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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8. 2020

헤어 디자이너의 탄생

41 | 다같이 모르는 생활 이야기

미용사(Hairdresser)는 세 가지 일을 합니다.


머리를 감기고(shampooing),

자르고(cutting),

머리를 염색(coloring)하는 일입니다.


숙련된 미용사는 이 세 가지 일을 잘하겠지요. 이런 일에 더해서 고객의 희망을 헤어 스타일로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을 일컬어 헤어 스타일리스트 또는 헤어 디자이너라고 부릅니다.


샴푸잉, 커팅, 컬러링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역사가 깊을까요? 물론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컬링(curling), 가발, 면도, 피부관리 등도 있겠지요. 언어란 참 재미있어요. '커팅'이라고 하면 세련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똑같은 표현이어도 '이발'이라고 하면 좀 옛스럽지요? 언어 표현에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은 '꼰대' 같은 생각이잖아요? 시대에 뒤쳐진 사고방식은 좀 내려놓고서 그냥 이런 어감의 변화를 지켜봅시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세련돼 보이기를 바랍니다. 유행에 뒤쳐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그러므로 미용실에서 영어식 표현이 한국식 표현을 대체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이발사(barber)의 탄생

어느 시절이나 어디에서나 머리를 깎았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머리카락이 너무 길게 자랐을 테니까요. 도구가 문제입니다. 가위가 필요하니까요. 기록에 의하면 적어도 3,000~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가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그 무렵 그 지역에서는 커팅을 하기 시작했을 거예요.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발굴된 AD 2세기경의 청동 가위입니다. 가위에 새겨진 그림이 너무 멋지지 않나요?



최초의 이발사는 가위가 탄생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것 같더군요. 아니면 더 오래된 가위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원전 5000년 전 이집트에서 최초의 이발이 행해졌으리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도구는? 조개껍질이라든지 날카로운 돌멩이를 이용했을 거라고 합니다. 면도는 기원전 3500년경 역시 이집트에서 행해졌다고 하고요. 고대 이집트의 이발사는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도 해요. 당시 사람들은 머리카락에 그 사람의 영혼이 들어 있다고 믿었으므로 그 머리카락을 만지는 이발사의 권능을 인정했겠지요.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이르러 이발이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논쟁을 좋아했잖아요? 남자들이 아고라에 모여 디베이트를 하면 그 근방에서 면도를 하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했을 겁니다. 기원전 296년 그리스 식민지였던 시칠리아를 통해 로마에 이발이 소개되었고, 로마 시대에 이르러 이발소(Barbershop)가 대중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봤자 남자들;;;)


그러다가 중세에 아주 큰 이벤트가 생겼습니다. 1092년 교황칙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른바 '면도령'입니다. 모든 카톨릭 사제들은 면도를 해야만 한다는 교황령이었지요. 그러면 면도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들이 사실상 현대 이발사의 시초가 되지 않았을까요?


중세는 종교시대입니다. 왕과 제후들은 교황과 주교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했습니다. 신앙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종교가 그들에게 권력과 명예를 유지시켜주는 중요하고 또 현실적인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교황과 주교들이 모두 면도를 하고 다녀요. 그러면 왕과 제후들도 면도를 하려고 했겠지요. 왕과 제후들이 면도를 하고 다니니, 그 밑의 신하들도 따라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수백 년 동안 이발사들에게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이발사들은 머리만 만지지 않았습니다. 치과의사 역할도 했고, 사혈(Bloodletting)도 했으며 관장도 했다고 하며 외과의사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바바서전(Barber surgeon)"이라고 불렀답니다. 도제식 교육으로 지식과 기술을 전승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돌팔이 의사"라는 뜻을 갖게 되었습니다만...


바바 서전의 해부학 강의(1580년)



17세기 프랑스


사실 지금까지는 거의 남자들 이야기입니다.

여성은 어땠을까요?


미용의 역사에서 드디어 여성이 공개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17세기,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서부터였습니다. 물론, 부유한 귀족 여성들입니다. 이 시절 처음으로 "미용사(Hairdresser)"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합니다. 귀족 여성들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했으므로 남자들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발사와는 달랐습니다. 최초의 미용사는 남성이었고요. 무슈 샹파뉴(Monsieur Champagne)는 당시 최초의 미용사였습니다. 그가 미용사(coiffeur)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아쉽게도 그의 진짜 이름과 생몰일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곧이어 드디어 여성 미용사가 등장합니다. 루이 14세의 궁중 미용사였던 마담 마르탱(Madame Martin)입니다. 1671년에 매우 유명해졌으며 창의적이었고 볼륨감을 강조한 긴머리(tall hair)를 유행시켰다고 하는데, 이분도 실명과 생몰일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미용사의 세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일하는 직업이었나 봅니다. 


미용사의 세계를 활짝 열어젖힌 남성 헤어디자이너는 무슈 샹파뉴, 여성 헤어디자이너는 마담 마르탱이었고요.


