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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5. 2020

성탄전야

월간에세이 396호(2020년 4월호)에 실린 에세이



"북한산에 가자." 우리집에서 이 말은 산행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 근처 북한산 기슭에 자리잡은 오래된 식당에 함께 가자는 의미다. 여느 식당처럼 전과 탕과 찌개와 막걸리를 파는 이곳은 우리 가족이 칠 년 동안 인연을 맺어 온 단골 가게로 늘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곳이다. 북한산에 올 때마다 우리는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딸은 된장찌개를 주문한다. 아들은 청국장과 두루치기를 고집한다. 이어서 아내는 여름에는 콩국수요 겨울에는 굴탕이라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나는 계절과 기분에 맞게 전과 술을 주문한다.


가게는 2층까지 있으므로 제법 크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떼를 지어 들어올 때가 있고 그러면 그 모두를 받고 말겠다는 크기랄까.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주인 내외 둘이서 모든 일을 감당한다. 주방을 맡은 여자는 쉼 없이 요리하고 홀을 맡은 남자는 마치 모든 행동이 이른 아침에 다 생각해 놓은 것인 양 성큼성큼 움직인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때마다 두 사람의 명석함에 감탄한다. 머리 회전이 빠르지 않다면 그 많은 주문과 다채로운 요구들을 그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대응해낼 수는 없으리라고 아내와 여러 번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 식당의 장점은 그런 게 아니다. 식사를 마칠 때마다 가족 모두 치유되었다는 기분이 들 정도의 맛, 그것을 우리 가족은 '북한산'이라고 부른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헷갈리는 게 하나 있었다. 주방과 홀의 관계가 좀 묘했다. 누가 봐도 남자 쪽이 많이 젊었다. 부부가 아닌가? 남매인가? 아니야, 부부인 것 같은데…. 궁금하기는 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북한산에 오는 건 궁금증을 풀기 위함이 아니니까. 그렇게 몇 년이 흐르면서 남자 입술에서 ‘집사람’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부부이겠거니 했는데, 언젠가 독립한 아들이 잠시 와서는 '아빠'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헷갈렸다. 물론 식당의 본질은 그런 데 있지 않으므로 우리는 그저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산을 즐겼다. 뭔가 사연이 있겠지 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인기 ‘먹방’ TV 방송에 북한산이 나온 것이다. 그후 난리가 났다.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그 교통 불편하고 허름한 식당까지 몰려왔다. 아들까지 합세해야 될 정도였다. 자리 걱정을 해야 했으므로 단골손님에게는 애석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드디어 사람들이 북한산의 맛을 알게 됐구나라는 생각에 괜히 고마운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먼 곳에서 박수를 보내던 중에 전화가 왔다. “북한산이에요.” 남자 사장님 목소리.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가게 이름에 대한 상표권이 문제였다. “나중에 혹시 2호점을 낼지도 몰라서요.”, “누구 이름으로 상표권을 신청할까요? 권리자를 정하는 문제입니다.”, 남자 사장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집사람 이름으로 해 주세요.” 그래서 일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윤금선 이름으로 상표권을 신청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차 싶었다. 단골손님이면서 일을 그렇게 안일하게 하다니. 부부 공동명의로 하는 게 좋다고 내가 먼저 말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일었다. 필경 남자 사장님도 함께 권리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텐데…. 입술을 따라서 일하기보다는 마음을 살펴가면서 일하지 못한 게 바보 같았다. 일단 심사를 통과한 다음에 나중에 다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작심했다.


거의 10개월의 시간이 지나자 심사를 통과했다. 북한산에 갔다. “제 생각으로는 지금이라도 공동명의로 바꾸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부부가 함께 권리자가 되는 게 보기도 좋지 않겠습니까?” 윤금선과 이준석은 부부이지만 정식으로 혼인신고까지 한 것은 아니었다. 사연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준석은 자기가 자격이 없는 줄 알았다고 한다. “전혀 문제 없어요. 아니, 그러니까 더욱 공동명의로 해야지요. 상표등록증에 두 분의 이름이 적혀 있으면 사람들이 ‘부부구나’ 하지 않겠습니까?”


드디어 가게 이름에 대한 상표등록증이 나왔다.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국가기관의 인장이 찍혀 있는, 국가가 증빙하는 문서이다. 이들에게는 이것이 ‘가족관계증명서’이다. 문방구에서 액자를 사서 상표등록증을 액자 안에 넣은 후, 다시 북한산에 갔다. 그때가 지난 성탄전야였다.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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