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법 4인 가족 티가 나는걸 (22년 6월)

이사 그리고 가족끼리 즐거운 시간

by 홍윤표

2022년 6월 첫날부터 네 가족은 밖으로 외출할 일이 생겼다. 바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보내져 온 우편물의 안내대로 우리는 길 건너 농협 하나로마트에 마련되어 있는 투표소로 향했다. 코로나 창궐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던 시기였던 만큼 무더운 날씨에도 마스크를 단단히 했다. 그리고 어린이집 3개월 동안 마스크 교육을 성실하게 받은 첫째도 답답할 텐데도 꿋꿋하게 마스크를 잘하고 다니게 되었던 때다. 그렇게 유권자로서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하며 우리 가족은 다음 주에 있을 이사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6월 둘째 주 금요일, 우리 가족은 머무르던 오피스텔을 벗어나 첫째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이 있는 인근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오피스텔을 막상 매도하고 나니 수익은커녕 1년 동안 월세를 살았던 수준에 불과했다. 우리 가족에게 부동산 시장의 따뜻한 손길은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 우선 반전세로 살면서 자식농사에 매진하기로 했다. 23년도에 와이프가 복직하고 맞벌이 가정이 되었을 때 차근차근 경제 활동에 대한 중장기 플랜을 구체화하기로 하고 우선 '교육'보다 '보육'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때이다. 이사하는 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끄물끄물하더니 입주 트럭이 방문하자마자 억수로 퍼붓기 시작했다. 게다가 에어컨 기사, 이삿짐센터, 인터넷 기사 등 각종 집 안에 필요한 장비를 들여놓는 활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부모, 자식 누구랄 것 없이 정신이 없었다. 대략적인 가구 배치와 세간살이 정돈을 마치고 나니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겼고 간단하게 칼국수 집에서 요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돌고 돌아 결국에 아파트로 왔구나.
대한민국 사회에선 애 키우기에는 아파트가 답인 것인가.'

첫째와 둘째 모두 새로 이사 온 집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전에 살던 오피스텔보다 거실이 좀 더 넓어진 곳 외에 큰 변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특히 첫째가 이사 온 집을 무척 좋아했는데 아무래도 자기 자신만의 공간이 있고 킥보드 연습도 좀 더 안전하게 할 수 있어서 그런 듯했다. 어린이집에서의 적응도 어느 정도 끝마쳤는지 타인 배려, 웃어른 공경, 사랑 등에 대한 덕목 등에 대해서 눈에 띄게 이해와 실천을 병행하는 모습이 늘어났다. 그러한 변화는 둘째를 대하는 태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래서 이 시기부터 부쩍 동생을 먼저 생각하고 동생 밥도 먼저 먹여주고 토닥토닥 재우는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다른 가족들은 연년생 터울이면 시기와 반목이 일상이라 고전한다고 하던데 우리 아이들은 그런 걱정거리를 많이 안겨주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직까지는.

6월 한 달은 첫째에게서는 사회성 향상, 둘째에게서는 신체 발달이란 선물을 받은 한 달이었다. 그토록 쓰기 힘들어하던 마스크를 자연스럽게 쓰며 코로나 시국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첫째는 거뜬히 준수하였다. 둘째는 목과 허리에 단단하게 힘이 실리는 것이 느껴지고 쏘서를 나름대로 즐기는 모습을 보아하니 다음 달에 뒤집기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작년에 비해 대면으로 진행하는 문화센터 프로그램도 많이 개강하여 둘째는 첫째에 비해 문화센터를 좀 더 자주 이용할 수 있었다. 둘째도 첫째와 마찬가지로 물을 가지고 노는 활동을 유별나게 좋아했다. 물을 만지고 손에 묻혀 비비는 활동을 특히 좋아하길래 작년 첫째의 모습을 상기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올해 물놀이는 휴가철보다 조금 빨리 시작해 봐도 괜찮겠는걸?'

그리하여 6월부터 인근의 여러 워터파크 시설을 방문하며 아이들이 물놀이를 실컷 할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마련했다. 첫째는 확실히 작년보다 물놀이에 재미를 붙여 자연스럽게 놀 줄 알았고 마음에 드는 튜브를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취향에 대한 개념도 발달했다. 엉겁결에 생후 4개월 만에 인생 첫 물놀이를 경험한 둘째도 물놀이가 싫지많은 않은 눈치였다. 겉보기엔 그저 튜브와 물아일체가 되어 요산요수하는 느낌이었지만 나름 눈 깜빡임, 환호성 등의 리액션을 선보이는 것으로 보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물놀이를 즐기는 것 같았다.

연애할 때 가끔 방문했던 워터파크 시설을 이렇게 아가들 둘을 데리고 방문하니 기분이 묘했다. 가슴 한 구석에 뭉클함과 설렘이 오르내리며 방망이질을 치다가도 아가들이 다치지 않도록 눈에 쌍심지를 켜고 냉정함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이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우리 부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지만 이제 제법 4인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어 힘듬보다 뿌듯함이 몇 곱절로 더 컸다. 이제는 처가나 본가에 아가들의 보육을 잠깐 맡기는 일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만큼 우리 아가들은 엄마아빠를 사랑하고 우리 부부도 우리 아가들을 직접 품에 끼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안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보 이제 며칠 후면 여름방학이네. 우리 애들 데리고 이번 여름방학에는 뭘 하지?"

"글쎄 나야 여보 좋고, 애들도 좋아하면 다 갈 수 있지? 어디 특별하게 알아본 곳은 있어?"

"주변에 보니까 애들 데리고 호캉스 하는 가족이 많더라고. 우리도 몇 군데 한 번 가보자."


그래, 7월에 정근수당도 나오고 하니까 애들이랑 말로만 듣던 호캉스라는 것을 한번 해봐야겠다.

아, 잠깐. 마음의 준비를 좀 하고. 습. 습. 후우~ 습. 습. 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