘synthesis’라는 단어이다. 


논리학은 명제에서 시작한다. 살펴 보자. <독약은 독이 들어있는 약이다>라는 문장을 일컬어 분석 명제라고 부른다. ‘독약’이라는 주어를 분석하기만 하면 ‘독성이 들어있는 약이다’라는 판단이 저절로 나온다. 독약만 있을 뿐 다른 의미는 아무것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것을 일컬어 분석 판단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그러나 <게임은 독약이다>라는 문장의 경우 주어인 ‘게임’을 아무리 분석해도 ‘독약이다’라는 판단이 나오지 않는다. 게임과 무관한 독약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런 명제와 판단을 일컬어 synthesis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었다. 


이 단어를 굳이 ‘종합’이라는 위상 높은 단어로 번역하면, ‘종합명제’, ‘종합판단’이라는 표현이 생기고 이러면 의미가 자명해지기는커녕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처럼 오해하고, 도대체 그 ‘종합’의 내용과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고 만다. 학자들의 번역에 따르면 ‘게임은 독약이다’라는 문장은 종합명제다. 그런데 이 편견 가득한 명제를 종합명제라고 표현하고 보니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오해되는 것이다. 그저 ‘게임’과 ‘독약’을 연결했을 뿐인 문장임에도…. 


일본 학자가 synthesis를 ‘종합’으로 번역한 이후로, 칸트를 읽는 한국인은 백 년 동안 이런 번역 부작용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마땅한 단어가 없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이미 자명한 단어가 있다. ‘연결’이 그것이다. 그러면 ‘연결명제’, ‘연결판단’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이것과 저것을 연결한 명제, 혹은 연결한 판단이라고 쉽고 자명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칸트가 말하려는 synthesis의 참된 의미였다. ‘복합’과 ‘합성’, ‘결합’의 경우, 철학(논리학) 분야에서 다른 의미를 갖는 ‘복합명제’, ‘합성명제’, ‘결합법칙’ 등이 각각 존재하고 있고, 기존 용어와의 혼선 때문에 모호해지거나 소통에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synthesis라는 단어의 번역어로 쓰이기 어렵다. 


이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선험적 종합판단이란 무엇인가?

이건 또 무슨 의미인가?


순수이성비판의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쇳말이긴 한데,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종합'이라는 단어를 '연결'이라는 단어로 바꿔 이해하면, 단순하고 명쾌해진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영상에서 해설!!


https://youtu.be/cRHT4L-lE1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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