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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Dec 21. 2019

페이퍼클립 작전

29호 | 흥미로운 역사이야기

페이퍼클립 작전

Operation Paperclip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5년 미국정부는 어느 비밀작전을 책임질 합동정보목표기구(Joint Intelligence Objectives Agency: JIOA)를 은밀하게 만듭니다. 그 비밀작전명이 종이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입니다. 이 비밀작전이 무엇일까요? 아주 특별한 일을 하던 나치 당원들을 색출해서 그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데려가는 작전입니다. 전범감옥? 강제노역? 아니, '채용'입니다. 말하자면, 리크루팅 작전이지요. 이들이 누굴까요? 과학자들이나 엔지니어들입니다. 그냥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아니랍니다. '나치스'였지요. 이 작전의 내용과 이 작전을 수행하는 기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이들이 나중에 무엇을 했는지 이게 참 재미있지요.


1945년 3월 독일의 본(Bonn)이 연합군에 점령됩니다. 어떤 폴란드인이 본대학교 화장실에서 종이뭉치를 발견했어요. 그 종이에는 누군지 몰라도 사람들 리스트가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리스트를 영국 정보부에 넘겼습니다. 그리고 미 정보부에도 전해졌습니다. 그것이 "오센베르크 리스트(Osenberg List)"입니다.


시계를 1943년으로 되돌려야겠군요. 나치 독일은 동부전선에서 크게 실패했습니다. 서부전선의 영광을 기대했는데 붉은 군대가 만들어 낸 지옥에 빠지고 말았지요. 야심 차게 소련을 점령하겠다며 감행한 대규모 침공인 바르바로사 작전(1941년 6월~12월)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레닌그라드 전투도 스탈린그라드 전투도 실패했고 오히려 소련의 붉은군대의 서진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이야, 이거 어쩌지?
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해!


나치는 모든 부대에서 과학자, 기술자, 엔지니어, 수학자, 박사들을 소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그들은 전투병, 취사병, 운전병 등의 보통병과에서 복역 중이었지요. 그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악명 높은  V2 로켓을 만든 것도 그들이지요. 탱크, 전투기, 잠수함 등을 더 뛰어난 성능으로 만들었겠지요. 핵무기나 생화학 무기도 연구했다고 합니다. 당시 국방연구소의 수장인 오센베르크 박사는 사상검열을 하면서 나치스에 충성하는 과학자/엔지니어의 화이트 명단을 작성했습니다. 그게 바로 오센베르크 리스트입니다.


이 리스트를 입수한 미 육군 정보부 소령 스테이버(Robert B. Staver)는  리스트를 보면서 나치스 과학자들을 심문했습니다. 단순 심문이었지요. 그러다가 1945년 5월 22일 미국방부에서 긴급 타전이 내려졌습니다. 오센베르크 리스트에 있는 기술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모두 포획해서 지정된 장소로 수용시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미국으로 이주시켰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진행 중이던 태평양전쟁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고, 내심 그들을 소련에 빼앗기면 안 되겠다는 공포도 작용했겠지요. 그래서 미국 정부는 JIOA를 설립하고 페이퍼클립 작전을 개시했던 거지요.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나치 당원과 협력자들을 채용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래도 정보기관은 신분을 세탁하고 범죄혐의를 제거해주는 등 온갖 방법으로 독일 과학자들을 이주시켰습니다. 그 수효가 1,600여 명에 이르며, 가족까지 포함하면 6,000 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미 육군 기지 텍사스 포르 블리스에서 104명의 독일 로켓 과학자들


그러면, 이제 이들이 미국에 와서 무엇을 했을까요?


미소 냉전에 봉사했지요. 로켓 기술자들은 미국을 위해 미사일을 만들었을 것이고, 전투기 엔지니어는 전투기를 만들었겠지요. 그중에서도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박사가 매우 유명합니다. 나치 친위대 소령이었으며 독일 로켓기술의 개척자이자 V2 로켓을 개발한 사람이었습니다.

군복이 아닌 양복을 입은 사람이 폰 브라운(1941년)


미군에 체포된 후 페이퍼클립 작전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다음, 미국을 위해 미사일 개발팀에 합류했습니다. 그런 다음, 미소 두 나라가 '우주 경쟁'을 하게 되자, 인공위성을 위한 로켓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에 졌지요.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습니다. 미국정부가 큰 충격을 받았겠지요. 긴급하게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만들어졌는데, 브라운 팀이 NASA에 합류합니다. 그리고 아폴로 11호를 달로 보내는 로켓을 만들었습니다. NASA 초기 멤버의 상당수가 전직 나치당원이었던 게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나사에서 폰 브라운.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릴 당시


여러분,
미국의 페이퍼클립 작전을
여러분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냉전시기 동안 미국의 군사력에 기여한 사실은 틀림없고, 비단 군사기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초과학과 공학의 발전에도 기여했으며, 이 작전을 통해 미국이 얻은 경제적 가치는 1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평가됩니다. 이 작전을 입안하고 집행했던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크게 이익이 되지 않겠나'라는 '애국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했겠지요. 그러나 페이퍼클립 작전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나치당원'이거나 '협력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단죄하거나 처벌하지 않고 이렇게 윤택한 인생을 보장해주는 건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닐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도덕이란 어떤 도덕철학을 지녔냐에 따라 절대적이기도 하고 또 상대적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절대적인 도덕론을 지향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만약 내가 공무원이었다면 나라의 실질적인 이익을 먼저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러면 긍정적으로 보았겠지요. 반면 만약 내가 활동가였다면, 즉 사회정의를 요구하고 실천하는 시민단체에 소속된 사람이었다면 이익보다는 정의가 더 중요할 테고, 그러면 부정적이며 비판적이었을 것 같아요. 절대 그런 사람을 채용할 수는 없는 거지요. 자기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이처럼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입장 차이의 긴장감이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냐며, 저는 얼렁뚱땅 넘어가기로 합니다.


한편, 미국만 똑똑하고 소련은 멍청했을까요? 소련 정보부가 미국 정보부의 이런 은밀한 작전을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비록 미국보다는 조금 늦어졌지만 1946년 10월부터 오소아비아킴 작전(Operation Osoaviakhim)을 개시합니다. 미국의 페이퍼클립 작전과 비슷한 작전이에요. 2,200명의 독일 전문가와 그들의 가족을 포함해서 여기도 6,000여 명의 독일인을 포획해 갑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V2 로켓의 각종 부품과 장비도 수거해 갔지요. 이 작전의 성공 덕분이었을까요? 소련은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쿠호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걸 두려워했던 영국정보부는 외과의사 작전(Operation Surgeon)으로 소련의 채용작전을 방해하려고 무척 노력했다고 합니다.


미국이나 영국에 '채용된' 독일 나치 과학자들은 안락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Life is beautiful! 그러나 소련에 '피랍된' 나치 과학자들은 통제되고 감시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개인이 개인의 인생을 선택할 수 없는 시대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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