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문과도 이해하는 과학이야기
오늘은 물에 관한 깊은 이야기입니다.
물이라고 하니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이게 20세기 우리 인류가 드디어 발견한 최신 과학이랍니다.
예부터 물을 아는 사람이 지식인이지요.
인류 문명이 탄생한 이후로 계속 그래왔습니다.
사소하게 시작해서 아름차게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계곡에 가면 계곡물이 흐릅니다. 벽계수라고도 하고 시냇물이라고도 하지요. 이런 시냇물과 강을 합쳐서 '하천'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stream'이라고 하고요. 그런데 이 물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왜 계속 흐를까요? 여러분은 가뭄이 계속되도 하천이 매마른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지난 주말에는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도 못 가고 집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과 함께 뒷산에 다녀왔어요. 뒷산 계곡에는 도롱뇽과 송사리가 서식하는 작은 시내가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물었어요. 얘들아, 비가 내리지도 않는데 어째서 시냇물은 마르지 않고 계속 흐르는 걸까? 아이들이 답했어요. 아빠, 나도 평소에 그게 궁금했어. 왜 그럴까?
이야기를 좀 바꿔볼까요? 아래 사진은 우리 민족의 젖줄 한강의 발원지가 되는 강원도 태백의 "검룡소"입니다. 한강은 여기에서 시작한답니다. 비가 오든 가뭄이 계속 되든 이 검룡소 샘은 마르지 않습니다. 계속 흐르며, 계곡물로 흘러가서는 여러 물줄기와 만나 한강이 됩니다. 어째서 마르지 않고 계속 흐를까요?
계곡의 물은
지하수(Groundwater)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이런 간단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적습니다. 빗물이 하천이 된다고만 생각하지요. 모든 육지의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의해 만들어지니까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비가 내리지 않아도 계곡물이 흘러 시내가 되고 시내가 강이 되는 걸 설명할 수 없지요.
실제로는 땅 바닥에서부터 지하수가 솟아 물을 공급하기 때문에 샘이 되고 시내가 되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그 물의 양이 많아지겠지요. 비가 오지 않으면? 그래도 흐릅니다. 연구에 따르면, 하천의 30~40%의 물의 양은 지하수가 공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밑에서 다시 설명합니다) 지하수에서 시작한 샘이라면 마르지 않겠지요.
계곡마다 시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계곡물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도로가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에요. 실제로는 모든 계곡에서 물이 흐르는 건 아닙니다. 지하수가 물을 공급하는 곳에서만 맑은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물이 생깁니다. 지하수가 없는 곳에서는 억수같이 비가 내려야먄 땅이 그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므로 그때 겨우 계곡물이 흐를 뿐이에요.
우리나라 5대강이 어디인가요?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입니다.
각각 발원지는 '검룡소', '황지연못', '뜸봉샘', '데미샘', '용소'입니다.
모두 지하수가 원천이랍니다. 발원지는 산에서 시작했습니다. 곧 지하수는 평지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산에도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군요(지하수면은 평지보다 산에서 더 높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강은 지하수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하면 정확하겠지요. 지하수가 가장 많이 지역이 어디일까요? 경상북도가 가장 많습니다. 그러나 지하수 개발가능량까지 고려하면 강원도가 1등이고요.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강원도 태백인 것인도 다 이유가 있는 거지요.
지구에는 물이 많습니다. 지구에 있는 물이 어느 정도일까요? 지구 전체를 약 2.7km 깊이의 물로 코팅할 수 있는 양이랍니다. 대부분의 물은 바닷물입니다. 해수(96.5%)를 포함해서 염수(짠물)가 약 97.5%입니다. 나머지 2.5%가 짜지 않은 물, 즉 민물(담수)입니다. 이 2.5%의 담수에 의존해서 우리 인간이 살아가지요.
