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전혀 닭을 튀길 생각이 없었다. 집에 돌아왔는데 닭이 삶아져 있고 파프리카, 고구마, 감자, 표고버섯이 주방 한쪽에 자리 잡혀있었다. 별안간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오늘 저녁은, 아니 오늘 내가 만들 저녁은 닭조림이구나. 애들 먹여야 하니까 간장 베이스로 해서 만들어야지'
삶은 닭을 체에 밭쳐 한편에 두고 육수 물부터 받은 다음 고구마부터 넣는다. 고구마가 제일 익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다음 잽싸게 감자, 표고버섯, 파프리카를 손질해서 다듬는데 뭔가 허전하다. 아 무가 있으니 넣어볼까.
무를 얼른 껍질을 벗겨 조금 얇게 썰어 끓는 물에 넣는다. 늦게 넣었기 때문에 빨리 익게 하려고 얇게 썰었다. 끓는 동안 홀로 치즈를 먹고 있던 둘째가 소리친다. 뭔가 더 입에 넣을 것을 달란다. 바나나를 얼른 4,5조각 썰어서 식판에 놓아준다. 먹는 동안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설거지도 동시에 한다.
그렇게 닭조림이 되고 있는 동안 미처 넣지 못한 닭과 고구마가 있는 게 맘에 걸린다. 급하게 웍을 꺼내고 카놀라유를 붓고 불을 당긴다. 당기면서 삶은 닭의 물기를 키친타월로 조금씩 눌러 제거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 온도가 알맞게 되자 고구마부터 튀긴다
집에 물엿이 없다. 맛탕은 포기하기로 한다. 급하게 튀김가루를 찾는 도중 둘째가 또 소리친다. 바나나를 다 먹었나 보다. 냉장고에서 부랴부랴 8 아기치즈를 꺼내 8조각 내어 식판에 준다. 다시 아까 찾던 튀김가루를 찾는데 아뿔싸. 튀김가루가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남은 닭을 튀긴다. 이윽고 밥이 뜸 들이는 소리가 난다. 닭조림도 간을 맞추기만 하면 끝날 것 같다. 밑반찬을 꺼내 접시에 담는데 '철컥' 문이 열린다. 첫째가 엄마와 함께 하원을 했다. 입에 말랑카우가 있다. 과연 저녁을 먹을지 미지수다.
튀기던 닭을 꺼내 그릇에 담아 식힌다. 간을 끝낸 닭조림도 담아서 식힌다. 닭다리 2개를 모두 꺼내 아들, 딸 식판에 잘라서 놓아준다. 모두가 식탁에 앉아 그렇게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한다.
' 아 난 오늘 옛날 통닭을 만들 생각을 아침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했구나'
목까지 깨끗하게 비워진 얼렁뚱땅 만든 옛날 통닭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 내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어디 한두 개이던가. 하물며 육아에 내 뜻이 어디 있겠냐. God d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