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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Sep 15. 2019

펌프의 역사

17 | 흥미로운 역사이야기


펌프의 역사


여러분, 펌프를 모르는 인류를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요? 아, 펌프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겠군요. 모르면 상상이 안되니까, 다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심장 없이 살아가는 인간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몸은 어디에서든지 피가 필요하고 또 피가 흐릅니다. 심장이 쉬지 않고 힘을 써서 우리 몸 곳곳으로 피를 보내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심장의 이런 기능을 펌프 기능이라고 합니다.


물이든 기름이든 가스든 흐르는 무엇인가(유체)를 어딘가로 보내려면 힘이 필요하지요. 먼 곳까지 보내려면 그만한 힘이 필요하고,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보내려면 중력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유체가 어떻게 흐르는지를 관찰해 보세요. "차이"가 있으니까 흐릅니다. "차이"가 없는 곳에는 흐르지 않습니다. 정지하지요. 그 차이란 무엇입니까. 물의 흐름을 보세요. 높이의 차이가 있으므로 흐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과학자들은 그런 차이를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압력"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지요. 유체는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압력을 만들어내서 유체를 흐르게 하거나 이동시키는 기능을 가진 물건을 펌프라고 합니다.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지요. 여러분, 펌프를 모르는 인류를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요? 막상 또 이런 질문에 답하려니 여전히 막막하군요. 구체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지요. 펌프가 없으면 농사가 안됩니다. 오늘날 인류가 먹고살 만하게 된 까닭은 농업용 펌프가 모든 농가에 보급되었기 때문이지요. 펌프가 없으면 상수도 시설을 이용할 수 없지요. 펌프가 없으면 수도도 없습니다. 물을 끌어다가 사용하게 해줄 도구가 바로 펌프입니다. 펌프가 없으면 도시가스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배도 멈추겠군요. 그런 기계 안에는 물과 기름을 나르는 작은 배관들이 설치되어 있고 영락없이 펌프가 들어 있습니다. 펌프는 인류의 맥박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의미의 펌프가 있습니다만, 수천 년 동안 인류는 낮은 곳에 있는 물을 높은 곳으로 퍼올리는 도구로 펌프를 사용해 왔습니다. 물과 펌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요. 최초의 펌프는 기원전 2000년경 고대 이집트 시대의 샤두프Shadoof라고 알려졌습니다. 지렛대 원리로 나일강에 있는 물을 퍼올렸겠지요. 우리말로는 방아두레박이라고 합니다. 아래 그림이 샤두프의 원리랍니다.

그다음으로는 '유레카'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288~212 BC)가 나옵니다. 기원전 3세기경 발명된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양수기(Archimedean screw pump)입니다. 정말 어메이징한 발명품이지요. 지금도 이용되고 있으니까요. 아래 그림은 아르키메데스의 스크류 펌프의 원리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쾌합니다.


펌프는 어쨌든 회전력이 필요합니다. 그게 압력을 만들어냅니다. 뭔가를 회전시켜서 그 회전력으로 펌핑합니다. 이탈리아 엔지니어 아고스티노 라멜리(Agostino Ramelli 1531~1610)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들>이라는 책을 썼대요. 다양한 기계들이 스케치되어 있었답니다. 슬라이딩 베인 펌프(Sliding vane pump)도 여기서 나옵니다.

1: 펌프하우징, 2: 로터(회전자), 3: 베인, 4: 스프링

베인펌프가 발명된 이후로도 인류는 많은 펌프들을 더 생각해 냈습니다. 기어 펌프, 피스톤을 이용한 진공펌프, 스크류 펌프 등이 있지요. 하지만 수동적이었고 자동은 아니었습니다. 펌프가 자동으로 구동하려면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되었지요. 더 크고 안정적인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인류는 화석연료를 사용해서 에너지를 얻는 증기기관을 이용했습니다. 그다음이 전기입니다. 전기를 이용해서 힘을 만들어내는 모터가 나오자 펌프가 편안해졌지요. 펌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자 무엇이든 펌핑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용도 별로 나누면 가정용 펌프, 산업용 펌프, 배수용 펌프, 부스터 펌프(가압펌프) 등으로 분류될 수도 있겠습니다.

 


좀 다른 얘기를 해볼까요?

인프라 시설로 수도가 보급되기 전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입니다) 우리는 "뽐뿌"를 이용했습니다. 우물물을 퍼내는 펌프이지요. 작두펌프라고도 합니다.

작두질하면서 물을 끌어올리는 원리인데, 먼저 마중물(priming water)을 넣어야 합니다. 마중물을 넣으면 그 물의 무게로 말미암아 뽐뿌 아래쪽에 있는 고무막이 막히게 되고, 그러면 위쪽 압력이 낮아집니다.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펌핑되는 것이니까 지하 우물의 물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오게 되는 원리이지요. 그러므로 마중물의 진정한 의미는, "높은 곳에 있는 자가 스스로 낮아지는 지위를 선택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이런 '뽐뿌'는 한국에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당연하지요. 서양에서 먼저 나온 펌프입니다. 이 펌프의 핵심은 작두질을 할 수 있는 손잡이가 있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런 손잡이에 관심을 두지 않더군요. 작두펌프 손잡이에는 흥미로운 보건역사 에피소드가 있답니다. 이 그림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네. 전염병입니다. 펌프는 수인성 전염병을 퍼뜨리는 주요한 원흉입니다. 대표적으로 콜레라가 있습니다. 우리 인류는 오랫동안 그 사실을 몰랐답니다. 그리고 공중 펌프에 전염병을 퍼뜨리는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영국의 의사 존 스노우(John Snow 1813~1858)가 밝혀냈습니다. 그는 보건 역학(epidemiology)의 탄생과 발전에 기념비적인 기여를 한 인물입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콜레라는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스노우는 공기가 아닌 물을 의심했습니다. 사람들은 낯선 생각에 대해서는 설령 그게 진실이라고 해도 좀처럼 믿지는 않지요.


1854년 런던 소호(SOHO)라는 지역에서 콜레라가 창궐했습니다. 2주 만에 550명이 콜레라로 죽었습니다. 스노우는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조사하고 자료를 찾고 인터뷰를 하면서 공중보건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인포그래픽을 발표했습니다. 지도 위에 콜레라로 죽은 사람들을 점으로 표시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많을수록 점이 늘어납니다.

 


위 인포그래픽에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이 바로 공중 펌프가 있는 곳(가운데)이었습니다. 반면 펌프 위치에서 우측 인접한 곳에 있던 맥주 공장(BREWERY)에서는 한 명도 콜레라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물이 아닌 맥주를 마셨으니까요. 이런 현장조사로 말미암아 콜레라는 물로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고, 관련자료를 행정관청에 제출했습니다. 그때가 1854년 9월 7일입니다. 다음날 행정기관은 그 펌프에서 손잡이를 제거했습니다. 사람들이 펌프 물을 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지요. 저 유명한, 손잡이 없는 존 스노우 펌프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지금도 런던 그곳에 서 있습니다.


참고자료

존 스노우에 대한 이야기를 유뷰트를 통해 다시 시청해 보시죠. 세계 공중보건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매우 중요한 티핑포인트랍니다.

https://youtu.be/9NVT6iZP2qg


최근 코디정이 편집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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