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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6. 2020

생각과 정신과 영혼

자주 헷갈리는 철학용어에 대하여

저는 글을 고치는 일을 합니다. 가끔 번역하기도 하지만, 주로 하는 일은 번역된 글을 고치는 일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가치관이랄지 철학이랄지 그런 게 자기가 하는 일에 작용하거든요. 언어를 다루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성인의 평균적인 수준의 언어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가급적 그 이상을 고려하지 말고, 또 그 이하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일종의 관점이기도 하고 또 능력부족이기도 합니다.


언어 상위층(좀 배웠다는 식자층?)을 생각해서 글을 사용하면 당연 그 글이 난해해집니다. 자기 모어로 쓰여 있는데 무슨 말인지 당최 알 수 없는 경우를 누구나 경험해 봤겠지요. 너무 높은 수준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정도로 지식이 난해해지면, 소수가 지식을 독점할 뿐만 아니라 학문이 컬트 장르가 됩니다. 이것이 한국 지식 사회의 문제이지요. 거기에 동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반면 평균수준 이하의 언어 하위층을 생각해서 글을 사용한다면 글이 매우 쉬워지겠지요. 지식이 쉽게 전해진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나로서는 그게 도무지 어려워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게 만들더군요. 게다가 단어와 문장은 쉬워졌는데 의미는 분명하지가 않고 본래의 지식이 오히려 잘못 전해지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현재의 우리 한국어는 지식을 전하는 수단으로서는 아직 유년기의 언어입니다. 역사가 깊지 않습니다. 천 년을 넘게 한자에 의지했는데 최근 몇 십 년 동안 한글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단절'이 생겼습니다. 옛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한자어를 지금 세대는 갸우뚱하곤 합니다. 일본식 언어에 의한 단절도 경험했고요. 그래서 외국의 언어, 특히 단어를 한국어로 정확하게 번역하는 일이 과거보다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사용하는 이 언어는 앞으로 더 발육하고 많이 성장할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서론이 길어졌어요. '생각'과 '정신'과 '영혼'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각각 'Mind', 'Soul', 'Spirit'을 번역한 단어입니다. 이들 'Spirit', 'Soul', 'Mind'가 철학용어는 아닙니다만, 철학에 관련된 텍스트에 자주 등장하거나, 혹은 "철학적인 사색"에 흔히 쓰이는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정신세계는 이 세 가지 단어를 기본으로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펼쳐지거든요. 그래서 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정확하지 않게 이해했다는 말씀? 네. 세 가지 단어 모두 모호하게 혹은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Mind

먼저 'Mind'를 살펴봅니다. 이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라면 십중팔구 '마음'으로 번역하겠지요. 이것은 아주 부정확한 번역입니다. 여러분이 인터넷으로 '마음'에 대한 이미지 검색을 해보세요. 그러면 이런 그림이 나올 겁니다.



우리 한국인은 마음을 '가슴속에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에 대응하는 영어 단어는 'Heart'겠지요. 그러면 다시 인터넷으로 'mind'로 이미지 검색을 해보세요. 그러면 이번에는 심장과 하트 모양의 심볼은 전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백이면 구십구 '두뇌'가 나옵니다.



'Mind'를 '마음'으로 번역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에요. 그럼 어떻게 번역하면 될까요? 그냥 발음나는 대로 '마인드'라고 해도 좋겠지요. "이건 마인드의 문제야"라고 누군가 말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알아듣습니다. 그래도 우리 한국어에서 알맞은 단어를 찾아보고 싶잖아요. 그러면 다음과 같습니다.


Mind: 생각


"이건 마인드의 문제야"는 "이건 생각의 문제야"라고 하면 거의 같은 의미가 됩니다. '생각'은 'Thought' 아니었어? 네. 그것도 생각이고요. 뉘앙스는 다릅니다만, 어쨌든 둘 다 생각입니다. 이렇듯 제1언어와 제2언어는 일대일로 대응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명사에 관한 한, 영어가 한국어보다 어휘가 더 많습니다.


위와 같은 내용을 동양과 서양의 정신문화의 차이 관점으로 유튜브로 재미있게 정리해 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s2Sg4i5Nvo






"영혼"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영'과 '혼'을 잘 구별하지 않아요. 그냥 '영혼'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Spirit'을 번역할 때에도 '영혼', 'Sout'을 번역할 때에도 '영혼'으로 번역합니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바로 들지요. 'Spirit'과 'Soul'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육체와는 구별되는 어떤 존재를 일컬어 '영혼'이라고 하고, 이 존재는 죽은 후에 독립성을 갖게 되지요. 사람이 죽은 다음에 육체에서 분리되는 것이 무엇? 네, 영혼입니다. 순수한 한글로는 '넋'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서양사람들은 대체로 ‘영'과 '혼'을 구별합니다. '영'과 '혼'을 항상 기계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했던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대개 구별합니다. 이게 수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어요. 수천 년 동안 '영'과 '혼'을 분리해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서양사람과 한국인의 생각이 이 단어에서도 큰 차이가 있는 셈이지요. 그러니까 더욱 중요합니다. 살펴볼게요.


Spirit

정확하게는 '영'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문장에 번역해서 사용할 때에는 1음절 단어가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에는 '영' 대신 '영혼'으로 번역하면 적절합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바로 이해하실 텐데요. '성령'이라고 있잖아요? 그것이 "Holy Spirit"입니다. '성스러운 영'이라는 뜻이지요. 하느님은 영이십니다.


