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 것이냐 물어본다면 난 아마 열에 아홉은 '국밥'이라 말할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추운 겨울이나 전날 술을 많이 마셨을 때 뜨끈한 국밥 한 술이 당길 테지만 난 웬만해선 국밥을 먹는다고 하면 늘 오케이를 외칠 수 있다. 요즘 같이 더운 날씨에도 국밥은 언제나 원 픽이 될 수 있다. 식당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다 틀어줄 텐데 무슨 걱정이 필요하겠는가.
"아니 돼지국밥에 고기, 마늘, 파, 부추 다 들어가 있는데 굳이 뭘 또 추가해서 먹을 필요가 있을까? 밥까지 딱 한 그릇 말아서 먹으면 탄단지 모두 채워지니 이거야말로 균형 잡힌 식사 아니요?
최근에는 딱 2가지 종류의 국밥에 집중하고 있는데 하나는 '돼지국밥'이요, 다른 하나는 '콩나물국밥'이다. 돼지국밥을 먹을 때 보통 소위 말하는 다진 양념이나 고추가루, 들깨 등을 일절 넣지 않는다. 다른 양념이 추가되어 순수한 돼지국밥의 맛이 퇴색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음식에 양념을 추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냉면을 먹을 때는 식초나 겨자를 원하는 만큼 양껏 뿌리는 편이다. 하지만 돼지국밥만큼은 굳이 다른 간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 그냥 주어지는 대로 먹는다. 가끔 싱겁다고 생각되면 새우젓 한 5마리 정도 넣는 정도.
"아니 집에서 엄마가 허구한 날 해주시는 콩나물국을 왜 굳이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나?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더 이상 우리 집에 엄마가 없었다. 그래서 콩나물국밥이 요즘에 더 생각이 난다"
실은 콩나물국밥은 그 유명한 전주에 놀러 가서도 먹어보지 않았다. 콩나물국밥을 굳이 식당에 가서 돈을 주고 사 먹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이 살아온 것 같다. 콩나물국은 엄마가 해주신 밥상에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 음식이기 때문이었을까. 김치로 빨갛게 화장을 해도, 가끔씩 사우나를 해서 따끈한 밥 위에 올라와 콩나물밥으로 변신을 해도 콩나물은 그저 나에겐 콩나물일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요즘 콩나물국밥의 매력에 깊이 빠졌다. 그 흔한 뼈 육수 한 방울, 고기 한점 없이도 이렇게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고 먹으면 먹을수록 감칠맛이 배가 되는 음식이었다니. 파, 마늘을 바탕으로 오징어, 버섯, 김, 계란 등이 장식하는 향연이 이렇게 감각적이었다니.
그렇게 난 오늘도 감히 밥을 국에 말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밥을 국에 말아먹는 행위가 소화 작용에 굉장히 좋지 않은 습관이라 한다. 하지만 국밥에 대한 나름의 경외심을 표현하는 방법이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소위 말하는 '완국'을 하기 위해서는 밥을 국에 꼭 말아서 함께 먹어야 탄력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레 앤 라이스'처럼 국과 건더기 위에 밥을 얹어 먹거나, '따로국밥'처럼 밥과 국을 번갈아서 먹는 방법은 썩 내키지 않는다. 밥을 국에 말아서 함께 먹어야 좀 더 풍미가 느껴진다고나 해야 할까. 맛에 대한 철학이 짙거나 예민하지 않지만 국밥만큼 에 있어서는 말아먹는 방법을 꾸준히 고수하고 싶은 심정이다.
역시 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
그렇게 오늘 점심도 '완국'을 해냈다. 음식에 '완' 자를 붙이는 게 언제부터였던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략 12~3년 전에 '무한도전'에서 박명수 씨가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오호라. 그럼 남은 오늘 하루도 힘을 내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무리하면 '완성'이 되겠구나. 다소 우리 부모님 세대가 신조어를 만드는 모양새와 비슷하다. 국밥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그런지 잠시 흥분한 모양이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늘 하루도 국밥을 즐길 수 있게 해 준 모든 이와 모든 상황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국밥을 마무리 지을 때의 전투테세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마주하더라도 헤쳐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