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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4. 2020

내용과 형식

자주 헷갈리는 철학용어에 대하여


내용과 형식은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애매해졌어요.


내용은 영어로 matter 혹은 materials 입니다.
형식은 form이고요.


이것을 학자들이 ‘질료’와 ‘형상’으로 번역해 버렸지요. 그런 번역이 틀렸다기보다는 철학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입니다. 우리의 일상 용어로 번역한다면, 그냥 ‘내용’과 ‘형식’입니다.


지혜와 지식을 얻는 데 가장 큰 방해는 편견이 아닐까요? 우리 한국인에게는 ‘형식’에 대한 어느 정도의 편견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허례허식’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에서 유래된 게 아닌가 싶은데, ‘내용이 좋으면 됐지 무슨 형식에 집착하느냐’는 실사구시하는 마음도 작용하리라 생각합니다. 형식에 대한 그런 거부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철학을 이해하기 매우 어려워집니다.


플라톤이 추구하는 절대적인 선인 ‘이데아’의 경우 ‘form’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데아는 곧 ‘최고의 형식’이라는 말씀이지요. 어떤 내용(material)에는 그것에 맞는 최고의 순수한 형식이 있으며, 그 형식이 바로 그 내용의 이데아라는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내용과 형식으로, 학자들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질료와 형상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서 내용(질료)의 중요성을 조금 더 강조했고요.)


어쨌든 내용에 맞는 최고의 형식을 찾아내는 것이 철학의 전통적인 역할이었어요. 여기서 말하는 형식은 물건의 형상과 같이 우리 정신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정신 안에서 그 내용에 대한 이미지로 구현되는 형식입니다. ‘인간 정신 속의 형식’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형식(form)은 관념(idea)입니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지요.


내용(matter; material)은 정신 바깥에 있는 것이고, 형식(form)은 정신 안쪽에 있는 개념입니다.


어쨌든 플라톤의 이런 생각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질문이 나오겠지요. 그 내용이 무엇이냐고요? 내용을 알아야 그 내용에 맞는 형식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초등학생도 그런 생각을 할 겁니다. 내용은 자연과 인간을 포함하는 세계를 뜻해요. 그런데 종교시대에서는 ‘말씀’이 곧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은 탐구할 필요도 없이 이미 주어진 것이므로 거기에 맞는 형식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초기 기독교 사상은 사실상 플라톤주의였던 겁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철학자들은 말씀이 아닌 진짜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가 곧 내용이었지요. 그 내용을 철학자들은 ‘대상(object)’(이걸 어떤 이는 '객체' 혹은 '객관'으로 번역해요. 다 같은 말이에요)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이해하고 알아내려는 대상입니다. 진리탐구의 대상이 곧 내용인 셈이지요.


경험주의자들은 경험을 통해서 대상의 내용을 알아낸다고 봤습니다. 경험이 내용을 구성합니다. 합리주의자들은 이성의 능력으로 대상의 내용을 알아내려고 했고요. 그렇게 대상을 탐구하겠다는 생각에 내용을 따지면서 점차 형식의 존재를 까먹게 되었습니다. 철학자들이 내용에 심취해 있을 때, 다시 형식을 말한 사람이 칸트였습니다. 칸트철학은 형식철학입니다.


한편 형식(form)을 배제하고 내용(material)에 극단적으로 심취한 사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유물론(materialism)이었습니다. 반대로 내용을 배제하고 형식만을 탐구하는 학문을 논리학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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