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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전 데이트

시간이 갈수록 평일 오전 데이트는 희소해서 더 가치 있다.

by 홍윤표

3년 만에 와이프랑 평일 오전 데이트를 했다. 첫째와 둘째 모두 어린이집을 다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희한하게도 와이프와의 데이트는 거창한 계획 없이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연애할 때도 약속 시간과 장소만 정해놓고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이정표만 보고 드라이브하고 그랬다. 배가 고프거나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그때그때 검색해서 당기는 곳으로 가서 즐겼다. 그. 러. 나. 오래간만에 접한 둘만의 시간이기에 우리는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고 계획한 대로 야무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인근 쇼핑몰에 새로 생긴 노티드 도넛을 방문했다. 요즘 사람들에겐 진작에 핫 했던 브랜드라 다소 뒷북일 수 있겠지만 우리 부부에게만큼은 'brand-new'였다. 뭐가 맛있는지 알 수 없으니 우선 best가 붙어 있는 도넛 위주로 3~4가지 맛으로 골라 담았다. 오늘도 어린이집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아들, 딸들의 간식으로 제공할 요량으로 말이다. 그렇게 도넛만 잽싸게 골라서 바로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9시가량에 등원시키고 그 후에 한 일이라곤 도넛을 산 것 밖에 없는데 벌써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이럴 순 없다'라는 혼잣말을 반복하며 부리나케 달려온 곳은 인근의 숯불갈비집이다. 우리 부부는 무엇이든 잘 먹는 잡식동물이지만 숯불갈비를 유난히 좋아한다. 아가들을 데리고도 몇 번 방문하긴 했었지만 연신 먹이고 닦고 하느라 온전하게 고기맛을 즐긴 적이 없었다.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오늘 같은 날, 숯불갈비 정식을 여유롭고 우아하게 먹어보자라는 다짐을 실천에 옮길 수 있어 행복했다.

꽤 이른 시간에 방문했음에도 사람들, 특히 어르신들이 굉장히 많았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정갈한 머리와 단정한 옷매무새를 하고서 음식점을 방문하셨다. 우리 부부도 은퇴 후에 단정하게 입고 이런 음식점을 자주 방문하리라는 말을 나누고 있는 찰나에 고기가 나왔다. 정갈하고 오색 빛깔 조화를 갖춘 밑반찬과 담긴 양에 비해 하염없이 큰 접시들이 오늘따라 더욱 빛나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감사한 것은 바로

"고기를 먹기 좋게 구워서
눈앞에 썰어주신다는 것"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와이프와 나 둘만이 고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안 먹어를 입에 달고 사는 아들을 어르고 달랠 필요도 없었고 아기 의자에서 연신 트위스트를 추다 기분 나쁘면 밥상을 엎어버리는 딸 눈치를 볼 일도 없었다. 돈을 내고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가 이렇게 고즈넉한 일이었다니. 새삼 육아의 신비로움에 감탄하고 있을... 새가 전혀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음에 감복하며 오롯이 식사에 집중했고 만족감은 최고였다.

"아 이제 힘내서 육아할 수 있을 것 같아. 다음에 애들도 꼭 데리고 오자"

"애들 얘기 지금은 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어?"

"아이 그럼 애기 아빠가 애기 얘기 안 하고 어떻게 살아? 이제 애들 하원시키러 가자"


꿈만 같던 반나절의 행복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나 전혀 아쉽지 않았고 오히려 애들 생각이 더 간절 해졌다.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애들 모습이 눈에 밟히는 현실은 오히려 나를 더 살아있게 한다.

얼른 무더위가 지나 가을이 와서 아이들과 더 많은 추억을 쌓으러 다니고 싶다. 그날까지 오늘도 무사히 애들을 잘 케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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