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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Jun 25. 2018

에세이13_인공지능

AI시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은 생각하는 기계를 뜻한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기계가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의 일부 또는 전체를 갖는 기술을 지칭한다. AI가 구현되려면 기계학습을 할 수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1950년대에 그 개념이 제시됐지만 빈약한 정보처리 기술 탓에 생각보다 성과를 내지 못했다.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속도가 크게 개선되고 학습할 수 있는 방대한 빅데이터가 축적된 21세기가 돼서야 비로소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결과를 내고 있다. 단순히 인간이 생각해 낸 결과가 아닌 '생각하는 방법'을 기계에 주입한 것이다.

인간처럼 스스로 사고하는 인공지능을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하고, 어떤 문제를 스스로 사고하거나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특정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약한 인공지능이라고 한다. 압도적인 능력으로 프로바둑 기사를 제압한 알파고, 그리고 기계 번역, 자율주행, 헬스 케어 등 지금까지 알려진 AI는 모두 약한 인공지능에 해당한다. 강한 인공지능은 개념만 있고 헐리우드 영화에서만 등장할 뿐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전문가들은 강한 인공지능의 등장이 인류의 멸망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공지능의 핵심은 기계가 인간을 모방한다는 점에 있다. 기계가 인간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시대에 우리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를 생각해 보자. 그/그녀의 숙련된 작업 능력은 안정된 수익을 보장한다. 그런데 기계가 그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기계를 이길 수 없다. 기계처럼 일을 해왔던 사람이 가장 먼저 직장을 잃을 것이다. 이런 파국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파국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이제 자기가 하는 일을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언젠가 제자들이 예수께 종말을 여쭈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되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들이 시작을 아는가?" 


인간이 없다면 기계도 없다. 기계가 인간의 지적능력을 닮으려면 인간의 지적능력에 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데이터로 수집될 수 없는 능력은 학습될 수 없다.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지적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먼저 감각이 있다. 벌써 구글의 AI는 고양이를 가르치지 않아도 영상을 통해 고양이의 실체를 파악한다. 지식에 관한 능력도 있다. 무엇인가를 분류하고 이해하는 지적 능력은 인간이 그동안 만들어낸 확정적이거나 통계적인 해답들을 낳는다. 생각하는 기계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해답들을 재빠르게 학습할 것이다. 이미 인간이 만든 지식을 기계가 찾아내서 더 정확하게 되풀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감각과 경험지식이 만들어 내는 능력인 직관도 기계가 더 정확히 흉내낼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성'이라는 지적능력이 있다. 무엇이 도덕이며 올바른지를 생각하는 능력, 무엇이 정의이며 우리는 어떤 의지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지적능력이 바로 '이성'이다. 그런데 이성이라는 지적능력은 인간에게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주제이다. 우리 인류는 이성이라는 지적능력이 낳은 '올바름'을 둘러싸고 아직 단하나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논쟁중이다.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숱한 논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간에게 미완이라면 AI도 마찬가지다. 그건 기계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AI 챗봇 <Tay>는 서비스 개시 하루 만에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그리고 서비스는 중단됐다. 이성은 기계에게도 미지의 능력이며 그러므로 인공지능은 이런 지적능력에 관해 회피하거나 침묵할 수밖에 없다. 욕망하고 상상하고 의지를 갖도록 하는 능력도 마찬가지다. 영성은 더더욱 그러하다. 생각하는 기계가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를 낳았다면 그건 기계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인간'이 '어떤 논쟁적인 주제'에 관해 결론을 강요하도록 알고리즘을 설계했기 때문이리라. 결국 문제는 언제나 인간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서 나는 인공지능 시대야말로 인간이 인간 자신을 성찰하는 시대가 아닐까 자문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기계가 모방할 수 있는 지적능력이 있고 그런 부분은 기계와 경쟁하기보다는 차라리 기계의 도움을 받는 게 낫다. 하지만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지적능력도 우리 인간에게 있고 그런 능력을 계발해서 인생을 살아간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기 더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이렇게 질문하면서 일하고 생활하는 것이다. 


— 무엇이 더 올바른가? 

— 여기 사실이 있다.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다루는 것이 더 가치 있는 방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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