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린 4가족이 되었습니다 (22년 2월)

아기 되게 예쁘게 생겼네. 헤헷. 엄마 얘 근데 왜 자기 집에 안 가?

by 홍윤표

2022년 2월 11일, 오후 8시 20분. 사랑하는 우리 둘째 딸이 건강하고 어여쁜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했다. 예정일에 비해 10일 정도 빨리 태어나 면역력이 다소 떨어지면 어떡하나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를 가소롭다는 듯이 호랑이의 기운을 머금은 딸의 첫인상은 상당히 강렬했다. 태어난지 하루밖에 안되었지만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기상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보, 우리 딸 호랑이해에 태어나서 그런지 호랑이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아"

"우리 사랑스럽고 예쁜 딸에 호랑이라니~"

"아, 물론 그렇긴 한데.. 아무튼 큰 인물이 될 것 같다는 뜻이지~!!"


그렇게 딸은 신생아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하루 2번 정도 예정되어 있는 모자동실 시간에만 엄마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첫째에 이어 둘째도 제왕절개로 출산을 하게 된 와이프를 보필하기 위해 산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20년도와 마찬가지로 보호자 1인만 입실이 가능했고 그렇게 나와 와이프는 5일간 첫째를 처가댁에 맡긴 채 입원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입원실에서 함께 5일을 보낸 후 나머지 9일 정도의 시간은 와이프 혼자 산후조리원에서 회복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 하루 이틀은 그간의 육아에서 잠시 해방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때마침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하루종일 보다보니 사람이 너무 늘어지게 되고 그럴 때마다 계속 첫째가 눈에 밟혔다. 그렇게 5일이 지난 후, 처가댁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낸 아들을 데리러 갔다.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 품으로 달려왔고 장인장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교대로 연차를 사용하시면서 육아를 해주신 것이 쉽지 않으셨을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와이프 퇴원까지 9일의 시간을 아들과 오롯이 보내게 되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6개월의 육아휴직을 포함, 와이프보다 더 아들과 돈독한 시간을 많이 보냈던 터라 자신있게 홀로 육아를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새벽, 갑자기 잠에서 깬 아들이 대성통곡하며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아들을 어르고 달래며 사정을 설명해 보았지만 한 번 울음보가 터진 아들의 눈물샘은 마르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그날 새벽은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아들을 유모차에 싣고 곧바로 집 앞 10분 거리의 처가댁으로 향했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갑자기 찾아온 사위의 자초지종을 들은 장인장모님께서 함께 아들을 달래주셨고 그제서야 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아들의 1순위는 내가 아닌 모양이다.
엄마가 지금 당장 돌아올 순 없으니
서둘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계속 처가댁의 육아에 계속 기대는 것도 그분들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플랜B를 얼른 가동해야하는 시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본가에 연락해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달라고 부탁드렸고 엄마는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친가에서 숙식을 해결한 적이 없던 아들은 처음에 다소 적응하는 데 힘들어했다. 그러나 아빠와 친할머니의 꾸준한 노력과 관심에 조금씩 마음을 터 놓기 시작했고 다행히 남은 기간동안 별 탈 없이 잘 먹고 잘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전에는 본가에 아들을 데리고 시간을 보낸 적이 별로 없어 아들이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를 낯설어 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시기를 계기로 하여 아들은 친가에 가도 어색한 기색 하나 없이 잘 지낼 수 있게 되어 나름 플랜 B를 잘 치룬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드디어 와이프가 조리원에서 퇴소를 하여 14일만에 4식구가 완전체가 되었다. 그 이후부터 아들은 엄마의 부재에 대한 불안과 긴장감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며 사는 듯했다. 아빠 껌딱지였던 아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엄마가 잠시라도 눈앞에서 멀어지면 눈빛이 흔들리며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니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조금 짠했다. 그렇다고 아들의 급변하는 모습에 서운하거나 아빠로서의 소임을 다 하지 못했다는 식의 자책감은 없었다. 오히려 육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신생아 시기의 둘째를 도맡아서 케어하면 되기 때문에 길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다시 작년 이맘 때 쯤 작성했던 육아일지를 꺼내어 복기하고 '밤잠은 이제 다 잤구나. 나는 통잠이라는 걸 못 자는 사람이다.'라고 최면을 걸어 마음의 준비를 공고히 했다.

다행히 아들은 둘째를 예뻐해주었고 분유도 스스로 먹여주는 등 질투나 반목이 아닌 애정을 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새로 생긴 가족에 대한 인식은 분명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동생이라는 존재에 대해 조금씩 인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16개월, 나름 연년생 터울이지만 법적으로는 두 살 차이가 나는 아들과 딸의 부모가 되었고 아들은 이제 첫째라는 타이틀을 엉겁결에 가지며 살게 되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잘 시간. 아들의 행동거지가 다소 이상하다. 자꾸 둘째와 현관문을 번갈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른다. 어리둥절해하는 와이프의 모습과 달리 나는 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한번에 해석할 수 있었다.


"아가도 이제 집에 가서 자야 하니까 밖으로 보내주자!"


속으로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억지로 밀어넣으며 아들에게 우리 이제 넷이서 다 같이 자는 거라고 설명해주었으나 이해하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2월이 다 지나가기 전까지 꾸준히 설득해서 적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다음 달부터는 첫째가 어린이집을 가네. 잘 적응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