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디정 Aug 03. 2019

구리

9호 | 문과도 이해하는 과학이야기

구리(Copper)


1970년대 말 혹은 1980년대 초였던 것 같습니다. 110V에서 220V로 전압을 승압하는 사업을 국가 차원으로 벌였습니다. 제가 살던 변두리 동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엄청난 공사였지요. 당시 아이들은 신났습니다. 전봇대 위에서 작업하는 인부를 바라보는 것도 경이로웠지만, 무엇보다 전봇대 아래 낙엽처럼 떨어져 있는 전선 조각을 모으는 게 더없는 놀이였습니다. 우리는 그걸 한아름 모아다가 엿으로 바꿔 먹었습니다. 구리선입니다.


구리(Copper). 원자번호 29. 주황색의 금속입니다.


금속 중에서 은(Silver)을 제외하고 전기와 열을 가장 잘 전하는 금속이지요. 전기 케이블이나 히팅 케이블은 구리지요. 광케이블이 사용되기 전에는 통신 케이블도 구리를 썼습니다. 매장량도 풍부합니다. 가격도 은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광물로부터 얻은 순수 구리나 오래전에 어딘가에서 쓰다가 버려진 구리나 특성에 차이가 없습니다.


부식에 매우 강한 금속입니다. 철은 부식해서 시간이 흐르면 부스러지지요. 구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표면만 닦아주면 됩니다. 구리로 도금하면 녹슬지 않고 안전해진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선박 표면을 구리로 도금한답니다. 구리에는 미생물이 자랄 수도 없지요. 그래서 위생이 중요한 곳에는 구리가 사용됩니다.


무엇보다 동식물 생명체에 꼭 필요한 미네랄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류는 구리를 섭취해야 합니다. 물론 구리 조각을 씹어먹는 것은 아니지요. 해산물과 야채에는 섭취에 필요한 구리가 다 들어있습니다.


구리는 인류가 이용한 최초의 금속 중 하나입니다. 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9000년 경 중동에서 인류가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금이나 은처럼 미적인 가치로 구리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집트인들은 구리를 신성한 물질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영원한 삶을 상징하는 데 구리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었을까요? 이집트에서 기원전 3300년 무렵 99.7% 순도의 구리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우리 인류가 합금 기술을 알아낸 것입니다. 구리는 경도가 약합니다. 그래서 단단한 게 필요할 때에는 별 쓸모가 없었지요. 구리보다 석기가 낫습니다. 그런데 구리에 주석(Tin)을 조금 섞었더니 아주 단단하고 녹슬지도 않은 합금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청동(Bronze)입니다. 그렇게 해서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구리에 아연(Zinc)을 좀 섞으니 놋쇠(Brass)가 되었고요. 이번에는 니켈을 좀 섞었습니다. 그랬더니 부식하지 않고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동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알루미늄, 베릴륨, 은 등과도 합금을 만들어서 용도에 맞게 알맞게 쓸 수도 있습니다. 구리합금의 수가 400개를 넘는답니다.


우리 인류는 만 년 넘게 구리를 이용해 왔습니다. 산업이 발전할수록 구리가 더 필요했지요. 20세기 이후의 구리 사용량이 그 이전 시대의 합계보다 훨씬 많습니다. 구리 1톤으로 40대의 자동차, 60,000대의 스마트폰, 400대의 컴퓨터, 30채의 집에서 사용되는 전기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유용한 구리 매장량이 소진되면 어쩌지요? 괜찮습니다. 구리는 몇 번이고 온전히 재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것이고, 그게 이 사랑스러운 금속의 매력이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화이트워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