Spirit: 영, 영혼


신, 악마, 천사, 정령, 유령, 귀신처럼 육체와는 독립되어 홀로 존재하는 것을 가리킬 때 그 단어가 'spirit'입니다. 종교적인 단어입니다. 그리스어로는 프뉴마(Pneuma)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생명의 원천으로 여겨지며 육체에 깃든 어떤 신령한 혹은 악한 숨결을 'spirit'이라고 칭하기도 하지요. 모든 종교는 사실상 우리 안에 있는 혹은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spirit'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spirituality'는 ‘영성’으로 번역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1807년에 <정신현상학>이라는 아주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영어로는 <The Phenomenology of Spirit>입니다.



바로 앞서 살았던 대철학자 칸트의 이성비판 이후로, 헤겔은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철학이 잘 안 되니까 과감하게 영(spirit)을 철학으로 가져온 것이지요. 육체를, 심지어 이성까지도 뛰어넘는 '영'을 철학으로 끌고 왔다는 점에서는 독창적이기도 하고 반동적이기도 합니다(근대철학은 철학에서 종교를 놓아주는 것이었는데 종교 색체가 강한 절대적인 존재를 다시 철학으로 가져왔다고나 할까요?). 근대 이것을 <정신현상학>으로 번역해놓고 보니 애매하지요. 의미가 잘 살지 않습니다. <영의 현상학>, <영혼현상학> 정도 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오래된 책을 그렇게 다시 번역하자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이미 굳어진 번역을 애써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말씀이에요.



Soul

'soul'은 'spirit'과는 다릅니다. 인간을 신격화한다면야 'soul'과 'spirit'이 같아지겠습니다만, 그 정도로 과감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soul'은 육체(flesh)와 구별되는 무엇이라는 점에서는 'spirit'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spirit'은 육체와 상관없이 육체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존재이지만, 'soul'은 육체와 일체로 결합되어 있는 개념입니다. 육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무엇인가가 육체를 지배하면서 선장역할을 해줘야 하거든요. 그게 'soul'입니다. 'soul'은 가끔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 유체이탈을 합니다. 천국에도 가고 지옥에도 가더군요.


어쨌든 'soul'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감정적이며, 기억하고, 자의식을 만들며, 자아를 형성하고, 지혜를 낳는 그런 정신 영역을 담당합니다. 이건 인간의 정신적인 능력을 개념화한 단어인 셈이지요. 로고스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리스어로는 프쉬케(psyche)라고 칭했습니다.


그래서 '정신'으로 번역하면 적당합니다. '혼'으로 번역해도 좋겠습니다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혼'이라는 1음절 단어가 한국어 문장에서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soul'이라는 단어는 'spirit'에 비해 상당히 여러가지 의미와 뉘앙스를 지니기 때문에 한국어 한 단어로 정확히 그 의미를 담기 어려운 것 같아요. 언젠가 발음 그대로 “소울”로 번역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번역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꽤 돼지요. 예컨대 soul food는 그냥 소울푸드입니다. ‘영혼의 음식’이라는 표현은 좀 웃기잖아요? 영혼은 몸과 분리되는 추상적인(그걸 형상화한 육체가 없으므로) 존재잖아요? 그런데 음식은 구체적인 물건입니다. 그러니까 의미가 잘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요. 그래서 영혼의 음식이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소울 푸드'가 더 적절하지요. 마찬가지로 'soul music'도 '소울 뮤직'으로 번역하면 그만입니다. '소울'이라는 낱말을 쓰기 어렵다면? 정신이 가장 적당합니다.


Soul: 정신, 혼, 소울


이렇듯 'spirit'과 'soul'은 다릅니다. 'spirit'은 신성합니다. 'soul'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spirit'과 'soul'을 일치시키려는 모든 활동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종교활동이지요.


 


이렇게 의문을 가질 수도 있어요. 'Mind'(생각)은 'Spirit'과 'Soul'에 대해 어떤 관계일까? 잘 모르겠어요. 몇 년간 이런 의문에 대해 답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모르겠고, 조사해 봐도 정설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관계에 대해 딱부러지게 표현한 텍스트는 있습니다. <마리아복음서Gospel of Mary>입니다. 정식 성경에 포함된 복음서는 아닙니다. 1896년에 발견된 복음서이며, 일반적으로 '위경'이라고 하지요. <다빈치 코드>의 그 막달라 마리아의 복음서입니다. 거기서 5장 8절에너 11절까지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8. 그리고 마리아는 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아가 말하기를, 나는 환상에서 주님을 보았고 주님에게 말했습니다. 주님, 오늘 환상 속에서 당신을 보았나이다. 주님께서 내게 답하시기를,

9. 내 모습을 보고 흔들림이 없으니 네게 복이 있으리라. 생각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느니라.

10. 나는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환상을 보는 사람은 그것을 <영>을 통해서 보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신>을 통해서 보는 것입니까?

11. 구주께서 답하셨습니다. <영>을 통해서도 <정신>을 통해서도 보는 게 아니니 그 둘 사이에 있는 <생각>을 통해서 환상을 보는 것이니라. 그것은 [....] (그다음은 분실..)


생각(mind)을 강조하므로, 마리아복음서는 과거 1700년 이전에 이단으로 탄핵되어 박멸(?)된 "영지주의" 기독교 문서로 간주됩니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구원은 믿음이 아니라 앎(그노시스)을 통해 가능하다는 기독교 교리였습니다. 20세기에 다시 복원되고 있는 교리입니다. 한국에서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이 교리를 주창하고 있고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Gospel of Mary, P. Oxyrhynchus L 3525



최근 코디정이 편집한 책

http://aladin.kr/p/8fLR7

http://aladin.kr/p/6f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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