18세기에 활약한 무슈 레오나르드( Léonard Autié 1751~1820)


1777년경 파리에는 대략 1,200명 가량의 미용사들이 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귀부인들은 미용실 살롱에 모여 머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고, 이것이 매우 중요한 사회활동이었을 겁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살롱과 더 많은 미용사들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런 분도 있어요. 미용실에서 조용히 머리만 커팅했으면 좋겠다는 분. 그럴 수 있죠. 개인의 취향이니까. 그러나 미용실의 중요했던 “역사적인” 기능은 “살롱”이었습니다. 즉, 만나서 대화하는 곳이었답니다. 그것도 당대 최고의 대화가 오가는 곳이었어요)


이 '미용사 파리지앵'들이 이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뷰티 살롱(Beauty Salons)이 당당하게 이발소와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여성이 뷰티 살롱을 찾았으며 또 수많은 헤어 디자이너들이 여성 손님을 맞이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기술이 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헤어드라이어 등의 전기제품은 컬과 웨이브를 자유롭게 만들어주었고 각종 화학약품은 머리결을 더 부드럽게 혹은 더 색조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샴푸Shampoo

샴푸는 인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인도대륙에서는 고대부터 샴푸로 이용할 수 있는 각종 허브와 식물성 추출물이 많았다고 합니다. 무환자나무(soapberries) 추출물은 비누거품을 만들어줍니다. 잎은 머리를 부드럽고 빛나게 해주고요. 날마다 머리를 깨끗하게 해주고 몸을 마사지해주는 것을 산스크리트어로 "챰포(champo)"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계산이 빠른 영국인들이 "야, 이거 좋네"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영국에 돌아와서는 인도인처럼 날마다 머리를 씻고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활습관을 "shampoo"라고 불렀다는 거예요. 그때가 아마도 18세기말 무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 유럽사람들은 머리를 씻지 않았던 것이죠. 최초의 샴푸 샵은 1814년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독일 베를린에서 작은 약국을 운영하던 한스 슈워츠코프(Hans Schwarzkopf 1874~1921)를 빼놓고서 샴푸의 역사를 말할 수 없어요. 이분이 파우더 샴푸를 런칭합니다(1903). 물에 녹여서 쓰는 샴푸입니다. 그가 만든 회사는 1927년에 드디어 액체 샴푸를 시장에 내놓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즐거워진 것이지요.





염색 (Hair coloring)

헤어디자이너는 염색도 해줍니다. 이것도 역사가 깊지요. 헤나(Henna), 인디고(indigo), 석결명(senna), 심황(Turmeric), 암라(amla) 등에서 추출한 식물추출물을 이용해서 염색했다고 합니다.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Diodorus Siculus 기원전 1세기 경)의 기록에 따르면, 고대 켈트족의 염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걔네들 진짜 엄청나요. 키가 크고 새하얀 피부에 근육이 꿈틀거리지요. 머리카락은 금발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연 금발은 아닙니다. 그들은 머리카락을 인공적으로 탈색합니다. 석회로 씻고 이마 뒤로 넘기지요. 나무 악마처럼 보인다니까요. 머리카락은 말의 갈기처럼 두껍고 거칩니다. 깔끔하게 면도한 사람들도 있고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입을 덮는 콧수염은 남기면서 뺨만 면도하더랍니다.


최초의 합성 머리염색 약품은 파라 페닐렌디아민(p-Phenylenediamine)을 이용한 것으로 프랑스 로레알 사의 설립자인 외젠 슈엘러(Eugène Schueller 1881~1957)가 1907년에 만들어 내서 <Oréale>이라는 이름으로 파리 곳곳의 미용사들에게 판매했다고 합니다. 아,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을까요? 1947년 독일 화장품 회사 슈워츠코프가 집에서도 혼자 염색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냈지요.


이쯤되면 단순히 미용사(Hair dresser)라기보다는 20세기에 맞게 헤어 디자이너(Hair designer)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고객의 헤어 스타일을 디자인할 수 있는 도구와 약품이 모두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성을 상대하는 미용사의 역사는 17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주요 고객은 부유한 귀부인들이었지요. 조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유가 있는 집안의 여성들만이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일본인이 경영하거나 일본인 미용사를 고용한 미용실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조선인 미용사가 있었으리라 능히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만, 미용사는 본명을 잘 남기지 않는 관계로 지금에 와서 잘 알 수는 없어요.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조선인 헤어 디자이너는 오엽주 선생(1904~1987)이었습니다. 그녀는 1933년 3월 15일 옛날 화신백화점 2층에 <화신미용원>을 개점합니다.


파마 비용이 쌀 두 가마 값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여성들은 한 달에 한 번 머리 감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 화신미용원의 주요 메뉴는 '샴푸'였다고도 하고요. 당시 월간 <삼천리>라는 잡지사에서 오엽주의 미용실을 두 차례에 걸쳐 취재했으며 또 이런저런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런 기록도 있더군요.


(화신미용원)의 고객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은 왕족들이었다고 한다. 평소 몸치장을 다른 사람이 해주었던 그들은 왕조가 막을 내리자 머리를 빗고, 감고, 치장하는 일 자체가 매우 번거롭고 힘겨운 일이 되었다. 그때 미용실이 생기자 단골로 찾아와 머리를 맡겼는데 대부분 빗는 일조차 하기 싫어해 비듬부터 털어내는 게 기본 순서였다고 한다.


오엽주


1920년 경성미용원이 종로구 운니동 87번지에 개점했습니다만, 경성미용원 원장인 현희운 선생은 주로 화장품과 미용술을 연구했다고 하고, 전문적으로 헤어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용실은 아니었다고 하므로, "미용"이라는 말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 최초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까지 미용사 혹은 헤어 디자이너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머리방>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남성들이 독점해 왔던 이 머리의 세계에 여성이 머뭇거림없이 등장하게 된 역사는 불과 몇 백년 되지 않았습니다. 극소수의 귀부인의 살롱이었던 미용실이 지구촌 모든 여성의 뷰티 살롱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밤낮으로 서서 연구하고 고심하고 기예를 갈고닦은 헤어 디자이너들이, 여성의 머리결을 만지며 일생을 보냈던 과거와 현재의 모든 헤어 디자이너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당연한 얘기를 하는군요.


(이 글을 쓰고 보니, 저도 얼른 단골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의 가게가 가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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