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호 | 문과도 이해하는 과학이야기
어느 날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습니다. 침략자들은 강력한 전투 머신으로 무장했는데 레이저를 쏘아대는 그 머신은 3개의 기다린 다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화성인의 무기를 일컬어 트라이포드(tripods)라 불렀습니다. 지구인은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대영제국의 왕립 해군의 전함 HMS 썬더 차일드 호가 트라이포드 2대를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렸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인류는 화성인의 무력 앞에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망이 상식처럼 퍼졌습니다.
그때 신이 지구를 위해 예비해둔 선물이 있었지요. 지구 최종병기였습니다. 인류가 패퇴하자 지구를 지키기 위해 나선 건, 다름 아닌 박테리아, 세균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트라이포드가 멈췄습니다. 그 안에 있던 모든 화성인이 죽었습니다. 트라이포드 안에는 박테리아에 감염된 화성인의 사체만이 고요함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미생물이 화성인에게는 절망이었지만 인류에게는 희망이었습니다.
과학소설의 아버지, H. G.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가 쓴 1898년 과학소설의 기념작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의 스토리랍니다. 이 작가,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굉장히 유명한 분이지요. 20세기 인류의 상상력을 크게 자극했던 작가였습니다. 화성인 침공, 투명인간, 타임머신이 모두 이 분의 소설에서 시작되었답니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는 과학소설이 아니라 박테리아입니다. 지구 최종병기이지요. 그런데...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생각보다 이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드뭅니다. 과거 공부 좀 했던 시절에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까먹고 말지요. 그래서 정리를 표로 해봤습니다.
박테리아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세균"입니다. 그러니까 세균은 박테리아이지요. 단일세포 미생물입니다. 인간은 물경 3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러나 이 단세포 미생물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됩니다. 우리 몸 안에는 인간 세포보다 더 많은 개수의 박테리아가 서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속도로 증식하면서 인체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박테리아가 다른 생명체에 기생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지요. 그냥 어디에서든 삽니다.
인류는 이 지구 어느 환경에서나 잘 적응했지요.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기어이 생존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생물에 비해 아주 놀라운 생존력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박테리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박테리아는 흙에서도 살아갑니다. 지구 지각 깊은 곳에서도 살고 바닷물 속에서도 삽니다. 방사성 폐기물에서도 서식하는 박테리아도 있다고 합니다.
박테리아라고 해서 다 위험한 것은 아니지요. 질환을 야기하는 박테리아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박테리아가 그다지 위험한 짓을 하지 않으면서 우리 몸의 피부, 구강, 소화기관, 생식기관 등 다양한 곳에 서식합니다. 박테리아의 형태는 다양한데, 둥그렇게 생긴 박테리아는 "구균cocci/coccus"이라고 부르고, 막대모양은 "간균bacilli/bacillus"이라고 하고, 나선형으로 생긴 박테리아는 "스피로헤타spirochaeta"라고 부릅니다. 스파이럴spirals이라고 불러도 좋고요.
우리 인류는 1676년에 박테리아를 처음 관찰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관찰할 수 없고 현미경으로만 관찰할 수 있는데, 인간이 현미경을 제작하는 기술을 알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던 거지요. 과학이 발달하면서 박테리아 중에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박테리아의 정체를 하나하나 알아냈지요. 그 녀석들 중에서 이름 난 박테리아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대장균, 탄저균, 콜레라, 디프테리아, 레토스피라, 수막구균, 백일해, 페스트, 페렴구균, 장티푸스균, 파상풍, 황색포도구균, 브루셀라균.
박테리아는 항생제로 다스립니다. 그런데 박테리아가 지능이 좋거든요. 항생제가 투입되면 대부분의 박테리아는 죽습니다. 하지만 죽으면서 DNA 메커니즘을 분석해서 그 데이터를 다음 세대에 물려줍니다. 박테리아의 증식 속도를 고려하면 다음 세대라고 해봤자 몇 분 후의 박테리아일 수 있겠지요. 세대를 거듭하면서 박테리아는 내성이 생깁니다. 모든 항생제를 무력화하는 초강력 슈퍼박테리아도 그렇게 탄생합니다. 이 작은 미생물에 인류가 백기를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우리 인류도 열심히 연구하면서 맞서고 있고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박테리아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세균은 평화주의자입니다. 인간의 몸 안에서 모든 세포에게 보통선거권이 주어져서는 말하자면 "세포 민주주의"라는 게 실현된다면 과반수 득표에 성공한 박테리아가 인간 세포를 통치하겠지요. 하지만 박테리아는 인간을 지배하지 않고 공존합니다.
몇몇 박테리아가 문제를 일으킬 뿐입니다.
대부분의 박테리아는 지구의 최종병기로 조용히 살아갑니다. 또다시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하거나, 혹은 다른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위협할 때, 패퇴할 인류 대신하여 지구 최종병기가 활약하겠지요. 우리들의 박테리아입니다.
우리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미생물이 박테리아만은 아닙니다. 박테리아보다 더 작은 바이러스도 있습니다. 박테리아는 인간 세포 바깥에서 생활하고 증식합니다. 박테리아는 혈통이 다를 뿐 보통의 세포처럼 세포이니까요. 굳이 남의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괴롭히더라도 세포 바깥에서 공격하지요. 바이러스는 다릅니다. 바이러스는 세포가 아니거든요. 세포 안에 들어가서 세포에 기생하는 미생물입니다.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 있는 것도 아닌 이상한 생물이지요.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숙주가 필요합니다.
박테리아는 숙주가 없어도 증식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달리 숙주가 필요하고, 숙주가 없으면 죽습니다. 숙주의 세포 안으로 침투해서 거기 안에 숨어 있기 때문에 골칫거리이고, 그래서 바이러스를 찾아내서 박멸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바이러스가 생각보다 극히 위험한 미생물은 또 아닙니다. 숙주가 죽으면 자기도 죽기 때문에,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숙주를 죽일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문제는 이 바이러스 때문에 숙주(인간)의 면역력이 약해진다는 거예요.
면역력이 약해지면 다른 질환이 이때다 싶어서 발병합니다. 대표적인 바이러스인 인플루엔자(독감)에 감염되면 2차 질환인 폐렴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때의 폐렴의 원인 미생물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폐렴구균, 즉 박테리아입니다. 그러니까 바이러스 질병에 걸리면 2차 질환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대증치료'를 하는 게 매우 중요하지요. 신종 바이러스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반면 박테리아는 박테리아 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대응이 필요하고요. 그게 앞에서 설명한 항생제입니다. 내성이 문제였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전문가의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한 생각은 아닙니다만!!) 바이러스가 우리 인류를 파국에 이를 정도로 위협하지는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숙주인 인류와 그 숙주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바이러스는 '이심동체'이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수 없는 전염성 강한 슈퍼박테리아가 나타나서 우리 인류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정말 위험하겠지요.
어쨌든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그다지 상관없이 자기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바이러스가 있지요. 박테리아만 죽이는 바이러스입니다.
"박테리오파지"라고 부릅니다.
항생제 내성 문제 때문에 인류가 박테리아를 통제할 수 없다면, 항생제 대신 이 "파지"를 이용해서 박테리아균을 박멸하면 좋지 않겠냐는 연구도 활발하더군요. 이렇게 생겼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정리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CUd0Bhpq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