그러면 이 담수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강물? 호수? 하천수는 지구의 물 2.5% 중에서도 0.39% 정도입니다. 0.025*0.0039 이하니까, 전체 지구 물 중에서 하천수는 약 0.0098%에 불과하겠군요. 하천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담수는 무엇일까요? 빙하가 70%, 지하수가 30%랍니다. 빙하가 담수에서 차지하는 양이 엄청 나네요. 지구 물의 대략 2.1%라고 합니다. 이게 다 녹으면 뉴욕과 상하이는 바닷속으로 잠깁니다. 그래서 지구온난화가 장난 아닌 문제라는 거예요. 어쨌든 우리나라는 빙하가 없으니까, 지하수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하천(stream)이 흐르고 있습니다. 흐르는 하천 아래에 땅이 있어요. 이 땅 아래 흙과 암석 사이사이에 물이 있습니다. 그 물이 포화상태인 지층을 대수층(aquifer)으라도 합니다. 포화상태의 대수층의 가장 위 경계선을 지하수면(water table)이라고 합니다.
하천이 흐르다가 지하수면이 하천 바닥보다 높은 지역을 만납니다(Gaining stream). 그러면 그곳에서 물을 공급받아요. 그러다가 지하수면(water table)이 하천 바닥보다 낮은 곳을 만나겠지요(Losing stream). 그러면 하천은 대수층에 물을 공급하고요. 지하수면이 하천바닥과 떨어져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비포화 지질층(Unsaturated zone)에 하천의 물이 스며들 겁니다. 언젠가는 그 물이 대수층으로 흘러가겠지요.
위와 같은 그림에서 우리가 몇 가지 사실을 '과학적으로' 알게 되었어요.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얼마나 많은 계곡물이 합류하나요? 그렇지만 하천의 물 양이 계속 증가하지는 않았지요. 여러 시내가 계속 합류하지만 잘 범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위 그림에서 밝혀졌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지하수로부터 물을 공급받지만 또 어떤 곳에서는 지하로 물을 보내준다는 겁니다. 또한 가뭄이 계속되도 하천이 마르지 않는 이유도 과학적으로 밝혀지겠군요.
지하수가 물을 공급해주기 때문입니다.
지하수는 발원지의 샘에서 하천에 물을 공급했으며, 하천이 흐르면서 'Gaining stream' 지역을 통과하면서 또 물을 공급합니다.
물론 이런 하천은 종국에는 바다로 흘러갑니다. 물의 순환(water cycle)이 전 지구 차원으로 일어나니까요. 지하수도 결국은 빗물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강수)이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 지하수를 만들었습니다. 지하수가 없어지려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야겠지요. 그러나 대체로 가뭄은 한동안 비가 오지 않는 것이지, 긴 세월 동안 가뭄이 지속되는 건 아니랍니다(그건 사막이지요).
본래 우리나라는 흉년과 기근이 많았습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신라 천년의 역사 동안 가뭄은 59회가 있었고 흉년은 36회였습니다. 그때마다 백성들은 많이 굶주려 죽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기록에 따르면 가뭄이 심해 메뚜기 피해가 발생한 때가 21회, 가뭄이 14회, 대가뭄이 23회, 기근이 18회, 대기근이 12회였다고 합니다. 공민왕 9년에는 기근으로 죽은 사람이 인구의 반이나 되었으며 길에 바려진 사체의 수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뭄은 7회, 대가뭄은 28회, 기근은 55회, 대기근은 25회였습니다.
흉년은 흔했습니다. 가뭄이 찾아오면 농작물의 수확량이 줄어듭니다. 양반과 부자가 아니라면 늘 끼니 걱정을 해야만 했고요.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았지요. 하늘에 기도를 했으며 하늘을 탓하면서 죽었습니다.
20세기 들어 나아졌을까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품종을 개량하고 댐과 저수지를 만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인구가 늘었거든요. 그래서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해졌지요. 불과 몇 십 년까지만 해도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추수한 묵은 곡식이 거의 떨어지고 봄철 작물인 보리가 아직 익기 전에는 먹을 게 없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고통을 겪었습니다.
