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오늘 학년 회식이라 늦게 올 거 같아. 애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고 있어. 금방 올게'
1단계 : 놀이터에서 바깥놀이하기
지난주 금요일 오후, 학년 회식에 참석한 와이프는 오랜만에 자유부인이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에겐 5살 아들, 3살 딸과 함께 즐겁게 놀고 저녁도 먹이면서 씻고 재워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 셈이죠. 하원 이후 아이들의 컨디션을 살펴보니 오늘은 바깥에서 좀 시간을 보내도 될 정도로 아이들의 체력 상태가 양호했습니다. 그렇기에 하원 후 바로 근처 놀이터에 가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했습니다. 평소에 엄마 없이도 아빠랑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렇게 1단계를 무사히 마치고 나니 어느덧 6시가 훌쩍 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2단계 : 씻고 저녁 먹기
2단계 '씻고 저녁 먹기'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우선 아침,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균형 잡힌 식단을 남김없이 잘 먹었다고 하니 한 끼 정도는 한 그릇 식사로 때워도 될 것 같았습니다. 우선 냉동실에 자리 잡은 베이컨 볶음밥 1팩을 꺼내 식용유 두른 프라이팬에 들들 볶습니다. 동시에 다른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여 짜파게티도 동시에 준비합니다. 볶음밥 먹기를 실패할 경우 차선책을 동시에 투입하기 위해서죠.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습니다. 볶음밥이 성공했냐고요? 아니요. 짜파게티를 마련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어떻게든 먹이면서 설거지도 하고 두 아이 샤워까지 끝마치니 6시 45분입니다. 3단계가 종료되기까지 1시간 15분이 남았습니다. 부랴부랴 아이들 내복과 기저귀, 물티슈, 마실물, 여벌 옷 등을 에코백에 담아 3단계를 실행에 옮길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럼 바로 3단계로 이동해야겠습니다.
3단계 : 키즈 카페 1시간 이용하기
근처 키즈 카페로 무대를 옮겨 3단계를 즉시 실행에 옮깁니다. 마감 1시간 전인지라 한산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나마 몇 명 있는 손님들도 모두 초등학생들이라 우리 아이들을 예뻐하며 좋아합니다. 그동안 수십 번 방문했던 곳이라 싫증 날 법도 한 데 아가들은 당연하다는 듯 탈것을 하나씩 골라 즐겁게 시간을 보냅니다. 마감시간이 가까워지자 5~6명의 직원들이 키즈 카페 여러 곳을 쓸고 닦고 정리정돈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넓은 키즈카페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저 역시 아이스커피를 홀짝거리며 아이들 뒤꽁무니를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냈죠. 어느덧 8시. 영업종료를 알리는 안내멘트가 들리자 아가들은 자연스럽게 신발장으로 가서 집으로 갈 준비를 합니다. 4단계는 플랜 A, B, C까지 준비했는데 어떤 카드를 꺼낼지 고민하며 아가들과 키즈카페를 나섭니다.
4단계 : 졸릴 때까지 놀이터 + 유모차 산책
아가들에게 집으로 바로 가서 좀 더 놀다가 잘지, 졸릴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들어갈지 선택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둘 다 '졸릴 때까지 놀이터'의 카드를 선택합니다. 다행히도 중, 고등학생들이 놀이터를 점령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두 아이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질릴 때까지 탔고 8시 반이 지나자 둘 다 눈을 비비며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대뜸 첫째가 배가 고픈지 도넛을 먹으러 도넛 가게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둘을 데리고 도넛을 사주었더니 첫째는 한 개를 모두 먹어 치웠고 둘째도 반 이상을 먹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나니 둘째가 '잘래, 잘래'라고 말하네요. 유모차 산책을 좀 다녀오는 동안 잠들면 집에 가겠다고 했더니 그리하자고 합니다.
5단계 :미션 컴플리트
그렇게 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산책을 가기로 했습니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가게에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저도 분명 저런 시간을 당연하게 만끽하던 사람이었는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하던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와이프에게 아가들이 모두 잠들었으니 실컷 놀고 오라고 메시지를 전한 뒤 바로 저의 소울 푸드인 '옛날 통닭' 한 마리를 포장하여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9시 30분. 저도 이제 좀 즐겨야 하겠네요.
어린이날과 대체휴일이 있어 이번주는 우리 아가들과 특별한 시간을 많이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엄마아빠를 위해 오늘 우리 아가들이 귀중한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로 선사했네요. 샤워를 마치고 평소 즐겨보는 유튜브를 보면서 옛날 통닭에 소맥 한 잔을 기울이니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이번 주도 어찌 되었건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보낸 것, 와이프 자유부인 만들어 준 것 등에 뿌듯해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와이프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뭐 알아서 잘 오겠거니 생각하며 말이죠.
다음날 아침, 둘째가 '아빠 일어나'라며 손짓을 합니다. 둘째가 일어난 것을 보니 대략 오전 6시겠거니 생각하고 시계를 보았더니 여지없이 오전 6시가 맞습니다. 전날 먹은 술이 가뿐하게 깨지 않은 상태에서 거실로 나가보니 첫째도 일어나서 토스트를 먹으며 TV를 보고 있습니다. 제가 자는 동안 와이프가 비몽사몽간에 아가들 아침을 차려준 모양입니다. 와이프가 어디있는지 첫째 방에 가보았더니 애들 아침 차려주고 곤히 자고 있습니다. 아마도 새벽 늦게까지 회포를 진하게 풀고 온 모양새입니다.
'어... 다음날 아침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일단 씻고 다시 오늘의 계획을 짜야겠다.'