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22년 3월)

난생처음 다니는 어린이집 적응하는 첫째와 생후 2개월 차의 둘째 이야기

by 홍윤표

2022년 3월 첫날, 우리 첫째 아들은 인생 첫 어린이집 등원을 하게 된다. 어린이집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내에 자리한 민간시설인데 7세 반까지 포함하여 총 70여 명의 원아가 다니는 곳으로 이 지역에서는 나름 인기 있는 곳이었다. 우리 아들은 만 1세 반 원아들이 속해있는 '달콤 3반'에서 생활하기로 하고 3월 한 다네에 적응시키는 것을 목표로 담임선생님의 단계적 접근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이를테면 첫 주는 오전 10시까지, 두 번째 주는 점심 식사까지, 세 번째 주는 낮잠 시간까지 서서히 머무르는 시간을 차차 늘려가도록 하여 자연스럽게 어린이집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것이었다. 10월 생으로 반에서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통틀어서 제일 막내인 아들은 좀처럼 적응을 잘하지 못하고 담임선생님의 품 속에서만 늘 안겨있는 사진만 찍혀있었다. 코로나가 한창인데 아직까지 마스크 교육도 덜 된 채로 입소하여 다른 아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담임선생님의 아가페적인 헌신과 사랑으로 아들은 서서히 적응을 하는 모습을 보였고 3월 말이 다다를 때쯤 낮잠과 간식 시간까지 가지며 4시 반 하원이 가능할 만큼 성장했다.

첫째가 한창 어린이집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쓸 무렵, 집에서는 또 하나의 생명체가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부지런히 애를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빠로서 그저 1년 반 전에 했던 루틴을 다시 한번 복기하여 분유 타서 먹이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재우는 행동을 하면 그만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둘째가 나를 온전히 믿고 의지하느냐의 문제였다. 와이프는 어린이집 적응과 하원 후 첫째를 중심적으로 케어해야 했기에 둘째와 얼른 친해지는 것이 급선무였고 출퇴근 와중에도 새벽수유까지 도맡았던 덕분인지 둘째를 홀로 맡아 케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아들 혼자였을 때는 오늘 육아에 대한 브리핑과 반성, 피드백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있었는데 확실히 둘째가 생기고 나니 그럴 짬이 쉽사리 나지 않았다. 그저 덮어놓고 키웠다고 생각하는 편이 이해하기 수월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눈만 뜨면 육아하고 아기들이 잠들면 함께 잠자는 생활을 반복하던 무렵, 아뿔싸. 터지면 안 된다 생각했던 일이 결국엔 터져버렸다. 그렇다. 우리 4 가족은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버린 것이다.

자가진단키트로 검사했더니 음성이길래 그냥 단순 감기라고 생각했는데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녔던 것이 화근이 된 모양이었다. 첫째가 고열과 설사로 코로나 바이러스 증상을 보이더니 차례대로 와이프와 내가 장염을 동반한 몸살에 걸리더니 급기야는 생후 30일을 갓 넘긴 막내까지도 우르르 걸려버린 것이다. 유경험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온 가족이 한꺼번에 코로나 감염하는 것이 오히려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한다. 한꺼번에 격리하고 다시 한꺼번에 일상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한두 명씩 3~4주가량 텀을 두고 아팠던 분에 따르면 코로나로 3달간 고생했고 아직 걸리지 않은 남편 예방시키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 또한 그만의 고충이 너무나 크겠구나라고 생각하며 7일 동안 꼼짝 않고 육아하도록 하늘이 배려하신 것으로 알고 그렇게 주말포함 10일간 결근하며 회복에 힘썼다. 다행히 그 이후에 백신의 부작용이나 재감염 없이 우리 4 가족은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견뎌냈고 각자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상 초유의 바이러스를 뚫고 태어난 우리 아가들은 트렌디(?)하게 하루 30만 명씩 무더기로 걸리는 바이러스 감염에 합류했고 그것들을 이겨냈다. 그 이후 남은 3월 우리 아가들의 텐션은 놀라울 정도로 상승했고 우리 부부는 그것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에너지를 총동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존 방식을 나름 강구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육아가 어렵겠다고 판단한 우리 부부는 우선 루틴을 최대한 공고히 하기로 했다. 첫째 하원과 동시에 씻기고 5시가량 이른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그 후에 첫째는 걸음마로, 둘째는 유모차를 타고 동네 주변을 산책하거나 10분 거리 남짓한 처가댁을 방문한다. 그렇게 8시가량이 되면 다시 한번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힌 후에 분유 타임을 가진다. 그렇게 해서 9시부터 수면의식을 가지고 취침모드에 들어가는 것. 이 일련의 과정을 아가들이 울며 보채도, 너무 기분이 좋아 잠들기 싫어 보여도 꾸준히 적응시키기로 한 것이다.

우리의 바람이 나름 적중했을까. 첫째와 둘째 모두 늦어도 10시가 되면 모두 밤잠을 자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첫째는 태생적으로 먹고 자는 게 힘든 아이고 둘째는 너무 어리다 보니 새벽 수유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루틴을 형성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그다음 날 가족 전체의 컨디션을 결정할만큼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 부부는 아가들이 차근차근히 루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고 묵묵히 견디다 보니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월 한 달은 온 가족이 '적응'이라는 키워드 하나에 집중하며 보냈고 그러다 보니 보이지 않던 요소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집이 너무 비좁다는 것.

"여보, 애들 방이 너무 붙어 있고 문도 미닫이라 애들 서로 새벽에 우는 소리에 깰 것 같은데 괜찮을까?"

"여보, 둘째 기저귀 갈이대랑 수납장도 하나 들여놔야 할 것 같은데 이 집에선 힘들겠지?"

"그럼 우리 4월부터 조금씩 집을 알아보자. 이 집 정리하고 좀 넓혀서 이사해야지 뭐."

"어디로 알아보지?"


"어..? 그러고 보니 우리 아들 어린이집 있는 단지로 알아볼까?
그럼 바로 걸어서 등하원하면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