풍요로움의 장점은 사람들이 어째서 풍요로워졌는지 의문을 품지 않고 풍요로움을 만끽한다는 데 있지요. 어느 순간 흉년과 기근이 사라졌습니다. 왜? 갑자기 물이 풍부해졌기 때문입니다. 기후가 갑자기 바뀌나요? 강수량은 옛날과 비슷하겠지요. 한반도가 어디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것도 아니니까요. 어째서 물이 풍부해졌냐하면,
어머나,
지하수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농사를 지을 때마다, 가뭄이 들 때마다, 하늘만 바라보던 우리 인류가 고개를 숙여서 땅밑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거예요. 이거, 완전 최신기술이었습니다. 세계를 이끌던 미국도 지하수에 눈을 돌린 것이 20세기였답니다. 전 세계가 지하수를 연구하고 개발하게 된 것도 상당히 최근 일이랍니다. 실감 나게 우리의 지하수 개발 역사를 살펴볼까요?
공업용수개발 목적으로 지하수를 조사하고 시추를 시도했던 게 1936년의 일입니다. 1940년대에는 농업용수개발 목적으로 지하수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다음 격동기입니다. 광복과 전쟁이 이어졌고 사회적인 혼란이 지속되느라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체계적인 지하수 조사에 착수한 해가 1963년입니다. 미국연방 지질조사소(USGS)의 수리지질기술자인 도엘(W. W. Doyel)과 디그먼(R.G. Digman)이 미국 원조 차원으로 지하수개발 목적으로 지하수 조사를 시작한 것이 최초라고 합니다. 우리 기술자들이 기계장비를 이용해서 농업용 지하수 조사를 착수한 시점은 1964년입니다. 이때가 대한민국의 지하수 개발 원년입니다.
1969년 지하수개발공사법이 제정되고 그해 지하수개발공사(이것이 지금은 한국농어촌공사로 통폐합되었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 이후 정부차원에서 아주 열심히 지하수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림부는 농업용수용으로 지하수를 개발하여 공급했습니다. 그래서 가뭄에도 농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흉작이 문제가 아니라 풍작이 문제가 되는 시절로 시대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풍작이면 농산물의 가격이 떨어지고 농부는 울상을 짓게 됩니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무분별하게 아무데나 굴착하면서 실패하기도 했고 지방마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시공을 남발하기도 했으며, 수원고갈의 문제도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는 사이 한편으로는 법제도가 개선되어, 1993년에는 '지하수법'이 제정됨으로써 국가 차원의 규범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법은 건설교통부가 주관입니다. '먹는물관리법'은 환경부가 주관하고요. '온천법'은 행정자치부가 담당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정확한 지하수 개발이 가능해졌습니다. '수문지질도'라고 해서 전국의 지하 대수층을 조사하여 정밀하게 분류한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하수를 본격적으로 개발한 역사는 아직 60년이 안 됩니다. 농업용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공업용수 문제도 해결되었지요. 발전소와 공장에는 매우 많은 물이 필요합니다. 지하수는 우리나라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동력이 되었습니다. 하늘만 바라보던 우리 조상과 달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땅밑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 결과 그 오랜 세월 지속되었던 가뭄과 흉년의 문제도 드디어 해결했어요. 아직 지하수 개발가능량은 충분하지만, 자원이라는 게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잘 관리해야겠지요.
오염 문제가 심각합니다. 지하수는 하천과 달리 매우 느리게 흐릅니다. 한번 오염되면 다스리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방책을 발견할 거예요. 아껴쓰기도 해야겠지요. 절약 기술은 도처에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스프링클러(sprinkler)는 물을 아끼면서 더욱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뛰어난 도구입니다.
지금까지 비가 내리기 않고 가뭄이 계속돼도 계곡물은 흐르며 시내가 모여 하천이 되고 하천이 바다로 흘러가는 풍경은 계속될 거라는 '과학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사람이 많은 도심에는 가기 어렵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새로운 생활 패턴이 되었어요. 사람이 드문 계곡은 좀 안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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